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성곽도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8.19 "바다의 도시, 생말로에 가봤어?"
  2. 2014.08.18 아름다운 성곽도시 '디낭'을 찾아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1. 브르타뉴의 성곽 도시들3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인 나를 신기해하며 말을 건네는 이들이 가끔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여기서 뭘 하냐? 등등. 브르타뉴를 여행 중이라고 대답할 때마다  ‘그럼, 생말로(Saint-Malo)는 가보았냐’는 질문을 들을 때가 많다.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하면, 그 사람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꼭 가봐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강조하곤 했다.
 
그래서 생말로는 다른 어느 곳보다 재빨리 달려가 보았다. 소문대로 그곳은 아름다운 도시가 분명했다. 그러나 생말로를 다녀올 때마다 생말로의 진정한 모습을 만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거둘 수 없었는데, 오랫동안 나는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생말로에 다녀왔다.
 
성곽 위를 걸으며 본 생말로의 진풍경
 
생말로는 랑스(Rance)강 하구에 자리잡은 도시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옛 시가지에 1년 내내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성곽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생-뱅상문(La porte Saint-Vincent, 1708년)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쉬워 보인다. 특히 버스나 기차를 타고 생말로를 간다면, 이 문 앞에 꼭 닿게 된다. 기차에서 내려 약 30분 동안 부둣가 도로를 통과해 걸어왔다면, 틀림없이 들었을 실망감을 이제 거둬들여도 될 것이다.

▲ ‘생-뱅상문’ 아래 박혀 있는 담비가 그려진 징.  이 담비가 우리를 명소로 안내한다고 한다.    © 정인진


나는 이 생-뱅상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이 문 입구에 있는 맨홀 뚜껑과 바닥에 박힌 금빛 징 때문이다. 생-뱅상 문 바로 밑바닥에는 뚜껑에 생말로 도시 문장이 새겨진 맨홀이 두 개 있다. 유명한 관광지에서나, 그것도 드물게 볼 수 있는 도시 문장의 맨홀 뚜껑을 생말로에서 보았을 때, 드디어 진정으로 세계적인 관광지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나는 그 이후 브르타뉴 어디에서도 이렇게 멋진 맨홀 뚜껑은 본 적이 없다.

 
사실, 맨홀 뚜껑보다 더 내 눈을 사로 잡은 건 그 바로 옆에 박혀있는 노란 징이다. 이 징에는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담비(hermine)가 ‘내리닫이 살문’(herse) 위를 걷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 모습이 하도 날쌔 보여 이 녀석을 따라가면 성 안을 잘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이 담비는 관광객을 명소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성내에는 이 담비가 그려진 징이 150개나 산재해있다고 한다.(이하 생략)


아래 <일다> 지면에서 계속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6421&section=sc7&section2=%BF%A9%C7%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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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8. 브르타뉴의 성곽 도시들2


디낭, 삶과 죽음의 여신의 언덕
북쪽 생말로(Saint-Malo)만으로 열린 넓고 긴 랑스(Rance)강은 강가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생말로에서 배를 타고 랑스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떡갈나무 숲과 새들이 있는 아름다운 강가 마을로 널리 알려진 ‘생쉴리악’의 풍경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그 강 깊숙한 곳에 디낭(Dinan)이 있다.
 

▲ 랑스강을 통해 배를 타고 디낭 항구에 닿을 때, 멀리 계곡사이를 잇는 고가다리가 보인다.     © 정인진


디낭(Dinan)이라는 단어는 켈트어의 ‘언덕’(Dunos)과 ‘삶과 죽음의 여신’(Ahan)이 결합된 단어로, ‘삶과 죽음의 여신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이름만큼, 강에서 배를 타고 항구로 들어갈 때나 시외버스로 언덕 위의 고가다리(viaduc)를 통해 들어갈 때나, 언제나 디낭으로 들어설 때는 늘 탄성이 먼저 나온다.
 
성곽 안으로 들어서면 도시는 더 아름답다. 계곡사이를 잇는 고가 다리가 없었을 때는 내륙에서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던 곳이 디낭이다. 게다가 높고 튼튼한 돌벽으로 둘러싸인 덕분에 외세로부터 침입이 적어, 오늘날도 여전히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한편, 디낭은 혁명기까지 직물산업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다. 오늘날 문화재로 존재하는 시계탑(15세기), 생말로성당(15~19세기), 생소베르성당의 장식들(17~18세기)은 모두 그때 이룬 부로, 상인들이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기계화된 대량생산에 밀려, 브르타뉴의 다른 도시들처럼 디낭의 직물산업도 실패하고 만다.
 
경제적으로 피폐해 있던 디낭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1852년, 계곡을 잇는 고가다리와 주변에 신도시들이 건설되면서부터다. 특히 1879년, 성벽 밖에 기차역이 건설되면서 브르타뉴의 발전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또 매년 5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도시가 되었으며, 2년마다 열리는 ‘성벽축제’(Fete des Remparts)는 매우 유명하다. (이하생략)


아래 <일다>지면에서 계속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6398&section=sc7&section2=%BF%A9%C7%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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