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020. 10. 4. 13:59

프리드리히 횔덜린 [그리스의 은자 히페리온] 시 같은 소설

한 줄 느낌: 자연 속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1770-1843)이 쓴 [그리스의 은자 히페리온(책세상,2015) ]은 그의 유일한 소설이자 그의 저작활동 후기작품이다. 이 책의 1권은 1797년, 2권은 1799년 출간되었으니까, 20대말에 출간한 책이다. 20대말에 출간한 책의 그의 후반부 작품이 된 이유는 그가 30대 중반인 1806년 이후 사망할 때까지 정신병에 시달리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일찍 시적 재능을 불태우고 재빨리 사그라든 불행한 시인이다. 

[그리스의 은자 히페리온(Hyperion oder Der Eremit in Griechenland)]은 전체 2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권은 다시 두 장으로 되어 있다. 

1권의 과거를 회고하는데, 자신의 삶에서 사랑했던 세 사람을 떠올린다. 1장에서는 히페리온이 사랑했던 스승 아다마스, 친구 알라반다와의 만남과 이별을,  2장에서는 연인 디오티마와의 만남과 이별을 이야기한다. 2권 1장은 편지글, 히페리온이 디오티마에게 보낸 편지, 디오티마가 히페리온에게 보낸 편지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는 사랑하는 연인과 왜 헤어지고 또 어떻게 친구를 재회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와 절망, 그리고 다시 연인을 재회하고자 하는 기대감을 다룬다. 2권 2장에서는 연인의 죽음, 친구와의 두 번째 이별을 다룬다. 히페리온은 작가 자신을, 히페리온의  연인이 디오티마는 횔덜린이 사랑했던 주제테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이 소설 속에서 횔덜린은 자신 고대 그리스에 대한 동경, 미적 이상의 추구, 자연으로의 회귀를 담았다. 

 

노트-이어지는 생각>

1권 1장

만물과 하나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신성의 삶이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느끼는 천국이다. 

 

오, 인간이란 꿈을 꿀 때는 신이지만 생각을 할 때는 거지다.

 

나는 이삭줍는 사람이 주인이 가을걷이를 마친 그루터기 밭을 헤매듯 과거 속을 걷고 있다. 지푸라기들을 일일이 줍고 있는 것이다.

 

벗이며 우리는 이것이 슬픈 것이다. 우리의 정신이 그리도 쉽사리 방황하는 영혼의 외관을 띠는 것, 스쳐 지나가느느 슬픔에 너무 집착하는 것 말이다. 고통을 치유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로 병드는 것. 

 

1권 2장

사랑의 한순간에 비하면 인간들이 수천 년에 걸쳐 행하고 생각해온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이야말로 자연에서 가장 성공적인 것이며 가장 신성한 아름다움이 아니던가!

 

그렇다! 인간은 태양이어라. 사랑할 때면 인간은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맑고 아름답게 만든다. 반면 사랑하지 않을 때 인간은 그을음 나는 작은 등불만 희미하게 밝혀진 어두운 집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을 살다 보면 몇 번의 위대한 순간을 맞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을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둬야 해! 인간의 본질이라는 가지런한 꽃봉오리로부터, 어린 시절의 오두막으로부터 인간을 밀어내지 말아야 해! 그렇다고 인간에게 너무 손을 대지 않아도 안 돼. 그들은 아무런 아쉬움도 느끼지 않고 우리들과 자신을 그렇게 구별할 거야. 또 너무 손을 많이 대서도 안 돼. 그러면 그들은 자신이나 우리들의 힘에 무감각해지고 그렇게 우리들과 자신을 구별할 거야. 한 마디로 나중에 자기 말고도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좋아. 그렇게 해야 인간이 되거든. 그렇게 인간이 되는 순간 신도 되는 거야. 그리고 신이 될 때 인간은 아름답지. 

타인과 자신의 관계의 조율을 통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에 공감이 간다. 

신과 아름다운 인간의 동일시하는 것이 흥미롭다.

 

신적이 아름다운 첫 아이는 예술이야. (...)

아름다움의 둘째 딸은 종교야. (...)

이것은 실제로 그리스인들, 특히 아테네 사람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사실이야. 그들의 예술과 종교는 영원한 아름다움, 즉 완성된 인간 천성의 진정한 자식들이지. 완성된 인간 천성으로부터만 그것들이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이야. 

횔덜린이 그리스 특히 아테네 문명을 동경하고, 그가 생각한 예술과 종교도 고대 그리스인의 생각으로부터 나온다. 인간 본성의 완성으로서의 예술과 종교를 꿈꾸는 시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문학은 말이야. 그 학문의 시작이자 끝이야.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것처럼. 철학은 무한한 신적 존재를 시로 표현해온 문학에서 생겨났어. 다시 말해 궁극적으로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문학이라는 신비로운 원천에서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거지. 

철학이 문학에서 태어나고 다시 문학으로 돌아간다는 생각. 시인답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서로 다름 속의 하나됨'이라는 위대한 말은 그리스인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는 말이야.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본질이거든. 그 말이 발견되기 전에는 철학이 존재하지 않았어.

 

정신적 아름다움이 없는 오성이란 남이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하는 직공과 같아. 그런 직공은 미리 지시받은 대로 목재로 대충 울타리를 짜맞추고 장인이 만들려는 정원을 위해 말뚝들에 못질을해서 연결할 뿐이야. 오성이 하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아. 오성이 터무니없는 일이나 불의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기는 하지. 오성은 정돈을 할 줄 아니까. 

이성적 차원을 계산적, 논리적 차원에 한정시키고 그것을 불완전한 것으로 보는 반면 미적 차원이 있어야 이성의 한계를 넘어 완전성에 도달할 있다고 믿는 시인. 

 

순전한 오성만으로는 철학이 불가능해. 왜냐하면 철학이란 현존하는 것에 대한 인식 이상의 것이거든.

철학을 신적이고 미적인 이상, 완전성에 도달할 수 있는 학문으로 보는 시인. 철학이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이성만으로 할 수 없다는 점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것이 현존하는 것에 대한 인식 이상이기 때문은 아니다.  

 

"아아! 이건 참으로 운명의 화려한 장난이야. 이곳의 신전들이 무너져 내려 그 부서진 돌멩이들이 아이들의 돌팔매감으로 쓰이고, 동강난 신상들이 농가 앞의 앉을깨가 되고, 묘석들은 풀 뜯는 황소의 쉼터가 되다니."

폐허를 보고 히페리온이 한탄하는 말. 폐허를 거니고 있으면 삶의 무상함이 느껴져서 슬프긴 해도 진실의 중심으로 다가가는 느낌을 받는다.

 

단 하나의 아름다움만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 자연은 만물을 포괄하는 하나의 신성으로 합쳐질 것이다.

 

자연과의 하나의 됨이야말로 미적 이상, 신적 차원에 도달하는 것으로 보았던 시인 횔덜린의 생각은 아름답다. 

 

[히페리온]을 읽고 나니 그의 미완의 작품인 [엠페도클레스]가 읽고 싶어진다. 

그리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악마와의 싸움(Der Kampf mit dem Dämon: Hölderlin, Heinrich von Kleist, Friedrich Nietzsche, 1925)]의 횔덜린 부분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쉽게도 이 책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지 않은데, 내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에 매료된 것은 바로 이 책 니체 부분을 읽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