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연습 > 3. 시체에 대한 공포 들여다 보기

밤사이 세찬 비바람으로 잠을 좀 설쳤다. 그렇다고 오전 산책을 포기할 수는 없다. 평소 다니던 대로 도로를 피해서 동네 사이 길을 따라 걸었다. 자동차 소음이 요란스러운 외곽순환도로 위의 다리를 건너면 키 큰 참나무들이 줄 지어선 흙길이 나온다. 지난밤에 내린 비 때문에 땅에는 아직도 군데군데 빗물이 고여 있었다.
 
물웅덩이를 피해 풀을 살짝살짝 밟으면서 걷고 있을 때였다. 풀 위에 검은 회색빛 털 뭉치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두더지다. 태어나서 두더지를 직접 보긴 처음이다.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누운 이 작은 짐승은 숨이 끊긴 상태였다. 왜 여기 이렇게 죽어 있는 것일까? 지난밤 빗물로 두더지 굴에 물이 가득 차서 도망 나오다 숨이 막힌 것일까?
 
나는 두더지를 살짝 뒤집어 보았다. 두더지의 몸은 이미 뻣뻣하게 굳었지만, 몸의 털은 살아 있는 것처럼 윤기가 흘렀다. 상처 하나 없는 말끔한 모습이었다. 죽은 지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았다. 어제 늦은 오전, 이 길을 걸었을 때만 해도 풀 이외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었다. 나는 두더지를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닌 사체를 건드리는 것이 왠지 불편했다.
 
나는, 죽은 것이 싫다
 

▲ 나는 두더지를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닌 '사체'를 건드리는 것이 왠지 불편했다.     © 이경신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죽은 것을 싫어했다. 살아 있는 동물들은 –지렁이를 제외한- 그 어떤 동물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쥐나 뱀, 애벌레조차도 거리낌 없이 대하고 만지곤 했다. 하지만, 죽은 동물은 불편하고 가까이 하기가 싫었다. 만질 엄두도 내질 못했지만 바라보는 것도 끔찍했다. 그래서 작은 곤충, 심지어 해충으로 불리는 파리나 바퀴벌레와 같은 곤충들도 죽이길 싫어했고, 죽어 있는 것은 피했다. 


지금도 고등학교 시절 학교 하수도 청소를 떠올리면 어떻게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하수도가 더러워서 청소일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죽은 쥐들을 치우는 일이 괴로웠던 것이다.
 
학교가 산중턱에 위치해서인지 우리 학교에는 특별히 쥐가 많았다. 학교 정원은 물론이고, 교실에도 쥐들이 발견되어 수업시간이 온통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학교 측에서는 쥐를 잡겠다며 쥐약을 놓았고, 그 약을 먹은 쥐들이 하수도로 뛰어들은 것이다.
 
덕분에 하수도 청소담당이었던 우리들은 더러운 오물 속에 죽어 있는 쥐들을 뒤처리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퉁퉁 부풀어 오른 쥐의 사체를 건져 소각장에 버리는 일은 그 누구도 쉽게 떠맡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하수도 청소반장이었던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끔찍한 몰골의 쥐들을 애써 외면하면서 소각장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멀게 느껴졌던가.
 

그때만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죽은 쥐를 치우는 일을 해낼 수 있었지만, 그 이후 도로바닥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새들이나 작은 짐승들, 길에 나동그라져 있는 고양이 등 죽은 동물들은 마주할 일이 생기면 일단 고개부터 돌리면서 지나갔다. 내게 죽은 동물은 마주대하기 싫은 무엇일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어쩌다 부딪치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으로 여겨졌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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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교실> 2. 남의 일에 무슨 상관이야!
 
이번 시간에는 지난번보다 좀더 어려운 것을 공부해 보자. 오늘은 ‘개입’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할 것이다. 자기는 상관없지만, 어떤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끼어들어 잘잘못을 가려주는 것을 ‘개입’이라고 한다. 다음에 제시된 글은 승민(초등 3학년)이라는 아이가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만든 예문이다.
 
<승민이의 학교에는 토끼가 있습니다. 토끼들이 풀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승민이와 친구들은 토끼에게 풀을 자주 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승민이는 친구들과 함께 토끼에게 풀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 한 남학생이 토끼장에 손을 넣어 “토끼야, 이리와!”하며 친근한 태도로 토끼를 불렀습니다. 토끼 한 마리가 상냥하게 자기를 부르는 소년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은 토끼가 가까이 오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 손바닥으로 토끼의 뺨을 세게 ‘팍!’ 쳤습니다. 그렇게 뺨을 맞은 토끼는 질겁해서 도망을 쳤고, 소년은 “하하하!!” 매우 즐겁게 웃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승민이는 “왜 토끼를 괴롭히는 거니?”하고 그 소년에게 따졌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네가 남의 일에 무슨 상관이야!”하며 도리어 큰 소리를 쳤습니다.>
 
아이들과 이 예문을 읽은 후, 첫 번째로 <가만히 있는 토끼에게 상냥하게 접근해서는, 막상 토끼가 안심하고 다가오자 그를 때린 소년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했다. 물론, 이 질문에 소년이 잘했다고 대답하는 어린이는 하나도 없다. 5학년인 광진, 세영, 지원, 형철이도 하나같이 소년의 행동은 좋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들이 거론한 이유의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그것은 토끼도 사람처럼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 또 입장 바꿔 소년이 그 토끼였다면 기분이 어땠을까를 되물으며 생각을 펼쳤다. 충분히 좋은 의견이었지만, 모두 비슷한 이유를 든 것은 개성이 부족해 보여 안타까움이 있다.
 
이제 두 번째로 승민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 <못된 짓을 하는 소년을 옆에서 바라보던 승민이는 용기 있게 소년에게 그가 한 짓이 옳지 않다고 지적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착한 어린이가 된 것처럼 대답하지 말고, 여러분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 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관심 있는 것은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이지, 착한 아이의 생각은 아니다.
 
이에 대해 광진이는 “그 소년이 내 친구라면 승민이처럼 따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행동은 확실히 잘못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소년에게 지적해주면 앞으로는 이런 나쁜 일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의견에 나는 “그럼, 친구가 아니라면 따지지 않을 거니?” 물었다. 광진이는 조금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대답을 흐렸다. 광진이에게 친구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 건지가 추가되면 좋았겠다고 평가를 해 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지원이는 분명하게 잘 표현했다. 지원이는 “일단 따진다. 그리고 그 소년이 나이가 어리면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야단치고 나이가 많으면 부드럽게 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나이가 많은 사람은 거의 다 욕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제시했다.
 
형철이는 1-6학년까지라도 다 따지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1-4학년은 교장실로 끌고 가고, 5-6학년은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후 주위 어른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다. 왜냐하면 살이 많은 우리가 뺨을 맞아도 아프다. 근데 살이 인간보다 적은 토끼가 맞으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러므로 난 지적해 주고 반항하면 위와 같은 방법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밑줄 친 부분은 첫 번째 질문의 대답으로 더 좋았겠다. 형철이에게는 나쁜 행동을 한 아이에게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제시해야 더 적확한 대답이 된다는 말을 해 주었다.
 
한편, <승민이의 지적에 소년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대응했습니다. 소년의 이런 태도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하고 물었다. 이 질문에서는 남이 자기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대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도 네 아이들 모두 ‘자기의 잘못을 잘 생각해보고 뉘우쳐야 하는데, 도리어 더 크게 화를 낸 것은 잘못한 행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예로, 세영이는 이렇게 말했다. “잘못했다. 왜냐하면 소년에게 잘못한 행동이라는 것을 말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승민이에게 따졌기 때문이다. 잘못을 지적하면 지적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받아들이지 않고 화를 냈다. 지적을 받아들이면 자신의 잘못한 점을 알고 고칠 수 있다.”
 
위의 밑줄 친 부분은 문제에서 이미 제시된 것이어서, 결국 중언부언이 되고 말았다. 세영이에게는 질문이나 텍스트의 내용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이유를 펼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승민이가 소년에게 잘못을 지적해 준 것이 바로 ‘개입’이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싸울 때 선생님이 등장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나 동생과 다툴 때, 어머니께서 혼내주시는 것도 모두 개입이다. 이처럼 개입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개입의 예들은 어떤 것이 있을지 찾아볼까요?> 물었다.
 
이에 대한 대답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부모님께서) 잘하고 있는데, 더 잘하라고 지적할 때
2) 친구의 의견이 부족할 때, 보충해 주는 것
3) 내가 친구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컴퓨터 그만 하라고 할 때
4) 친구와 내가 문자를 하고 있는데, 형이 끼어드는 것

 
이제 마지막 문제다. <좀더 좋은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남의 일에 ‘개입’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하고 물었다.
 
광진, 지원, 형철이는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이 어린이들은 “잘못하고 있을 때, 지적 받아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행동을 고쳐야 사회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가 일을 저질렀는데 아무도 지적을 안 하면 그 사람은 그 짓을 계속할 것이다. 또 그런 것이 크게 되어 (문화재를 불태우거나 음주운전을 하는 등)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세영이는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 안 하기도 하다고 했는데, “남이 나쁜 행동이나 단점을 지적해 줄 때는 필요하지만, 자신만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친구가 어떤 생각을 말했을 때 ‘그건 아니야’ 라고 말했다가 그 친구가 기분이 나빠져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으면, 좋은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이 묻힐 수도 있다”고 이유를 제시했다.
 
자칫 개입이 다양성을 해치는 방향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어서 중요하다고 하겠다.
 
개입은 나쁜 행동을 지적해주는 것 외에 나쁜 짓을 거드는 것도 포함한다. 한 예로 나쁜 학생과 한 패가 되어 함께 약한 학생을 왕따시키는 것도 개입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 개입을 하는가에 따라 좋은 세상을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결정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걸 아이들이 꼭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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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2>
▲ 차들의 진입이 금지된 렌 시청앞 광장 모습     © 정인진


변덕스러운 프랑스의 날씨, 배낭은 ‘필수품’

 
볕이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밖으로 나오니 제법 쌀쌀했다. 점퍼깃을 채우고, 혹시 나 하면서 챙긴 면스카프를 가방에서 꺼내 목에 둘둘 마니 훨씬 적당하다. 여전히 그늘을 지날 때는 좀 춥다는 느낌이다.
 
프랑스에서 오래 살아보았지만, 여전히 날씨에는 적응이 안된다. 브르타뉴도 예외는 아니어서 얇은 스웨터나 스카프 같은 걸 챙겨 다니며, 입다가 다시 벗기를 반복하며 산다. 그래서 여기서는 늘 배낭에 비옷이나 스카프, 스웨터 같은 것들을 챙겨 다닌다.
 
물론, 이 배낭은 뭔가 챙겨 나올 때만 쓰는 것은 아니다. 입고 나온 점퍼나 스카프 같은 걸 풀러 놓을 때도 꼭 필요하다. 아침에 쌀쌀했다고 해서 낮에도 같은 날씨는 아니다. 다시 볕이 나서 엄청 더워지기도 하고, 또 언제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릴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옷을 입었다 벗었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며 다녀야 한다.
 
이렇게 준비를 했다면, 걸어다니는 건 문제가 아니다. 오늘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렌 (Rennes)을 탐방할 계획이다. 렌에는 약 20km씩, 남북으로 나뉘어 도시를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이 마련되어 있다. 오늘은 그중 북쪽 둘레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평소에도 볼일을 보러 시내를 갈 때 주로 걷는 편이니, 이런 둘레길 걷는 걸 놓칠 수는 없다. 지난 달에는 남쪽 둘레길을 걸었고, 오늘은 그 북쪽에 있는 길을 걸어볼 생각이다. 이렇게 걷기 좋은 복장으로 차려입고 지도까지 들고 길을 나서니, 마치 관광객이 된 기분이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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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2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무서운 가면을 쓰고 독특한 복장으로 변장한 채 무리지어 지나가는 프랑스 아이들과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할로윈(Halloween)’ 밤이다.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등지에서는 할로윈 때, 아이들이 유령, 마녀, 괴물 등으로 변장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초콜릿, 젤리, 과일, 약간의 돈 등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동네에서는 영미국가에서만큼 할로윈 축제로 들썩이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기괴한 가면, 옷, 도끼나 빗자루 등과 같은 할로윈 상품으로 한 몫 챙기려는 상술이 더 요란할 뿐이다. 그래서 할로윈으로 가장 떠들썩한 곳은 대형슈퍼마켓인 것 같다.
 
호박초롱, ‘등불을 든 잭’
 

▲ 할로윈의 상징 '등불을 든 잭'은 다양하게 변주된 이미지로 대중문화 곳곳에 등장한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주인공 또한 '잭'이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배제되거나 무시당한 죽음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예외적인 날이라는 점에서 ‘할로윈’은 흥미로운 날이기도 하다. 이 날에는 죽음처럼 두려운 것만 아니라 끔찍한 것, 징그러운 것, 기괴한 것, 신비로운 것도 함께 부각된다. 다시 말해서, 해골, 좀비, 유령, 괴물, 마녀, 박쥐, 검은 고양이, 거미, 지렁이 등 평소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게다가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공포영화의 등장인물들까지 가세한다.
 
무엇보다도, 할로윈하면, 속에 양초를 밝힌 주황색 호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호박초롱은 영어로 ‘Jack-o-lantern(잭 오 랜턴: 등불을 든 잭)’이라 불린다. ‘등불을 든 잭’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우리에게 들려주는 아일랜드의 옛 이야기가 재미나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잭은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주정뱅이이다. 어느 날 밤, 잭은 선술집에서 악마를 만난다. “잭, 네 영혼을 거두러 왔다.” “그럼, 지옥에 가기 전에 한 잔만 더 할 수 없을까?” 잭의 제안을 받아들인 악마는 6펜스 동전으로 변한다. 잭은 그 동전을 곧바로 지갑에 넣고서는 악마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십자가 자물쇠를 채운다. “잭, 1년 더 살게 해 줄 테니까 나를 풀어줘.” 악마는 잭을 1년 더 살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겨우 지갑에서 빠져나온다. 약속한 12달이 지난 후에도 잭은 악마가 두 번 다시 그를 뒤쫓지 못하도록 또 장난을 친다. 세월이 흐른 후, 잭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천국에서도, 지옥에서도 거절당하는 신세가 된다. 결국 잭은 최후의 심판 때까지 어둠 속을 방황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잭은 악마를 설득해 활활 타오르는 석탄 한 조각을 얻는다. 그리고 속을 판 무 속에 그 석탄을 넣어 어둠을 밝힐 초롱불을 만든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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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교실> 1. 느릿느릿 사는 삶을 생각합니다

<하늘을 나는 교실>의 첫 칼럼으로 무엇을 할까, 참 많이 생각했다. 첫 칼럼이니만큼 내가  가르치는 것이 전형적으로 드러나면서도, 많은 아이들이 참여해 볼 수 있도록 쉬운 걸 선택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우리, 여유를 가지고 살아요>를 소개할까 한다. 나는 이 공부를 통해, ‘경쟁적이고 서열을 중시하는 사회의 분위기를 벗어나 좀 더 천천히 느리게 살면 안될까’를 아이들과 생각해 보고 싶었다.
 
요즘은 어른은 물론, 아이들도 쉴 시간이 없다. 공부! 공부하는 어른들에 밀려 학교로 학원으로, 쉴 틈 없는 것이 아이들의 현실이다. 내 공부를 하러 오는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여유를 가지고 살아요>를 통해, 어린이 스스로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고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오늘은 3학년인 현준, 지훈, 성원이의 의견을 소개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과 조금은 다른 입장에서 개성 있는 의견을 발표한 지영이의 생각을 곁들일까 한다. 

▲ <헨리는 피치버그까지 걸어서가요> (달리)

이 공부의 텍스트로는 <헨리는 피치버그까지 걸어서가요>(달리)를 골랐다. 이 책의 주인공인 헨리는 걸어서 여행을 간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일을 해 돈을 벌어서 기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그리고 누가 더 빨리 가나 내기를 한다.
 
나는 먼저, <헨리는 피치버그까지 걸어서 가는 걸 택했는데, 이 방법은 어떤 점에서 좋을까요?> 하고 물었다. 
 
이 질문의 대답들 가운데 운동이 되어 몸이 튼튼해진다,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맛있는 걸 따먹을 수 있다, 신기한 동물이나 식물을 볼 수 있다, 등은 많은 어린이들이 발표하는 평범한 의견이다.
 
이에 비해 현준이의 ‘좋은 자리에서 소풍을 할 수 있다’나 ‘나무 밑에서 잘 수 있다’, 또 지훈이의 ‘새로운 걸 발견한다’는 그들의 개성이 비교적 잘 반영되어 있는 의견이다.


이제, <헨리의 친구처럼 일을 해서 돈을 벌어 기차를 타고 가면 어떤 점에서 좋은지> 생각해 볼 차례다. 역시 이에 대해서도 빨리 갈 수 있다, 잠을 자면서 갈 수 있다, 기차에서 맛있는 걸 사먹을 수 있다, 앉아서 편안하게 갈 수 있다 등은 많은 아이들이 발표하는 것들이다. 이것들 외에, 현준이의 ‘조용하게 갈 수 있다’(현준이는 기차 안은 조용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나 지훈이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갈 수 있다’는 의견은 비교적 참신하다.
 
각각의 장점들을 생각해보았다면, 이제 둘 중 어떤 선택이 마음에 드는지 결정할 차례다. 이 대목에서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이처럼 양면 모두를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다면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될 거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양면 모두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이런 식으로 가끔 연습을 시키고 있다.
 
한편, 누구의 선택이 더 마음에 드는지 묻는 질문에 현준이는 헨리 친구의 선택을 골랐다. 기차를 타면 편안하고 조용하게 갈 수 있고, 걸어가면 다리가 아프고 지칠 것 같다는 게 그 이유다. 지훈이도 기차를 타고 가겠단다. 기차를 타면 빨리 갈 수 있고, 새로운 걸 살 수 있다고 했다. 이들과 반대로 성원이는 헨리의 선택이 더 마음에 든다고 대답했다. 걸어가면 몸이 튼튼해지고 건강해지기 때문이라는데, 이 이유는 너무 평범해 좀더 개성 있는 이유를 생각해냈으면 좋았겠다는 마음이다.
 
이제 좀 다른 문제에 관심을 가져볼 것이다. 헨리는 친구와 내기를 했지만, 내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꽃을 따 책 속에 꽂고, 딸기를 따먹고, 그것도 모자라 친구에게 줄 딸기까지 따느라고 내기에 지고 만다. “기차를 타고 오는 게 빨랐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헨리는 천연덕스럽게 “나도 알아. 난 딸기를 따느냐고 늦었어.” 하며, 친구에게 딸기 바구니를 내민다.
 
만약, 헨리가 꽃을 따지 않았다면, 또는 딸기를 따지 않았다면, 내기에 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고 아이들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친구와의 내기에 신경 쓰지 않은 헨리가 여러분은 마음에 듭니까?>
 

▲ <헨리는 피치버그까지 걸어서가요> (달리)
이에 대해 성원이와 현준이는 친구에게 딸기를 따다주려는 착한 마음을 거론하며 헨리의 행동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내기에서 이기는 것보다 친구에게 먹을 것을 따 주는 게 잘 했다고 했는데, 이런 이유를 들어 헨리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들은 참 많다.
 
지훈이 역시 잘했다고 하면서 매우 개성 있는 이유를 제시했다. 그는 ‘헨리가 내기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재미있는 것이 많고 신기한 게 많아서 내기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공부보다는 재미있는 것에 늘 관심이 많은 지훈이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이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아이들에게서 듣고 싶은 대답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과 이 공부를 했지만, 내기보다 재미있는 걸 하는 것의 가치를 거론한 사람은 지훈이가 유일했다.
 
이 세 어린이들과 반대로 지영이는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영이는 ‘기다리는 친구에게 실례가 되고, 남의 입장을 생각해야 하는데, 계속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헨리는 내기를 신경 쓰지 않고 딴 짓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써서 지영이의 생각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이 문제를 마치고 나면 아이들에게 꼭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도 이미 헨리처럼 내기 중인지도 모릅니다. 초등학생이 됨과 동시에 누가 더 공부를 잘 하나, 누가 더 좋은 대학에 가나, 또 누가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나, 등등. 이미 여러분은 이런 경주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런 경주에서 뒤처지지 않고 성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너무 경주에만 신경 쓰면 중요한 어린 시절이 추억도 없이 지나가서 안타깝지 않을까요? 나중에 헨리가 여행 중 꽃을 꽂았던 책을 읽다가 우연히 그때 꽂아 놓은 꽃을 발견한다면, “아, 그 꽃!”하며 반가움을 느끼겠죠. 또 “그때 먹었던 딸기는 정말 꿀맛이었지!”하며, 두고두고 그때 딸기 딴 것을 추억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제 우리도 너무 공부만 하지 않고 또 어떤 것을 하며 어린 시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볼 것이다. 그러면서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행복하게 추억할만한 재미난 것들을 많이많이 생각해 보라고 한다.
 
아이들은 모두 즐거워하며,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늘어놓기에 여념이 없다. 여행가기, 수영하기, 컴퓨터 많이 하기, 친구랑 놀기, 산에 가기, 놀이동산 가기, 만화책보기, 요리를 해서 가족에게 나누어주기, 노래 대회 나가기 등등. 그만하라고 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듯 아이들은 그들의 소망을 펼쳐놓는다.
 
삶을 여유롭게 천천히 살려고 노력했던 헨리의 모습 속에 우리를 비춰 보았다. 그러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아이들과 생각해 보는 것이 즐거웠다. 우리 아이들이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더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만들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하늘을 나는 교실’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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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

▲ 브르타뉴 지도 * 출처: Chrystel Courtin 그림, pascal Coatarlem, Bretagne, cap sur le grand large (De la martiniere Jeunesse, 2001) 중에서     © Chrystel Courtin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반도, 브르타뉴

 
나는 작년부터 하던 일을 멈추고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건 순전히 재충전과 변화를 모색하기 위함인데, 프랑스를 선택한 것은 옛날 유학생활을 했던 곳이라 익숙한 점이 많아서였다.
 
또 프랑스 중에서도 브르타뉴 (Bretagne)지방을 선택한 것은 이곳이 프랑스의 어느 곳보다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프랑스에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곳에 살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특색 있는 점이 많다는 데 놀라고 있다.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브르타뉴지방은 대서양을 향해, 서쪽으로 길게 뻗은 반도 모양을 하고 있다. 바다가 삼면에 위치해 있어서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어업이 발달한 모습이 우리와 닮아 친숙한 모습이다. 
 
브르타뉴 지방의 맨 서쪽은 ‘피니스테르’(Finistere), 중앙의 위쪽은 ‘코트다르모르’(Cotes-d’Armor), 아래쪽은 ‘모르비앙’(Morbihan), 그리고 맨 동쪽은 ‘일에빌렌느’(Ille-et-Vilaine), 이렇게 네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옛날에는 루아르-아틀랑띠끄(Loire-Atlantique)지역까지 브르타뉴에 속해 있었으나, 1957년 루아르-아틀랑띠크가 브르타뉴지역에서 다른 행정지역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네 지역으로 형성되었다.
 
이렇게 네 지역으로 나눠진 브르타뉴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크게 동서로 구분 짓는데, 서쪽을 바스-브르타뉴(Basse-Bretagne), 동쪽을 오트-브르타뉴(Haute-Brertagne)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서쪽 지역의 바스-브르타뉴를 ‘남부(Sud) 브르타뉴’, 오트-브르타뉴를 ‘북부(Nord) 브르타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동서로 위치한 지역을 남과 북으로 부르는 건 참 신기하다. (이하 생략)

 

계속해서 <일다> 지면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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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1



▲ 소소한 일상의 행복감으로 충만한 날의 오후, 난 친구와 함께 근처 묘지를 찾았다.     © 이경신

그릇을 싸게 사기 위해 엠마우스에 간 날이었다. 슈퍼의 싸구려 새 그릇보다도, 벼룩시장의 낡은 그릇보다도 더 싼 값에 필요한 식기를 구할 수 있어 소소한 일상의 행복감으로 충만한 날의 오후였다. 그 날 오후, 난 친구와 함께 근처 묘지를 찾았다. 

묘지는 대규모 상가들과 더불어 도시의 끄트머리에 있었다. 싸구려 물건이나 헌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나 기왕이면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상점들과 달리, 인적 드문 묘지는 비현실적으로 적막했다. 우리 말고는 살아 있는 인간을 찾아볼 수 없어 산 사람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곳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옛날 로마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죽음에 익숙해지도록, 우리가 언젠가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도록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묘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의 공동묘지도 도시 중심가에서 조금 비껴난 곳에 있긴 해도, 도시 한복판에서 버스를 타면 채 15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묘지를 잊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운 사람들이 묻혀 있지 않는 한, 묘지에 발걸음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죽지 않을 듯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묘지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전락해 있었다.(이하 생략)

 

 

아래 <일다> 지면에서 계속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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