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020. 9. 19. 17:23

가스통 바슐라르의 [물과 꿈]

내가 가지고 있는,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의 책 [물과 꿈(1942)]은 1980년에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가림이 번역한 한글 번역서다. 친구가 준 이 책은 88년 중판본인데, 그동안 서가에 잠자던 것을 이번에 읽게 되었다. 오래된 만큼 종이가 누렇게 변색되었다. 아직도 이 책이 유통되는지 찾아보니, 문예출판사에서 출간한 [물과 꿈]은 신선같은 바슐라르의 사진을 겉표지에 택한 1996년에 재출간 된 책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더는 구할 수 없는 책으로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졌다.   

올해 이학사에서 [물과 꿈]의 새 번역서가 나왔는데 김병욱이 번역했다. 

이가림은 부제를 '물질적 상상력에 관한 시론'이라고 번역했지만 김병욱은 '질료에 관한 상상력 시론'이라고 했다. 'matière'는 물질로 번역할 수도 있고 '질료'로 번역할 수도 있다. 철학에서 사용하는 번역어 '질료'가 '물질'보다 더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싶다.

 

아무튼 바슐라르의 4원소, 즉 불, 물, 공기, 흙에 상응하는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4원소론은 문학 텍스트에 접근하는 정신분석학적, 시학적 방법론으로 볼 수 있다. 바슐라르는 우리의 꿈처럼 무의식적인 세계를 물질적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의 지적 사고, 문학적 세계가 원초적인 물질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믿음, 철학적 사고의 깊은 곳에는 상상의 세계가 있어 우리는 4원소로 그 무의식적인 심층 세계를 분류해볼 수 있다고 본다. 

바슐라르는 4원소를 [불의 정신분석(La psychanalyse du feu, 1938)]에서 처음 언급하기 시작한다. 불로 시작해서 4원소와 관련된 저서들은 물, 공기, 흙으로 이어진다. 즉 [물과 꿈: 물질적 상상에 관한 시론(L'eau et les rêves: Essai sur l'imagination de la matière,1942)], [공기와 꿈: 운동의 상상에 관한 시론(L'Air et les songes: Essai sur l'imagination du mouvement, 1943)],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La terre et les rêveries du repos, 1946)][대지 그리고 의지의 몽상(La terre et les rêveries de la volonté, 1948)], [촛불(La flamme d'une chandelle, 1961)] [불의 시학의 단편들(Fragments d'une poétique du feu, 1988 유작)]이 그것이다. 

특히 [물과 꿈]은 물질적, 질료적 상상에 관해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으로 볼 수 있다. 

 

노트-이어지는 생각>

 

프롤로그 상상력과 물질>

사람은 이성적 인식 속에 단번에 자리잡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근원적 이미지에 대한 정당한 시각이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나의 즐거움은 아직도 시냇물과 동무가 되어 뚝을 따라 바른 방향 즉, 인생을 어딘가 다른 곳, 말하자면 이웃 마을 쪽으로 인도하는 물의 흐름을 따라 걷는 것이다. 나의 <다른 곳>은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는다. 내가 처음으로 대양을 본 것은 서른 살 무렵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바다에 대해 잘 말하지 못할 것이며, 시인들의 책이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간접적으로 또 무한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배운 평범한 감화에 머무름으로써 거기에 대해 말할 것이다. 나의 몽상에 접촉한다는 점에서 내가 물에서 발견하는 것은 무한이 아니고 깊이이다. 

바슐라르와 달리 내게 물은 바다였다. 무한한 바다. 그래서 내게 물은 깊이보다는 무한이다. 강은 바다와 전혀 다른 물이었다. 가까이 강이 있음에도 바다가 없다는 이유로 나는 한동안 우울에 빠진 적이 있었다. 

 

고향이라는 것은 공간의 넓이라기보다는 물질이다. 즉 화강암이나 흙, 바람이나 건조함, 물이나 빛인 것이다. 그 속에서만 우리는 우리의 몽상을 물질화하며, 그것에 의해서만 우리의 꿈은 적합한 실체를 얻는 것이며, 그것을 향해서만 우리는 우리의 근원적인 색깔을 요구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사물과 드라마 이상으로 창조하는 것이며, 새로운 생명과 정신을 창조하고 여러가지 새로운 타입을 지니는 비전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지도는 꿈 속에서밖에 그릴 수 없다. 감각할 수 있는 세계는 무한히 적다! 몽상과 꿈은 어떤 혼에게 있어서는 미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제1장 맑은 물, 봄의 물과 흐르는 물, 나르시시즘의 객관적 조건, 사랑스런 물>

나르시스의 응시는 거의 숙명적으로 희망에 결부되어 있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해 명상하면서 나르시스는 자신의 미래를 명상하는 것이다. 

 

대지의 참다운 눈은 물이다.

 

제2장 깊은 물, 잠자는 물, 죽은 물, 에드가 포우의 몽상에 있어서의 <무거운 물>>

포우에 있어서 특권적 물질은 물이라는 것, 또는 더 정확하게는 특수한 물, <무거운 물>이며,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모든 잠자는 물이나 죽어 있는 물이나 깊은 물보다도 더 잠에 빠져 있고 죽어 있으면 깊다는 것

 

에드가 포우에 있어서 물의 이미지의 운명이 죽음의 몽상이라는 중요한 운명

 

물은 응시한다는 것, 그것은 흘러간다는 것, 분해한다는 것, 죽어간다는 것이다.

 

<물질은 형식의 무의식(La matière est l'inconscient de la forme)>

에드가 포우의 말을 재인용한 것인데, 질료는 형상의 무의식으로 번역할 수도 있겠다.

 

물의 요정, 즉 환영의 수호자는, 하늘의 모든 새들을 자기 손으로 붙잡고 있는 것이다. 물 웅덩이는 우주를 내포하고 있다. 꿈의 한 순간은 혼 전체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물고기는 날으고 헤엄치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있어 죽음이란 물 자체

 

물은 대지의 피다. 그것은 대지의 생명이다.

 

제3장 카롱의 콤플렉스, 오필리아의 콤플렉스>

 

4원소와 4가지 시신 처리 방식-화장, 물에 띄워 보내는 것, 흙에 묻는 것, 새들에게 내어주는 것. 

불현듯 어렸을 때 죽은 병아리를 분필통에 넣어서 도랑으로 떠내려 보냈던 기억이 났다. 나는 죽은 병아리가 도랑의 물길을 따라 흐르다가 바다에 가리라 생각했다. 한 번은 죽은 참새를 정원에서 발견했는데, 참새는 정원 흙 속에 묻어주었다. 

작은 집 식구들은 작은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해서 바다로 띄워보냈다고 했다. 화장을 원했던 할머니는 어머니가 할아버지 곁에 매장했었다. 

 

죽음은 여행이며 여행은 죽음인 것이다. <출발하는 것, 그것은 조금 죽는 일이다.> 죽는 것, 그것은 참으로 출발하는 것이며, 물의 흐름, 강의 흐름을 따라감으로서만 용기를 내어 과감하게 사람은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강은 사자들의 강과 합류한다. 

 

오래된 브르타뉴의 전설에는 방랑하는 홀란드 유령선이나 지옥선이 쉴새없이 지나간다. 

 

물은 불과 인간들의 무덤

 

카롱의 배는 항상 지옥을 향한다. 행복의 뱃사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이나 자살 등의 불길한 운명에 대한 끝없는 몽상 전부가 그렇듯 강하게 물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라면, 많은 혼에 대해서 물이 특별히 우울한 원소라는 사실에 놀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제 4장 복합적인 물>

 

온천은 무엇보다 먼저, 물과 불의 직접적인 구성물로서 상상되는 것이다.

 

연못가의 밤은, 특수한 두려움, 몽상하는 사람에게 스며들어, 몽상하는 사람을 떨게 하는 일종의 <축축한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제5장 모성적인 물과 여성적인 물>

아주 명백한 일이지만,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영감을 불러넣어주는 것은 경치가 아니라, 행복한 추억이며, 추억 가운데서도 가장 조용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양육하는 젖과 어머니의 품의 추억인 것이다.

 

제6장 순수성과 순수화, 물의 모랄>

더우기 순수한 물과 불순한 물의 이원론은 평형이 잡혀 있는 이원론이 아니다. 물은 도덕적인 저울은 순수와 선 쪽으로 기운다. 물은 선 쪽으로 옮겨진다.

 

신선한 물은 시선에 다시 불꽃을 준다.

 

청춘의 샘의 콤플렉스에는 말할 것도 없이 치유에의 희망이 결부되어 있다. 

 

제 8장 난폭한 물>

니체는 보행을 싸움으로 하고 있다. <보행은 그의 싸움인 것이다.> 짜라투스트라의 정력적인 리듬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보행인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앉아서 말하지 않으며 소요학파처럼 산책하면서 말하는 것도 아니다. 에너지가 넘치게 걸으면서 그는 자신의 교의를 말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개인적 삶의 보잘것없는 사건을 우주적 단계에까지 상승시키는 것이다.

 

바다에 명령하는 것은 초인적인 꿈이다.

 

에필로그 물의 말>

결국 상상력을 연구하기 위한 참다운 영역은 그림이 아니라 문학작품이고, 말이며, 글인 것이다!

 

시각적 상상력에 대한 말의 상상력의 승리

 

티티새는 가까운 물을  위해서 노래하는 것

 

해설 바슐라르 사상의 넓이와 깊이>

<인간은 살균 처리된 세계에서 행복해질 수 없다. 다시 한 번 생명을 되살리려면 가능한 한 빨리 거기에서 미생물을 번식시켜야 한다. 나는 시인들을 쫓아 상상력의 문으로 들어갔다.>(바슐라르의 말 재인용)

 

바슐라르의 4원소와 관련한 책들은 나를 꿈꾸게 한다. 그래서 [물과 꿈]도 읽는 동안 내내 행복해서 좋았다. 

지금 나는 꿈꾸게 하지 않는 책은 서가에서 내쫓고 있는 중인데, [물과 꿈]은 책장에서 자기 자리를 계속 지키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