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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18 과연, 죽음을 예감할 수 있을까?


<죽음 연습> 9. 죽음의 전조, 죽음의 징후


죽음을 알리는 '앙꾸'(Ankou)의 수레바퀴 소리


예로부터 프랑스 서북부 해안지방의 사람들은 밤에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가 나면 집에 꼭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았다고 한다. 끔찍한 해골모습을 한 죽음의 일꾼, ‘앙꾸(Ankou)’가 수레를 타고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러 다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게 밤의 수레바퀴 소리는 다름 아닌 ‘죽음의 전조’였다.
 
수레바퀴는 마땅히 낮에 굴러야 하는데, 밤에 구르고 있으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처럼 평소 일어나지 않는 특별한 일, 드문 일은 죽음의 전조일 수 있다고 믿었다. 까치가 지붕에 앉아 있을 때도, 수탉이 밤에 울 때도 ‘앙꾸’가 찾아온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거나 코피가 터진다면, 한밤중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면, 바로 ‘앙꾸’가 일할 때다.
 
이해하기 어렵고 생소하며 낯선 현상, 불길하고 불안을 안겨주는 기운을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예고로 받아들이곤 했던 것은 비단 켈트문화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 문화 속에서 별똥별의 추락을 죽음과 연결시켜온 것을 떠올려 보자.
 
항상 죽음이 우리 곁을 맴돌지만 낯설기만 하고,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죽음은 언제나 두려움을 안겨준다. 그래서 낯설고 불길해 보이는 현상을 죽음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같은 ‘죽음의 전조’에 대한 믿음은 헛웃음을 웃게 할 만큼 황당하고 근거가 없어 보이지만, 일상 속에서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느낌만은 놓지 않도록 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한 예감
 
그렇지만, 믿기 어려운 ‘죽음의 전조’를 그냥 송두리째 포기해 버릴 수 없다. 적어도 부모나 형제, 자매,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은 미리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부모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전조를 체험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의 죽음을 미리 예감한 것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내가 정말로 죽음의 전조를 경험한 것인지 아직도 의심하고 있긴 하다.
 
병을 오랫동안 앓아온 어머니의 경우, 그 죽음이 갑작스러울 것도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은 불시에 다가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한 지 채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갖지 못했었다.
 
고향을 떠나와서 객지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나는 집에 자주 전화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 내가 문득 집에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부터 특별한 일로 봐야 할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전화를 걸기 직전에 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 할머니가 사고를 당한 그날도, 불현 듯 이유 없이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전화를 걸기 전에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었다. 불쾌감이란 표현은 적당하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변화가 있었고,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 아니라 무겁고 불편한 감정에 짓눌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주 연락하며 지냈던 것도 아니고 가까이서 함께 살지도 않았지만 부모님과 할머니의 죽음을 예감했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정말로 죽음의 전조를 경험한 것일까?
  
만약 내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예감한 것이라면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미리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죽음의 전조를 받아 죽음이 임박한 사람을 만나러 달려갈 수 있으면, 그래서 그 사람의 죽음의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분명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예감했다고 그냥 믿고 싶은 것이다.(이하 생략)


아래 <일다> 지면에서 계속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6349&section=sc71&section2=



 

Posted by 고마리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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