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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생각하기13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시간들 죽음연습(14) 촛불과 레퀴엠 작은 마을의 성당에서 며칠 전 친구와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을 다녀왔다. 아무런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찾은 곳이라서 내겐 마을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여행 안내소를 찾아 무작정 걷다가 오래된 성당 앞에 이르렀다. 그곳에도 어김없이 마을 한 가운데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프랑스 땅을 여행하다 보면 도시나 마을의 중심에는 꼭 성당이 있다. 때로는 위풍당당한 모습에 압도되어, 때로는 건축술의 화려한 기교에 매료되어, 기독교인도 아니고 종교에 대단한 관심도 없지만, 나는 성당 문턱을 넘곤 한다. 그런데 강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이 작은 성당은 앞서 내가 봐왔던 성당들과는 달리, 겉모습이 그리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 수 백 년의 긴 세월을 잘 견뎌낸 석조 .. 2014.09.06
죽어가는 사람의 '외로움' 13. 죽음의 과정 직면하기 ‘갑작스런 죽음’을 바라는 사람들 오래 전, 대학 후배와 어떤 죽음을 맞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후배는 사고를 당해 갑자기 죽기보다는 ‘병에 걸려 죽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병에 걸려서 죽으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인 심장전문의 버나드 라운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다수의 사람들은 그 후배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고통을 받으며 천천히 죽기보다 불현듯 죽기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사람일수록 갑작스러운 죽음을 더 갈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오늘날, 다들 죽음이 불시에 덮쳐 오길 바라는 것일까? 어쩌면 중년이 된 그 후배도 지금쯤.. 2014.08.22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 12. 세포의 자살과 뇌사 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내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저 내 속에 죽음이 들어 앉아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죽음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이 작가처럼 내 속의 죽음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건강할 때조차 우리 몸의 일부는 지속적으로 죽어간다. 이 사실을 주목한다면, 우리 속에 죽음이 들어앉아 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세포의 자살’ 우리 몸의 일부가 죽는다는 표현은 좀 더 엄밀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세포 가운데 일부가 사라진다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다.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우리 인간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세포들을 .. 2014.08.22
노년의 고통은 '힘'이 될 수 있을까 11. 나이듦을 바라보는 시선 나는, 늙고 있다 “노년의 고통을 느껴야 하는 운명의 순간까지 질질 끌려온 것 같다. 나는 거울 속에서 쭈글쭈글한 할망구의 얼굴을 본다. 결국 이렇게 늙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짜증스러운 병, 고통,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 흉한 모습으로만 가득한 노년의 여정을 밟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다.” -미셸 스파이더 (아고라, 2006) 하루에 두 번 정도 거울을 볼까? 세수할 때나 잠깐 거울 앞에 서 있으니, 내 얼굴을 바라볼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안경을 벗으면 거울 앞에 서 본들, 도무지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다. 얼굴은 안개에 가린 듯 뿌옇게 흐려져 있다. 윗글을 쓴 여성처럼 노년의 고통을 체감할 정도로 늙지도 않았지만,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짬이 없어 .. 2014.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