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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19 1년 내내 문화예술 행사가 넘치는 렌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0>

브르타뉴의 많은 도시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를 이용해 관광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다. 문화재는 성이나 성당 같은 기념비적인 건축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브르타뉴의 특색 있는 전통 문화를 보여주는 축제나 브르타뉴 특유의 종교 의식 등의 무형문화 유산들도 관광 수익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켈트 음악무용 축제와 ‘파르동’(Pardon: 용서)과 같은 종교 의식을 구경하러 온다.
 
그러나 내가 살고 렌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과거의 대단한 문화 유산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브르타뉴 지방에 비해 지역적 특성을 내보이는 문화 축제도 없는 렌은 관광도시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독특한 브르타뉴 지방의 수도 이야기
 
현재 브르타뉴 지방의 중심지는 렌이다. 그러나 항상 렌이 브르타뉴의 중심지였던 것은 아니다. 옛날부터 브르타뉴는 한 도시에 정치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수도를 만들지 않고 여러 도시들이 돌아가며 그 역할을 담당했다. 이 도시들은 공작령으로서 브르타뉴 남쪽이나 동쪽에 주로 위치해 있었다. 디낭, 낭트, 플로에르멜, 러동, 렌, 비트레, 반느, 게랑드 같은 도시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가운데서 행정과 사법은 봉건적 방식에 따라 반느-낭트-렌의 삼각구도 속에서 이루어졌고, 입법은 거의 모든 브르타뉴 도시에서 담당했다.
 
브르타뉴에 현대적인 의미의 진정한 행정 수도가 탄생한 것은 8세기에 이르러서였다. 1199년까지 브르타뉴의 대주교가 머물렀던 ‘돌’(Dol)이 브르타뉴의 수도 역할을 했다. 그 후 여러 도시가 돌아가며 행적적인 정부 역할을 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가장 많이 수도 역할을 담당한 도시는 ‘반느’(Vannes)였다.
 
15세기에 들어 브르타뉴 통치자인 공작이 낭트에 주거를 목적으로 성을 세우면서, 그가 거주한 ‘낭트’(Nantes)가 수도 역할을 하게 된다. 낭트에 대성당이 건립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지금도 낭트에는 그때 세워진 대성당과 공작이 생활했던 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16세기 브르타뉴가 프랑스에 병합된 이후, 낭트는 렌에게 정치적 우위를 내주게 된다. 그 이유는 렌이 낭트보다 파리에서 가깝기 때문이었다. 중앙 정부와 소통이 더 수월한 지리적인 위치가 오늘날 렌의 위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 뒤 1972년, 낭트가 속해 있는 ‘루와르-아틀랑티크’ 지역은 브르타뉴에서 다른 행정구역으로 분리된다. 하지만 낭트가 행정적으로 브르타뉴에서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브르타뉴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낭트는 브르타뉴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러 오는 관광객으로 넘친다. 이와 반대로 렌은 현재 브르타뉴의 수도라 하지만, 낭트에 비해 변변한 관광거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렌에는 낭트처럼 화려한 공작성은커녕, 조금만 요새성 하나 없고 대성당도 낭트에 있는 것에 비하면 초라할 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렌은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특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렌이 선택한 것은 문화예술의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매우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1년 내내 전개되고 있다.(이하 생략)


아래 <일다> 지면에서 계속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6412&section=sc7&section2=%BF%A9%C7%E0



 

Posted by 고마리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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