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020. 8. 26. 18:40

[재난 불평등] 자연재해의 피해가 숨기고 있는 진실

한줄 느낌: 분노, 우울, 무기력감이 교차한다

 

올해초부터 재난이 줄을 잇는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 그리고 54일간 이어진 장마비로 인한 홍수, 그리고 오늘은 태풍 '바비' 소식까지. 코로나 확진자가 날로 증가한다는 소식에 외출을 자제하고 집안에서 거의 지내다 보니 그사이 미뤄두었던 책 읽기를 계속하고 있다. 해양지구물리학자인 존 C. 머터가 쓴 [재난불평등(동녁, 2016)]은 요즘 읽기에 적당한 책같다. 

 

그는 '들어가는 말'에서 '파인만 경계(Feyman line)'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핵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신이 실재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는 대답을 했다는 것에서 끌어낸 개념이다. 자연재해는 자연과학만으로도 사회과학만으로도 이해할 수는 없는 파인만 경계, 즉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에 놓인 문제라는 것이다. 

또 그는 자연재해 분야의 핵심용어는 위험, 확률, 불확실성임을 지적하면서, 이처럼 위험하고 불확실한 자연재해 상황에 직면한 인간은 두 가지 사고체계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대니얼 카너먼은 두 가지 사고체계를 시스템1, 시스템2로 불렀는데, 시스템1은 빠르고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사고, 시스템2는 느리고 신중하고 논리적인 사고를 가리킨다. 자연재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스템2의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 존 머터의 주장이다. 하지만 정치도 언론도 모두 시스템1 사고의 담론에 빠져있다는 것. 재난의 해악을 제대로 알려면 재난의 원인이 자연적인 것만 아니라 인간적 요소가 있다는 것, 재난 이후 선한 결과와 악한 결과 모두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목케 한다. 그는 아이티, 칠레, 일본, 미국의 뉴올리언스 구체적 재난 사례를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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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떤 정밀한 방법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자연재해가 나쁜 일이라고 증명하기는 놀랄 만큼 어렵다."(1. 자연재해, 사회적 선악의 중재자 중에서)

2."인간은 상황이 얼마나 끔찍하든 간에 재빨리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 공식 용어로는 "쾌락적응"이라고 하는 이 개념은 인간이 충격에 직면하면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를 살핀 후, 이전에 행복을 느끼던 상태에 맞춰 상황을 재설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재산이 크게 늘었다거나 무언가를 잃었다고 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엄청나게 행복해하거나 괴로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는 "인간은 유연한 동물로, 어떤 것에도 적응하는 존재다"라는 도스토옙스키의 관찰과도 일치하는 현상이다."(1. 자연재해, 사회적 선악의 중재자 중에서)

3."오늘날 대부분의 심각한 문제들은 모두 물리적 세계와 사회적 세계의 접점에 놓여 있다. 파인만 경계의 어느 한 쪽이 아니라 바로 그 위, 경계선상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후변화다."(1. 자연재해, 사회적 선악의 중재자 중에서)

4.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책은 모두 다 일종의 과학스러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1. 자연재해, 사회적 선악의 중재자 중에서)

개인적으로 '과학스러움'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얼마나 많은 유사과학이 과학인 척하며 우리를 농락하고 있는가! 

저자는 방송인 스티븐 콜베어 (Stephan Colbert)가 "진실인 듯 여겨지거나 진실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진실이 아니며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을 진실스러움"이라고 불렀다고 하면서 이 진실스러움을 '과학스러움'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콜베어가 말한 '진실스러움'은 사실 지금 이순간에도 인터넷에서 만연하고 있는 수많은 가짜뉴스를 연상시킨다. 과학스러움이건, 진실스러움이건, 진실이나 과학보다는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길, 과학이길 바라는 우리 인간의 어리석은 면모를 드러낸다. 

5.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재난으로부터 안전해진 시대다."(1. 자연재해, 사회적 선악의 중재자 중에서)

6."잘 알려진 대로 재난당 사망자 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난이다.(...)

최상의 재난위험감축 전략은 부유해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1. 자연재해, 사회적 선악의 중재자 중에서)

7. "한 나라의 부가 자연재해로 인한 최악의 피해를 막아주는 잠재적인 방패가 될 수 있듯이, 개인의 부 또한 방패가 된다. 같은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재난이라도 다른 이에게는 그저 약간의 불편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3. 학살당한 아이티와 혼란에 빠진 칠레 중에서)

8. "평상시에 가장 배려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재난 시에도 가장 큰 고통을 당할 가능성이 많다."(3. 학살당한 아이티와 혼란에 빠진 칠레 중에서)

9."자연은 뜻하지 않게 재산을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부유한 사람에게도 이전하는 데 기여하곤 한다."(6. 미얀마, 무관심이라는 악행 중에서)

10."일부 지역은 재건에서 아예 제외됐다. 재건을 하지 않는 지역은 물으나 마나 "골칫덩이 인간들"이 살던 주거지였다. 가장 피해가 컸던 지역은 녹지로 바꾸어 보통 백인 거주자들이 주말에 자전거를 타거나 그밖의 여가활동을 하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었다."(7. 재난을 기회로 삼는 이들 중에서)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 불어닥친 허리케인으로 인한 가난한 흑인들의 피해는 재난이 휩쓸고 간 후에 '토지약탈'로 이어졌다. 단순한 자연재해가 끝이 아니라 자연재해는 인종차별주의자들에 의해 더 큰 피해를 가져온 것이다. 

11. "'부자가 이기고 가난한 사람이 진다.' 불평등이 극심한 세상에서는 자연재해의 결과 또한 불공평할 것임을 확실히 짐작할 수 있다.(...) 각 집단이 재난을 활용하는 방법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부자는 이용하고, 가난한 사람은 못한다. "(8.재난, 끝이 아닌 시작 중에서)

12."재난이 자연적 사건일 뿐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이 처음 타격을 가하는 무시무시한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에는, 재난은 자연적이다. 그 순간은 자연의 탓이다. 그러나 재난 이전과 이후의 상황은 순전히 사회적 현상이다. 재난 이후에 평상시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데는 경제적 자극제와 훌륭한 계획, 원칙 외에도 2008년과 2009년 경제 위기에 대처했던 것 같은 행동이 필요하다. (...) 이익을 챙기는 행위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그것은 타인을 희생시켜 재빨리 이득을 취하는 행위일뿐 아니라, 기존의 불평등을 강화시켜 영구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행위다."(8.재난, 끝이 아닌 시작 중에서)

 

자연재해가 자연적 피해만으로 끝이 나질 않고 권력을 쥔 소수의 인간이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을 충족시키려 함으로써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강화된다는 저자의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지금 창 밖으로는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듯 바람 소리가 대단하고 바람이 점차 세지고 있다. 이번 태풍은 지난 장마비로 고통받던 사람들을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을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이들은 홍수, 태풍, 전염병까지 삼중의 재난 속에서 갈 길을 잃을 지도 모르겠다. 또 일부의 이기심이 그 고통을 가중하지 않아야 할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