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020. 9. 1. 21:00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 완화의료 의사가 들려주는 '죽어감'

한줄 느낌: 죽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영국 호스피스 의사 캐스린 매닉스(Kathryn Mannix)의 책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사계절, 2020)]은 '완화의학이 지켜주는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원제는 'With the end in mind'로 2017년에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은 완화의학 분야에서 40여년간 활동한 의사의 생생한 경험담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완화의료가 죽기 직전까지 죽어가는 사람의 삶의 질을 유지하도록 어떤 도움을 주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죽어가는 과정이 결코 두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완화의료의 도움을 받는다면 생의 마지막을 잘 준비할 수 있겠구나 싶다. 그럼에도 영국의 완화의료 상황과 우리나라의 것이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에 책 속의 환자들이 받은 도움을 우리나라에서도 호스피스를 통해서 받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는 없다. 책 속의 환자들은 원하면 집에서도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완화의료는 호스피스라는 시설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자도 제한적이다. 연명의료의 경우도 영양공급이나 수분공급은 환자가 스스로 중단을 결정할 수 없다. 따라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책 속의 환자들처럼 충분히 존중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소위 병원의 중환자실이 아닌 호스피스라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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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이 늘고 깨어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잠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의식이 없는 상태일 때도 있죠. 하지만 깨어난 후 잠을 푹 잔 것 같다고 말하곤 해요. 의식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죠. 마침내 삶의 끝에 이르면 늘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런 후 호흡 패턴이 변하기 시작하죠. 때로는 깊고 느리게, 때로는 얕고 빠르게, 그렇게 아주 완만하게 호흡이 느려지다가 마침내 조용히 멈춥니다.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큰 고통이 찾아오지 않아요. 의식이 꺼진다는 느낌도 없어요. 공포에 질리지도 않아요. 그저 아주 평화롭답니다."( 1장 '프랑스 레지스탕스' 중에서)

이 의사의 죽어감에 대한 이야기는 죽어감이 자연스럽고 두려운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은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이 이야기가 무척 도움이 되었다.

 

"임종자리는 곧 끝을 맞이할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자리이자, 가만히 지켜보며 귀를 기울이는 자리이다. 그리고 우리를 연결하는 것이 무엇이며, 다가오는 이별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영원히 바꿔놓을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다."(1장 '마지막 왈츠' 중에서)

 

"우리 몸이 위험에 직면하면 아드레날린이 방출되어 더 깊이 숨을 쉬게 되고 심박 수가 상승하고 근육에 산소공급이 촉진되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긴장상태가 된다."(2장 '숨이 멎을 것 같아' 중에서)

 

""어머니의 호흡 패턴이 바뀌는 게 들리시나요? 빠르고 헐떡이는 숨소리와 느리고 코고는 듯한 숨소리가 번갈아 계속되죠?"(...)

"이것은 어머니가 의식불명이라는 징후예요."(...)

"이것은 뇌가 작동을 멈출 때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랍니다. 우리가 삶의 끝에 당도할 때요.""(3장 '당신의 모든 숨결을' 중에서)

 

""우리가 보는 환자들은 모두 병이 야기한 증상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고 있습니다. 보통은 심각한 병에 걸린 환자들이지요. 여기 오는 환자 둥 일부는 완치가 불가능하고, 어떤 분은 우리가 증상을 관리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죽음을 맞이하기도 해요. 하지만 1주나 2주 동안 치료를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의 반 이상은 상태가 훨씬 호전되어 퇴원하십니다.""(3장 '미녀와 야수' 중에서)

의사가 설명하는 호스피스는 확실히 우리나라의 호스피스와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어머니가 얼마나 더 사실 수 있나요?" [나는 이 질문이 싫다] 사람들은 마치 수명이 거스름돈처럼 정확히 계산되는 양 묻곤 한다. 남은 수명은 숫자가 아니라 방향, 시간에 따른 변화, 티핑포인트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으로 이해해야 한다."(4장 '부엌에서 있었던 일' 중에서)

 

"심폐소생술 포기 각서를 작성하는 것은 환자, 의사, 가족 사이의 중요한 상호작용이다. 환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때 불필요한 논란과 감정 소모를 방지하기 위해 가족이 이 각서의 존재와 이유를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의사가 적절한 치료를 계획하고 환자에게 부적절하거나 원치 않는 치료는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말기 치료의 핵심이다."(4장 '여행계획' 중에서)

나는 이미 생명에 관한 유언을 해두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심폐소생술을 원치 않는다. 임종이 가까이 다가왔는데 발악을 하면서 죽음을 밀쳐내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싶지 않다. 

 

"수많은 사람의 마지막 여정에 동행하고 수많은 이의 임종 자리를 지키면서 죽음은 내게 아주 친숙한 동반자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이 동반자는 관점의 해방과 섬광처럼 빛나는 희망을 선사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며, 우리가 진정으로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바로 지금뿐임을 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힘든 시간은 좀더 견디기 쉬워지고 좋은 시간은 그만큼 더 소중해진다. 행복도 실망도 모두 시간이 흐르면 지나갈 것이다. 생의 모든 순간이 일시적일 뿐이라는 인식은 겸허함을 부른다."('마치며' 중에서)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죽어가는 모습이 다르다. 끝까지 죽음을 부인하기도 하고 죽음을 수용하기도 하고, 느리게 죽기도 하고 급하게 죽기도 하고. 죽음을 이르게 하는 병명도 다르다. 죽음의 마지막 점에 도달할 때까지 삶은 계속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온 것이 다르듯 죽음도 같아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