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020. 9. 24. 13:19

잭 런던 [밑바닥사람들], 20세기초 런던 빈민의 비인간적인 삶

한 줄 느낌: 슬픔과 분노가 밀려온다

 

미국 작가 잭 런던(1876-1916)의 글은 생생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지점이 있다. 그가 1902년 런던 동쪽지역 빈민가에서 직접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쓴 르포 [밑바닥 사람들].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20세기 초반의 그 비극적인 장소로 돌아가 있는 듯하다. 집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연료도 결핍된 런던 하층민의 삶은 눈물이 날 정도로 처참하다. 배고픔에 길바닥에 떨어진 오렌지 껍질조각, 사과꽁지를 주어먹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는 슬픔을 넘어 비인간적인 사회에 화가 났다. 그야말로 죽어가는 이외에 그 어떤 삶도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미 오래 전에 잔인한 세상을 떠나 먼지로 흩어졌을 사람들이겠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날이 소진되는 것 이외에 다른 삶이 없었던 그들에게 늦게나마 애도를 표하고 싶다. 과연 이외 영국의 빈민가는 달라졌을까? 켄 로치의 영화들이 생각난다. 영국 사회의 비극적 상황은 여전히 진행중인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 땅의 빈민은 어떨까? 비바람을 피할 지붕과 굶주림을 면할 음식이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는 비인간적인 사회이고, 그 사회 속에서 그런 사람들 외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본다. 

 

노트-이어지는 생각>

은행, 공장, 호텔, 사무실 건물들을 세워야 하니 도시 빈민들은 유목민이 될 수밖에 없다. (3. 나의 하숙집 동네 중에서)

잭 런던이 말하는 20세기 초반의 런던 빈민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도시를 단장할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은 떠밀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이 사람들은 끝없이 내몰리는 것 이외에 달리 살 방법이 없다. 

종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는 그들에게 공포의 대상도 환희의 대상도 아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삶에 필요한 것, 아니 꿈꾸는 것은 포만감과 맥주 '반반씩'을 곁들인 저녁 담배밖에 없다.(5.벼랑끝의 사람들 중에서)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굶주림을 면한 음식이 필요할 뿐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종교도 사치가 되는 극단적 가난. 종교가 가난한 사람을 이용하는 대목에서는 분노가 치민다. 

이 둘은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저 늙었고 자식들이 끝까지 살지 못하여 따뜻한 불 옆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한 것뿐이었다.(8.마부와 목수 중에서)

늙음이, 가족이 없음이 배고픔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늙더라도 자식이 없더라도 굶어죽어서는 안 될 일이다. 늙어서 자식이 없어서 굶어죽어야 하는 사회라면 빈인간적인 사회다. 존재 이유가 없는 사회다. 

잠자리를 찾는 일은 가장 심각한 문제로서 먹는 문제보다 더 큰일이다. 주로 험한 날씨와 엄격한 법 때문이지만 노숙자들은 외국이민자들, 주로 폴란드와 러시아 유대인들 때문에 자신들이 노숙자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저임금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뺴앗고 노동착취제도를 정착시켰다고 말이다.(9. 구빈원 중에서)

노숙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는 처절한 현실이다. 어느해 겨울 프랑스 몽펠리에서 한 노숙자가 얼어죽었다. 그 노숙자는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온 노숙자였는데 텃세 때문에 다른 노숙자들에게 내몰려 죽게 된 것이었다. 생존이 어려운 만큼 더 서로에게 잔혹해지는 상황이 안타깝다. 극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가난으로 내몬 사회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하기에는 살기가 너무 힘들고 고달프다. 그래서 약자 중의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이들에게 이민자는 만만한 약자다. 이민자, 외국인 혐오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더 깊어진다. 

고생으로 몸이 망가지고 잘 먹지 못하고 영양이 부족하니, 늘 질병에 제일 먼저 걸리고 제일 먼저 죽는다.(9.구빈원 중에서)

가난은 병을, 죽음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사회적 상황이 나빠질수록 가난할수록 타격을 더 받는다.

젖은 옷을 입고 폭풍우치는 밤을 보내는 것, 게다가 영양실조인 상태로 일주일, 아니 한 달 동안 고기라고는 입에 대지도 못했다면, 그렇게 밤을 보내는 일은 인간에게 너무도 모진 고통일 것이다.(...) 밤새 헤매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린 공원은 다른 곳보다 문을 일찍 여는 것으로 유명했다. 나도 새벽 4시 15분경 많으느 사람들과 함께 그린 공원에 들어갔다.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밤새 걸어 지친 터라 의자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이 들었다. 대다수가 흠뻑 젖은 잔디 위에 뻗었고 비가 계속 내리는데도 곯아떨어져버렸다.(10.밤의 부랑 중에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우울한 날씨가 떠오른다. 스멀스멀 추위가 몸 속으로 기어들어오는 축축한 날, 한낮조차 거리에서 지내기는 힘들다. 집이 있다면 날씨가 나쁘면 집에서 머물면 되겠지만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쁜 날씨는 커다란 고통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굶주려있다면... 얼마나 견디기 힘들까? 고픈 배를 안고 쏟아지는 빗 속에서 자지 못하고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면...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우선 밤새 서 있었던 사람들을 몇 시간 더 서 있게 한 것은 불필요하기도 했고 잔인한 행위이기도 했다. 우리는 약했고 굶주렸고 밤새 잠도 못 자고 고생해서 지친 상태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오랫동안 서 있었다.(11 공짜 밥 중에서)

공짜 밥을 얻어먹기 위해 긴 시간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는데, 불현듯 프랑스 릴에서 체류증을 받기 위해 밤새도록 이불, 담요를 뒤집어 쓰고 떨면서 우리 외국인들은 어두운 길에 줄을 서서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해가 뜬 다음에도 사무소가 문을 연 다음에도 우리들은 건물 내로 들어갈 수 없었다. 실내에 자리가 있었지만 계속해서 사람들을 밖에다 세워두고 몇 명씩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설사 사무소 안에 들어간다 해도 직원들은 사소한 꼬투리를 잡으면서 다시 서류를 준비하라면서 돌려보냈다. 결국 밤샘 줄서기를 또 해야 한다. 나는 비인간적인 처우에 화가 치밀었다. 그 일로 인해 난 프랑스 유학생활을 접었다. 나는 유학생활을 접을 수 있었지만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는 그 생활을 접을 수 없어 그토록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면서도 그 지긋지긋한 줄서기를 계속해야 했을 것이다.

일자리보다 일하려는 사람이 많을 때 그 남은 수만큼의 노동자들이 무능한 사람이 될 것이며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서서히 고통스럽게 파멸을 맞는다. (17 무능 중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적어도 굶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계문명과 밑바닥의 인간이 되는 것보다, 황야와 사막의 인간, 동굴과 움막의 인간이 되는 것이 훨씬 낫다.(24 밤의 풍경 중에서)

산업발달이 가져온 비참한 가난은 야생의 결핍보다 더 비극적이라고 본 잭 런던. 분명 20세기 초의 런던 빈민가의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었지만 생존은 커녕 죽음이 그들을 기다린다.

 

사족>90년대 말, 난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에 볼일 때문에 들렀을 때, 어떤 '빵시옹(pension)'에서 하룻밤을 묶었다. 허름한 건물의 그곳은 알고 보니 이민 노동자 가족들이 저렴한 가격에 머무는 곳이었다. 방 하나를 빌려서 여러 명의 가족이 일상을 살아가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이 그런 곳인지 알지 못했다. 내가 빌린 방은 맨 꼭대기층에 있었는데, 더러운 매트리스에 세면대도 없고 낡은 싱크대를 세면대 대신 실내에 놓아두었다. 청소는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불결한 방이었다. 나는 그날 밤 거의 자질 못했다. 아랫층에서는 알수 없는 말로 싸우는 사람들의 찢어지고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쉴새없이 계속되었고 매트리스에 누운 내 몸에는 벌레가 기어가는 듯 온몸이 가려웠다. 20대 초반 대학친구들과 밤새 놀기 위해 잡았던 여관방에 놓여 있던 낡고 더러운 이불 이후 마르세이유의 빵시옹의 매트리스는 가난의 불결함을 각인시켜주었다. 가난하다는 것은 깔끔함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다. 찌든 때와 가려움, 그 누구도 더럽게 살고 싶어하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불결한 환경을 벗어나기 어렵다. 누군가는 그 더러운 여관조차 머물 돈이 없을 수 있다. 추운 날씨가 아닌 데도 몇 겹의 더러운 넝마를 걸치고 있던 노숙자 아저씨의 체념한 듯한 눈빛을 잊을 수 없는데, 그에게는 가려운 매트리스도 빌릴 돈이 없었을 것이다.내가 빵과자를 나눠먹었던 그 노숙인 아저씨는 어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