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연습(14) 촛불과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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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의 성당에서
 
며칠 전 친구와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을 다녀왔다. 아무런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찾은 곳이라서 내겐 마을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여행 안내소를 찾아 무작정 걷다가 오래된 성당 앞에 이르렀다. 그곳에도 어김없이 마을 한 가운데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프랑스 땅을 여행하다 보면 도시나 마을의 중심에는 꼭 성당이 있다. 때로는 위풍당당한 모습에 압도되어, 때로는 건축술의 화려한 기교에 매료되어, 기독교인도 아니고 종교에 대단한 관심도 없지만, 나는 성당 문턱을 넘곤 한다. 그런데 강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이 작은 성당은 앞서 내가 봐왔던 성당들과는 달리, 겉모습이 그리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 수 백 년의 긴 세월을 잘 견뎌낸 석조 건축물이라는 점에 감동했을 따름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마주친 나이든 남자는 마침 성당지기였다. 열쇠꾸러미를 들고 있던 그는 성당 안도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성당 안도 밖만큼이나 세련되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부 벽면에는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성당에 관한 상세하고도 친절한 안내벽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는 다 된 셈인데 안타깝게도, 마을을 찾은 몇 안 되는 관광객들 가운데 우리 이외의 그 누구도 성당 안까지 발길을 주지는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이 날 이곳 성당이 맞이한 유일한 관광객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 앞에서부터 여러 성인들의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작은 성당 안이 어수선할 정도로 성물들로 가득했다. 나는 이것저것을 한참동안 둘러보다 잠시 의자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러자 성당지기가 조금 전 불을 밝혀 둔 성모상 앞의 양초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전 하나를 꺼내 헌금함에 넣고 하얗고 동그란 양초가 담긴 푸른 양초그릇을 집어 들었다. 파랑과 하양이 성모의 색깔이라고 했던가? 조심스럽게 양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은 채, ‘어머니께 평화가 함께 하시길...’이라는 기도를 마음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죽은 자를 위해 밝힌 촛불
 
▲ 작은 성당 안의 성모상 앞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며 촛불을 밝혔다.     © 이경신

이런 기도의 순간, 내가 특정 종교의 신앙인인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신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내가 신을 믿건 믿지 않건, 그런 것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죽은 자를 기억해내고 그 사람을 기리는 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내가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촛불을 밝히기 시작한 것은 제법 오래된 일이다. 일상에 파묻혀 살아가는 우리가 매순간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기도할 수 없으니까, 대신 촛불을 밝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촛불이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해주는 셈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이야기는 기숙사에서 만난 한 미국인 친구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위해 자기 집에 촛불을 켜두었다고 했었다. 그때 그 마음에 무척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촛불을 켜두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이후였던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 이 세상을 떠나간 사람들, 그 사람들을 추억하고 기리기 위함이라면,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껍데기만 남은 형식적인 제사의식에 매달리기보다는 촛불 하나를 밝히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아니,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데 꼭 제삿날을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죽은 사람이 떠오를 때면 언제든 집안 한 구석에 촛불을 켜둔다. 최근에는 마음이 끌리는 성당을 발견할 때마다 생전에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를 위해 양초에 불을 밝혀두곤 한다. 살아서 내내 앓느라 힘겨운 삶을 견뎌야 했던 어머니, 어머니의 영혼이 존재한다면, 죽어서나마 그 영혼이 편안히 쉴 수 있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렇게 여행지에서도 어머니를 떠올리는 짬을 낼 수 있어 좋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어머니와 나누는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내 눈물로 무거운 물통을 져 나르지 않고 솜털처럼 가볍게 춤출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들에게 영원한 휴식을 주소서’
 
나는 양초에 불을 밝히듯, 때로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레퀴엠(Requiem)’을 듣기도 한다. 레퀴엠을 듣고 있는 동안에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 드리는 마음을 갖게 된다. ‘레퀴엠’이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곡’이라서 그런가 보다.
 
‘레퀴엠’이란 용어는 원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종교의식인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로는 죽은 사람을 매장하기 직전의 장례의식이나 이 세상을 이미 떠나 버린 사람들을 추억하기 위한 종교의식이 있다.
 
이 망자를 위한 미사는 “Requiem oeternam dona ei [leis], et lux perpetua luceat ei [leis](주여, 그[그들]에게 영원한 휴식을 주소서, 그[그들]를 위해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라는 라틴어 구절로 시작된다. 그래서 그 첫 단어 ‘레퀴엠(휴식)’이 ‘죽은 자를 위한 미사’를 대신한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 사용되는 미사곡에도 ‘레퀴엠’이라는 이름이 함께 주어진 것이다.

 
레퀴엠의 가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신이 죽은 이들을 불쌍히 여겨 이들 영혼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지 않고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고 있다. 바로 죽은 사람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이 바치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레퀴엠을 듣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비록 죽은 뒤 영혼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죽음이 데려가 버린, 사랑했던 사람들을 위해 잠시 내 시간을 비워낼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죽은 사람을 떠올리는 그 순간, 아직은 살아 있는 내가 이미 죽은 사람과 이어지는 길이 열린다. 이 길을 조용히 거닐다 보면, 삶과 죽음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죽은 자를, 죽음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쉼 없이 달음박질쳐온 삶에 잠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양초에 불을 밝히건, 레퀴엠을 듣건, 뛰어가던 길에서 잠깐 멈춰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바라보길 꺼려하는 길,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우리도 언젠가 앞서 죽어간 사람들처럼 같은 길을 가야 한다. 쉬면서 숨을 고르다 보면, 그 길을 앞서 간 사람이 나를 뒤돌아보며 손짓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떠나간 길도, 또 내가 걸을 길도 모두 평화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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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13. 죽음의 과정 직면하기


‘갑작스런 죽음’을 바라는 사람들
오래 전, 대학 후배와 어떤 죽음을 맞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후배는 사고를 당해 갑자기 죽기보다는 ‘병에 걸려 죽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병에 걸려서 죽으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인 심장전문의 버나드 라운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다수의 사람들은 그 후배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고통을 받으며 천천히 죽기보다 불현듯 죽기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사람일수록 갑작스러운 죽음을 더 갈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오늘날, 다들 죽음이 불시에 덮쳐 오길 바라는 것일까? 어쩌면 중년이 된 그 후배도 지금쯤은 20대 때의 생각을 바꿨을지도 모르겠다.
 
왜 사람들은 그토록 갑자기 죽기를 바라는 것일까? 조금이라도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이때 문제가 되는 고통은 비단 육체적 고통만은 아닐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정서적 고통, 심리적 고통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병원에 입원해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살펴보면, 죽어가는 사람이 더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 자존심과 품위를 지킬 수 없다는 것에서 그 고통이 비롯된다.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며 자신의 삶을 순전히 타인들에게 내맡겨야 하니, 얼마나 모욕적이고 절망스러울까? 만약 숨 쉬고 먹는 것조차 기계에 의존해야 한다면, 죽어가는 환자의 남은 삶은 아무리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삶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의학의 연구대상으로 전락해 더는 사람 취급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그 분노는 더할 것이다. 어떤 환자의 표현을 빌자면 ‘지옥에 떨어지는 느낌’에 시달리며 죽음의 문턱을 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비인간적인 상황에 화를 내고 괴로워할 의식이 없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해야 할까? 병원에서 죽어가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겨울지 지금은 감히 상상하고 싶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의학적 사형선고를 받는다면?
 
하지만 병원에 자신을 완전히 내던지기에 앞서, 더는 치료할 수 없는 죽을병에 걸렸다는 의학적 사형선고를 받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충격은 적지 않을 것이다.
      
프랑수와 사강의 단편소설 <길모퉁이의 카페>를 보면,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직시함으로써 느끼는 심정을 ‘살갗이 일그러지는 느낌’으로 표현한다.

 
‘살갗이 일그러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작가가 죽어가는 자의 적지 않은 정서적 고통, 크나큰 불안과 공포심을 묘사하려 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내면 저 깊은 곳은 감당하기 어려운, 지독한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소설에서 죽음을 선고받은 마르크란 인물은 병원을 나오자마자 길모퉁이 카페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경마에 당첨되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카페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한턱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다.
 
나는 이 역설적인 마지막 대목을 잊을 수가 없다. 경마당첨이라는 행운으로 가장해 사람들과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오히려 죽어가는 사람, 죽음을 가까이 둔 사람의 고독이 더 깊이, 더 처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죽음을 선고받은 당사자는 그 순간 세상에 홀로 내버려진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삶 밖으로 튕겨 나와 홀로 죽음의 수렁 속으로 가라앉는 구나!’ 하고.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더 외로워질 것이 분명하다.
 
죽는 순간도 홀로 맞을 수밖에 없지만, 죽어가는 과정도 외로운 여정이긴 마찬가지다. 죽음으로의 이 고독한 여행의 첫 걸음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선고받는 바로 그 순간, 내면 저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우리가 탄생하는 순간 죽음을 향한 여행을 이미 시작한 것이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처럼 죽음을 직면하고 자각하는 사람만이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고독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죽음은 고스란히 나 자신의 몫이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죽음의 순간, 우리의 의식이 향하는 곳은…

 
그런데 죽음 직전까지 -의식이 있는 한- 우리는 홀로 죽어가는 사실 때문에 심각한 외로움에 시달린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죽는다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네덜란드 의사 베르트 케이제르는 그의 저서 <죽음과 함께 춤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죽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태어날 때처럼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 그 누구도 자신이 태어난다는 것을 안 사람은 없다. 우리가 죽는 것도 그와 닮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의사는 죽음의 문턱을 넘기 위해 죽음과 격렬하게 투쟁하며 죽는 사람도 매우 드물다고 말한다. “죽음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불편을 주는 이불 주름이나 복도에서 새나오는 성가신 불빛과 씨름하다가 죽는다. 사람은 깨닫지 못하면서 죽어갈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눈부신 태양의 빛을 끝까지 바라볼 수 없는 것처럼 죽음도 그 문턱을 넘는 바로 그 순간까지 의식을 잃지 않고 직시해낼 수 없는 것일까? 우리의 의식이 죽음의 순간에 도달하기에 앞서 죽음의 문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죽음의 순간을 외면해서일까? 아니면 죽는 순간에 앞서 의식이 미리 닫히는 것일까?
 
죽어버린 사람에게 질문을 던질 수 없는 마당이니, 죽어가다가 마침내 죽음을 만나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삶과 죽음 사이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탄생과 죽음은 절대로 대칭이 아니다. 그래서 탄생과 비유해서 죽음을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죽는 순간은 태어나는 순간과 같지 않고, 삶의 양끝에 죽음이 펼쳐져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음 앞의 고독보다 두려운 것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건, 알아차리지 못하건, 죽어가는 동안 의식이 있는 한, 참으로 외로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외로울 수 있다는 까닭은 적어도 아직 죽지 않았고,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의식하는 삶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어쩌면, 죽음에 직면한 외로움은 삶이 마지막으로 안겨주는 강렬한 체험일지도 모른다.
 
비록 죽어가는 동안 겪게 될 고독이 두렵지만, 나는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 외로움을 피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맞는 고독을 갈망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난 그저, 삶을 불시에 훌쩍 떠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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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12. 세포의 자살과 뇌사


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외면일기(현대문학, 2003)>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내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저 내 속에 죽음이 들어 앉아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죽음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이 작가처럼 내 속의 죽음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건강할 때조차 우리 몸의 일부는 지속적으로 죽어간다. 이 사실을 주목한다면, 우리 속에 죽음이 들어앉아 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세포의 자살’
 
우리 몸의 일부가 죽는다는 표현은 좀 더 엄밀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세포 가운데 일부가 사라진다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다.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우리 인간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세포들을 지속적으로 잃으면서 새로운 세포들을 계속해서 얻어 나간다. 개별생명체인 우리를 형성하는 이 세포들은 단 한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세포들로 이루어진 우리 몸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물과 닮았다. 우리가 ‘한강’이라 부르는 강도 알고 보면 단 한 번도 같은 강이었던 적은 없다. 강물은 쉴 새 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나라는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같은 나였던 적은 없다.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끊임없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세포의 일부는 계속해서 죽어간다. 대신, 새로운 세포가 지속적으로 다시 생겨난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 우리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세포는 제때 스스로 죽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랑스의 생물학자 장-끌로드 아마이센(Jean-Claude Ameisen)은 이 ‘세포의 자살’이 우리 몸을 만들어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우리의 두뇌, 팔과 다리 같은 몸의 부분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세포들은 제 목숨을 끊어야 한다.
 
세포의 자살을 통해서만이 우리 몸의 안과 밖이 형성될 수 있다. 세포가 필요한 순간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위 정상적인 몸을 가질 수 없다. 게다가 암세포처럼 죽음을 거부하고 증식을 계속하려 한다면, 그래서 영원히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세포가 계속 죽어버린다면, 역시 개별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세포들이 주변 환경에 맞추어 죽음을 조절한다. 때로는 죽음을 억제하고 때로는 죽음을 유발시킨다. 뿐만 아니라 일부의 세포들이 죽어가는 동안 새로운 세포들이 생겨나 그 자리를 메운다.
 
그렇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는 똑같은 내가 아니다. 나를, 내 몸을 항상 변함없는 정해진 존재로 여기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고정불변의 영원히 정지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포의 탄생과 죽음이 지속적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을 때 우리의 삶도 계속될 수 있다.
 
세포의 자기 파괴와 재생산의 균형 없이는 우리 삶이 지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 삶은 죽음과 극적으로 대립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삶과 죽음의 대화’ 덕분에 우리 삶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 전 누군가가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에서조차 죽어간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개체의 차원에서는 탄생이 죽음과 정반대편에 있는 듯 보이지만, 세포의 차원에서 보면, 죽음은 우리가 탄생하는 순간에 이미 함께하고 있으니 말이다.


뇌사,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런데 삶 속에 죽음이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오늘날 현대인의 죽음 속에는 삶이 존재한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뇌사’를 한번 들여다보자. ‘한 생명체의 마지막 세포가 죽을 때 그 개체를 죽은 것’으로 간주하는 생물학적 죽음의 정의는 ‘뇌가 죽으면 심장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으로 보는 현대 의학의 죽음의 정의 앞에 무색해진다.
 
뇌사는 현대의료기술의 발달, 즉 심폐소생술과 장기이식술의 등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심폐소생술이 뇌사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뇌사를 인정함으로써 장기이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신체에 이식할 장기를 적출하기 위해서는 인간 개체에 대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 즉 뇌사의 승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제 소생술 전문의가 뇌파측정, 뇌혈류조영술과 같은 현대의학의 첨단기술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판정하는 자로 등장한다.
 
장기이식을 가능하게 하는 뇌사자의 몸은 (의학적으로) 죽었지만, (생물학적으로) 죽지 않은 신체이다. 이식에 필요한 장기는 죽어서는 안 되고, 그 장기를 소유한 개체는 죽어야 한다. 뇌가 죽었으니 개체는 죽은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의 심장, 혈액순환은 인공적으로 유지되어 이식에 필요한 부위의 세포들은 계속해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뇌사상태인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죽은 시체와 달리 죽은 존재로 머물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세포를 품고 있는 자다. 살아있으되 살아있지 않고, 죽었으되 죽지 않은 존재가 바로 뇌사자인 것이다.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연구 조사에 의하면, 상당수의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뇌사로 판정된 사람이 죽었다고 믿기가 어려운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완전히 죽지 않았으니까, 그 믿음이 완전히 그릇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뇌사자는 죽은 자이다. 아니, 오히려 죽음 속에 삶을 품고 있는 자이다.
 
죽음이 뇌사로 정의되는 순간, 죽음의 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무의미해졌다. 의학기술의 발달이 죽음의 순간 자체를 뒤흔들어 놓았으니까. 그래서 어떤 이들은 현대인의 죽음을 ‘순간’이 아니라 ‘과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소생술이라는 놀라운 의료기술이 인간의 몸을 삶과 죽음의 중간 지점에 머물게 하는 데 성공한 이래, 그 어느 때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삶의 종지부를 찍는 죽음의 순간, 절대적인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 삶을, 생명을 품은 죽음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대에 이미 들어섰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런 죽음이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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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11. 나이듦을 바라보는 시선


나는, 늙고 있다 

“노년의 고통을 느껴야 하는 운명의 순간까지 질질 끌려온 것 같다. 나는 거울 속에서 쭈글쭈글한 할망구의 얼굴을 본다. 결국 이렇게 늙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짜증스러운 병, 고통,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 흉한 모습으로만 가득한 노년의 여정을 밟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다.” -미셸 스파이더 <죽음을 그리다>(아고라, 2006)
 
하루에 두 번 정도 거울을 볼까? 세수할 때나 잠깐 거울 앞에 서 있으니, 내 얼굴을 바라볼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안경을 벗으면 거울 앞에 서 본들, 도무지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다. 얼굴은 안개에 가린 듯 뿌옇게 흐려져 있다. 윗글을 쓴 여성처럼 노년의 고통을 체감할 정도로 늙지도 않았지만,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짬이 없어 그 고통이 더 적을 수도 있겠다.
 
어쩌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때면, 주름이 전보다 늘어난 것이 느껴진다. 주름만 많아진 것은 아니다. 잡티, 점, 주근깨, 기미도 얼굴 표면 여기저기에 거무스름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더 지쳐 보인다. 몇 년 전부터 가까운 사람들이 내게 기미와 잡티 좀 제거하라며 성화다. 내 눈에도 날로 얼룩덜룩해지는 얼굴이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부터는 바닥을 쓸 때마다 검은 머리카락들 틈에 흰 머리카락 한 두 가닥 정도가 눈에 띈다.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 진한 밤색이나 검정색으로 머리염색을 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좀 더 생기 있어 보이려면 머리카락에 검은 물도 들이고 점과 기미도 제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요즘은 불안이나 근심, 불쾌감에 사로잡힐 때가 더 많아졌다. 몸의 통증도 그 범위가 넓어지고 더 빈번해지고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건망증도 부쩍 잦아졌다. 나도 분명 늙고 있는 것이다.
 
늙음을 부정하는 우리들
 
늙음은 피하고 싶은 고통일까? 아니면 지혜를 퍼 올릴 수 있는 힘일까? 나도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노년은 내게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죽는 것만큼이나 나이 드는 것이 궁금했다. 노년은 하루 중 늦은 오후, 저녁을 거쳐 깊은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들뜬 대지가 서서히 식어서 서늘해지듯, 노년도 차분히 가라앉는 나이처럼 여겨졌다. 주변이 완전히 어둑해지기 전, 하늘은 붉은 빛으로 눈부시게 물이 든다. 늙음도 그처럼 황홀한 빛을 발하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늙음은 내 어린 시절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늙음은 끊임없이 부정된다. 나의 가족들, 친구들, 주변의 이웃은 조금이라도 덜 늙고 더 젊어 보이기 위해 애쓴다. 주름을 펴주고 피부의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화장품이나 마사지를 찾아 바쁘다. 젊어 보이는 외모를 위해서라면 점 등 잡티제거는 필수다. 몸매관리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성형을 해서라도 젊어 보일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택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누구도 늙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젊어 보이려는 노력에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겉보기에 젊어 보이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젊어 보이려는 욕망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있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끊임없이 젊음을 갈망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늙고 있는 나, 늙어버린 나는 이 사회의 부끄러움인 것만 같다.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늙음은 드러내서도 안 되고, 꽁꽁 감춰야 하는 무엇인 걸까?
 
앨리스 워커는 자신의 소설 <새로운 나여, 안녕>에서 케이트의 입을 빌어 말한다.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은 삶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반문한다. 젊어 보이려 한다는 것은 세월이 안겨준 것을 부정하는 것인 만큼 인생의 일부를 잃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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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10. 죽음에 대한 공포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것이 죽는 순간의 고통에 대한 것이건, 자기 존재의 소멸에 대한 것이건, 대개는 죽음을 떠올리면 감당하기 힘든 공포의 무게로 짓눌려지는 듯하다.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죽어가는 동안의 괴로움, 죽는 순간의 고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내 육신이나 영혼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오히려 무서움보다는 어떤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영원히 증발된다는 상상을 해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어지러움으로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 대한 상상
 

▲ 중세 유럽에서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 그림 "죽음의 무도". 작자 미상.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잠과 같은 휴식으로 여겨 환영하기도 한다. 피로하고 힘들었던 하루를 마감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 듯, 죽음은 힘든 인생 다음에 오는 잠과 같은 휴식, 무엇보다도 영원한 휴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 영국인 작가는 죽음을 ‘다정하지만 엄격한 유모’에 비유했다. 시간이 되면 잠자기 싫어하는 아이를 달래서 편안한 잠의 세계로 인도하는 유모처럼 죽음도 때가 되면 아무리 우리가 죽음을 거부한다고 해도 고달픈 삶에 지친 우리에게 진정으로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기다리고 바라던 것, 아니 진심으로 바라야 할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이 과연 잠과 같은 것일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여전히 반문해 볼 수 있다.
 
“죽음이란, 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상황이 아닐까. 그것은 어쩌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 같은 끝이 없고 깊은 깨어 있는 어둠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그런 암흑 속에서 영원히 각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무라카미 하루키의 <TV피플>(삼문,1996) 중에서)” 
 
<영혼의 부정>이라는 책에서 스캇 펙도 이와 유사한 상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텅 비어 있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며 존재한다는’ 이상한 환상이 그것이다.
 
그에 의하면, 죽음 이후에 대한 이러한 상상은 우주를 여행하던 우주인이 사고를 당해 우주선으로부터 분리되어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절대적으로 고독한 상태, 다시 말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영원히 그렇게 존재하도록 운명 지어진 상태에 대한 끔찍한 상상이다.
 
그는 죽음을 무서워하는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기 존재의 영원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 자의식의 영원한 각성상태에 대한 두려움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죽음이 영원히 잠드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분명 두려워할 만하다. 그러나 죽음이 영원히 평화롭게 잠든 상태인지, 죽음 이후에도 인간 개인의 자의식이 깨어 있는 것이지 확인할 길은 없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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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9. 죽음의 전조, 죽음의 징후


죽음을 알리는 '앙꾸'(Ankou)의 수레바퀴 소리


예로부터 프랑스 서북부 해안지방의 사람들은 밤에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가 나면 집에 꼭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았다고 한다. 끔찍한 해골모습을 한 죽음의 일꾼, ‘앙꾸(Ankou)’가 수레를 타고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러 다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게 밤의 수레바퀴 소리는 다름 아닌 ‘죽음의 전조’였다.
 
수레바퀴는 마땅히 낮에 굴러야 하는데, 밤에 구르고 있으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처럼 평소 일어나지 않는 특별한 일, 드문 일은 죽음의 전조일 수 있다고 믿었다. 까치가 지붕에 앉아 있을 때도, 수탉이 밤에 울 때도 ‘앙꾸’가 찾아온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거나 코피가 터진다면, 한밤중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면, 바로 ‘앙꾸’가 일할 때다.
 
이해하기 어렵고 생소하며 낯선 현상, 불길하고 불안을 안겨주는 기운을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예고로 받아들이곤 했던 것은 비단 켈트문화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 문화 속에서 별똥별의 추락을 죽음과 연결시켜온 것을 떠올려 보자.
 
항상 죽음이 우리 곁을 맴돌지만 낯설기만 하고,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죽음은 언제나 두려움을 안겨준다. 그래서 낯설고 불길해 보이는 현상을 죽음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같은 ‘죽음의 전조’에 대한 믿음은 헛웃음을 웃게 할 만큼 황당하고 근거가 없어 보이지만, 일상 속에서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느낌만은 놓지 않도록 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한 예감
 
그렇지만, 믿기 어려운 ‘죽음의 전조’를 그냥 송두리째 포기해 버릴 수 없다. 적어도 부모나 형제, 자매,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은 미리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부모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전조를 체험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의 죽음을 미리 예감한 것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내가 정말로 죽음의 전조를 경험한 것인지 아직도 의심하고 있긴 하다.
 
병을 오랫동안 앓아온 어머니의 경우, 그 죽음이 갑작스러울 것도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은 불시에 다가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한 지 채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갖지 못했었다.
 
고향을 떠나와서 객지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나는 집에 자주 전화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 내가 문득 집에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부터 특별한 일로 봐야 할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전화를 걸기 직전에 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 할머니가 사고를 당한 그날도, 불현 듯 이유 없이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전화를 걸기 전에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었다. 불쾌감이란 표현은 적당하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변화가 있었고,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 아니라 무겁고 불편한 감정에 짓눌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주 연락하며 지냈던 것도 아니고 가까이서 함께 살지도 않았지만 부모님과 할머니의 죽음을 예감했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정말로 죽음의 전조를 경험한 것일까?
  
만약 내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예감한 것이라면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미리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죽음의 전조를 받아 죽음이 임박한 사람을 만나러 달려갈 수 있으면, 그래서 그 사람의 죽음의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분명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예감했다고 그냥 믿고 싶은 것이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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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8. 노망에 대한 두려움


동네를 산책할 때면 여러 집 앞을 지나간다. 아담한 프랑스 집에는 저마다 자기 식으로 개성 있게 가꾼 정원이 있어, 이 정원들의 꽃, 나무, 풀을 곁눈질하며 걷는 것도 산책의 적지 않은 즐거움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낡고 허름해서 오히려 눈길을 끄는 집이 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여기저기가 녹슨, 대문조차 없어 참으로 초라한 집이다. 하루는 그 집 앞을 지나는데 한 할머니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계셨다.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그리고 여러 날이 흘렀다. 산책에서 돌아오던 길에 다시 그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는 대문 밖에 나와 앉아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할머니께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무표정하게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대신,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며 묻지도 않는 말을 꺼내며 횡설수설 말을 끝없이 이어갔다.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말을 그냥 무시하고, 그 곁을 서둘러 지나쳐 왔던 기억이 난다.


그날, 할머니와는 평범한 대화도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치매나 노망에 걸린 걸까? 정신 상태가 온전치 않아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할머니 혼자 낡고 허술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여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지나칠 때마다 그 집을 눈여겨보는 습관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 그날, 할머니와는 평범한 대화도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치매나 노망에 걸린 걸까? 할머니 혼자 낡고 허술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여 걱정스러웠다.     © 이경신


죽는 것보다 두려운 ‘노망’
 
나이가 들어 정신이 혼미해진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일이다. 죽음의 순간까지 또렷한 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 죽음의 공포에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을 더한다. 노인들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노망, 치매라고 말한다. 이처럼 노인들이 정신 줄을 놓을까 불안해하는 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작년,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통계를 보자. 전 세계에서 3천 5백 6십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치매로 고통 받는 사람들 가운데 70%는 ‘알츠하이머(Alzheimer)’ 환자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알츠하이머는 어떤 질병인가? 연구자들에 의하면, 알츠하이머는 두뇌퇴행질환인데, 노화 침착물과 신경구조 단백질의 변형으로 인한 뇌손상이 그 특징이다. 신경독성단백질이 쌓여서 두뇌신경 단백질을 변형시키고 두뇌를 퇴행시켜 죽음을 야기한다.
 
이 병은 대개 8년에서 10년 동안 진행되는 것으로 본다. 병이 진행되는 동안, 기억력이 약화되고 인지능력이 퇴행하고 행동장애를 가져온다. 따라서 자율성을 상실하고 노망에 이르며 결국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8년 반으로 본다. 증상이 처음 나타나서 알츠하이머로 진단이 내려지기까지 대개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여기서 알츠하이머로 고통 받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만 보더라도, 알츠하이머 환자의 74%는 80세 이상의 노인이고, 90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 환자의 40%에 해당된다. 알츠하이머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난 대가로 얻은 ‘노년의 병’이라고 요약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장수하면 할수록 노망으로 삶을 마감하게 될 가능성도 함께 높아지는 것 같다. 죽기 전 10여년의 세월동안 뇌기능을 점차적으로 잃어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오래 사는 것이 오히려 고통일 것이다. 잘 늙고 잘 죽어가는 것에 대한 소망이 노망의 위협 앞에서 무력해지는 느낌이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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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7.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덜어내는 법


연말에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대학후배가 보내온 것이었다. 편지에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그 고통을 함께 지켜보는 사람의 힘겨움이 담겨 있었다. 죽음이 우리 곁에서 소중한 사람을 데려갈 때, 감정의 동요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겪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분명한 것은 죽음이 우리에게 안겨준 상실의 깊은 수렁을 서둘러 빠져 나오기는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간의 힘을 빌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수용할 힘과 지혜를 얻는다. 그렇다면 다들 어떻게 그 슬픔을 견뎌냈을까? 죽은 사람의 공간을 한동안 보존하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회고하며 글을 써 보기도 하고…. 방법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죽은 이들이 남긴 물건들, 반지 칼 옷장…
 
지금껏 나도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여럿 잃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슬픔을 어떻게 삭혀냈었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선 유품에 기댔던 것 같다. 죽은 자가 남긴 물건으로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한 시간을 벌었다. 난 할머니와 부모님이 내 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몇 가지 유품들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반지, 휴대용 칼, 옷장이 그렇다.
 
할머니의 반지와 어머니의 반지는 책상 서랍 깊숙이 감춰놓았다. 할머니의 반지도, 어머니 반지도 대단히 값나가는 것들은 아니지만, 두 분이 생전에 즐겨 끼면서 소중히 여겼던 터라, 내게는 그 반지들이 두 사람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또 휴대용 맥가이버 칼은 아버지가 동료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왔을 때 사가지고 온 칼이다. 아버지께는 첫 유럽여행 기념품인 셈이다.
 
사실, 아버지가 이 칼을 즐겨 사용하셨던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서랍 한 귀퉁이에서 이 칼을 발견하고, 나는 동생들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그냥 가졌다. 그때부터 이 휴대용 다용도 칼은 내 필수품이 되었다. 이 칼은 평소에도 요긴하지만, 집을 떠나 길을 나설 때도 유용하다. 풀밭에서 민들레를 자를 때나 기차 안에서 사과를 먹을 때만이 아니라, 불현듯 뭔가 만들고 싶을 때도 이 칼을 꺼내면 된다.
 

▲ 어머니의 한복을 보관해오다가 수년 전 조각보를 만드는 친구에게 건넸더니, 예쁜 찻잔 받침을 만들어 선물해주었다.   © 이경신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삼층장과 자개장 한쪽을 내 옷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란히 서 있지만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구식 옷장들은 내 평생의 옷장이 될 것이다. 삼층장은 어머니가 신혼살림으로 마련해 오신 것이다. 합판으로 만들어져 허술하고 사용하기에도 불편한 장이지만, 나는 내 나이보다 오래된 그 장이 항상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의 결혼생활을 신혼 때부터 줄곧 가까이서 지켜본 유일한 증인이 아닌가!
 
삼층장을 내게 물려달라고 졸랐을 때 어머니가 빙긋 미소 지었던 기억이 난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여기저기 흠집이 생겨 새색시 같았던 삼층장의 꼴이 참으로 초라해졌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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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6. 서양 철학자와 동양 승려가 전하는 지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문학사상사, 1996)를 읽다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찬장 속에는 과연 질레트 레몬 라임 향 면도용 크림과 쉬크 면도기가 들어있었다. 면도용 크림은 절반 정도 남아 있었고, 뚜껑 부근에 하얀 거품이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죽음이란 그렇게 면도용 크림 절반 정도를 남기고 가는 것이다.”
 
그렇다. 이 소설 속의 도서관 직원 남편처럼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을 쓰다 말고 남겨둔 채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리가 맞게 될 죽음이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는 생전에 어머니가 듣던 가요 카세트테이프들이 떠올랐다. 상자에서 오래된 가요테이프를 하나 꺼내서 틀어보았다. 세월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테이프리코더에서 흘러나오는 가요는 시간의 간격을 훌쩍 뛰어넘는 듯 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소장하던 물건을 남김없이 써버리거나 빈틈없이 정리해두고 죽음을 맞지는 못한다. 죽음이 우리를 데려가는 것은 미처 예상치 못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면 죽음을 따라 서둘러 길을 떠날 수밖에 없다. 죽음은 집안을 정리하고 짐을 꾸릴 시간마저 주지 않을 만큼 냉혹하기도 하다. 죽음이 나를 부르면 미처 읽지 못한 책도 그 자리에 두고, 쓰고 싶은 글이 있어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모두 다 해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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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5. 죽은 몸을 처리하는 방식

오즈 야스지로 일본 감독의 61년도 영화 <고하야가와가의 가을>(小早川家の秋: Autumn For The Kohayagawa Family)를 보면, 화장터의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하는 게 오래전부터의  관례였을까? 2011년 통계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시신의 99.92%를 화장한다고 한다. 매장할 땅이 부족한 데서 비롯한 결과라고 하는데, 놀라운 수치다.
 
매장이냐, 화장이냐
 

▲ 파리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Le cimetiere du Pere Lachaise) 납골당. 파리에서 가장 넓고 유명한 묘지이다. 2004년으로 지은지 200년 되었는데, 오스카 와일드, 짐모리슨, 몰리에르, 에디뜨 피아프, 모딜리아니, 쇼팽 등 유명인이 묻혀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이경신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죽으면 내 육신을 화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땅 속에 묻혀 제법 긴 시간 동안 벌레들의 먹잇감이 되어 천천히 썩어가는 것보다 짧은 시간 소각되는 것이 깔끔할 것 같아서였던 것도 같다.

 
죽은 자의 육신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당장 떠오르는 것이 매장이나 화장이다. 시신을 조각내서 맹금류에게 던져주는 풍장도 존재하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매장이나 화장, 두 가지 방식만을 시신처리방식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라에 따라서 매장과 화장의 비율은 다양하다. 스위스, 영국, 스웨덴, 덴마크에서는 화장 비율이 70%이상으로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장중심의 장묘문화였으나 최근 20년 새 화장을 하는 비율이 17.8%에서 71.1%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반면,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처럼 다수가 매장을 선호해 화장비율이 10% 정도에 그치는 곳도 있다.
 
특히 로마 가톨릭의 영향 아래 있는 나라들이 화장을 기피하고 매장을 선호한다고 한다. 매장을 지지해온 로마 가톨릭 측에서는 1886년 화장을 금지시키고 화장하는 이는 파문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1963년에 와서야 화장 금지를 철회한다.
 
다수의 국민이 가톨릭교도인 프랑스를 살펴보면, 1980년대 초에는 화장비율이 불과 1%정도였지만 오늘날에는 화장비율이 32%에 이른다. 또 70년대에 불과 9개이던 화장터가 현재 150개가 넘는다고 한다. 게다가 2010년도 통계에 의하면, 프랑스인 53%가 죽으면 화장을 원한다고 대답했다. 도대체 왜 프랑스인들이 점차적으로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게 된 것일까?(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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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4. 놀이가 된 죽음

▲ 스코틀랜드의 에딘버그 성 풍경. 이 도시 곳곳에는 죽음의 역사가 깊이 배여 있었다.     © 이경신

잔뜩 찌푸린 하늘, 물기를 머금은 대기, 우산을 내치는 바람. 이른 아침, 온 몸을 비옷으로 감싸고 호텔을 나섰다.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일까? 긴 세월을 견뎌낸 건물들의 짙은 검은 빛과 벽 위 군데군데 자리 잡은 이끼의 선명한 녹색은 묘한 대조를 이루며 눈길을 끈다.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생생한 이미지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낯선 도시, 그 도시의 옛 중심가 거리는 어둡고 비좁은 골목길들로, 미끄러운 작은 계단들로 이어졌다.
  
우연한 기회에 도착한 스코틀랜드의 에딘버그, 이 도시를 배회하며 다닌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이끼 낀 낡은 건축물, 건물들 사이의 어둠침침한 골목길, 음산한 지하 감옥, 오래된 묘지 속의 쓰러진 비석들과 버려진 무덤, 무너져 내린 건물들의 잔해가 만든 폐허 등,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동안, 도시의 스산하고 음산한 아름다움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햇살이 났다 바람이 불었다 비를 뿌렸다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이런 독특한 도시 분위기를 더해 준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죽음의 옛 이야기로 가득한 도시
 
도시 곳곳에는 죽음의 역사가 깊이 배어 있었다. 도시가 우리에게 전하는 섬찟한 죽음의 이야기들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우리를 더 전율케 한다.
 
우리는 여름철 더위를 식히려고 공포를 찾기도 한다. 공포소설, 공포영화, 공포 테마 놀이동산에 등장하는 드라큘라, 유령, 좀비, 마녀 등 무섭고 기괴한 존재들은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체온을 내려준다. 이때 우리가 경험하는 두려움은 죽음과 관련한 우리의 상상이 낳은 공포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구시가를 걸으며 만나는 공포는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한다. 에딘버그의 성을 방문해 지하 감옥을 들여다보거나 우물가를 지날 때, 구시가의 골목길, 다리 밑을 걸을 때, 홀리루드 공원((Horyrood Park)의 폐허를 맞닥뜨릴 때, 박물관을 관람할 때조차,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음으로 내몰린 끔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힘없는 여성들을 겨냥한 마녀사냥, 잉글랜드의 국교도에 맞서 장로주의를 지지한 스코틀랜드 서약자들(covenanters)의 대학살, 공중보건이 미비한 도시의 비위생적인 삶이 퍼뜨린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의 창궐 등.
 
여성억압,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박해, 도시의 전염병처럼 과거사 속에 실재한 비극적인 집단적 죽음에 자살과 살인과 같은 개개인의 불행한 죽음이 더해져 도시에는 죽음의 옛 이야기들, 허구가 아닌 진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이 끔찍한 진짜 이야기들이 어두운 도시의 분위기를 더더욱 침울하고 음산하도록 만든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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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 3. 시체에 대한 공포 들여다 보기

밤사이 세찬 비바람으로 잠을 좀 설쳤다. 그렇다고 오전 산책을 포기할 수는 없다. 평소 다니던 대로 도로를 피해서 동네 사이 길을 따라 걸었다. 자동차 소음이 요란스러운 외곽순환도로 위의 다리를 건너면 키 큰 참나무들이 줄 지어선 흙길이 나온다. 지난밤에 내린 비 때문에 땅에는 아직도 군데군데 빗물이 고여 있었다.
 
물웅덩이를 피해 풀을 살짝살짝 밟으면서 걷고 있을 때였다. 풀 위에 검은 회색빛 털 뭉치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두더지다. 태어나서 두더지를 직접 보긴 처음이다.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누운 이 작은 짐승은 숨이 끊긴 상태였다. 왜 여기 이렇게 죽어 있는 것일까? 지난밤 빗물로 두더지 굴에 물이 가득 차서 도망 나오다 숨이 막힌 것일까?
 
나는 두더지를 살짝 뒤집어 보았다. 두더지의 몸은 이미 뻣뻣하게 굳었지만, 몸의 털은 살아 있는 것처럼 윤기가 흘렀다. 상처 하나 없는 말끔한 모습이었다. 죽은 지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았다. 어제 늦은 오전, 이 길을 걸었을 때만 해도 풀 이외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었다. 나는 두더지를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닌 사체를 건드리는 것이 왠지 불편했다.
 
나는, 죽은 것이 싫다
 

▲ 나는 두더지를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닌 '사체'를 건드리는 것이 왠지 불편했다.     © 이경신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죽은 것을 싫어했다. 살아 있는 동물들은 –지렁이를 제외한- 그 어떤 동물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쥐나 뱀, 애벌레조차도 거리낌 없이 대하고 만지곤 했다. 하지만, 죽은 동물은 불편하고 가까이 하기가 싫었다. 만질 엄두도 내질 못했지만 바라보는 것도 끔찍했다. 그래서 작은 곤충, 심지어 해충으로 불리는 파리나 바퀴벌레와 같은 곤충들도 죽이길 싫어했고, 죽어 있는 것은 피했다. 


지금도 고등학교 시절 학교 하수도 청소를 떠올리면 어떻게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하수도가 더러워서 청소일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죽은 쥐들을 치우는 일이 괴로웠던 것이다.
 
학교가 산중턱에 위치해서인지 우리 학교에는 특별히 쥐가 많았다. 학교 정원은 물론이고, 교실에도 쥐들이 발견되어 수업시간이 온통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학교 측에서는 쥐를 잡겠다며 쥐약을 놓았고, 그 약을 먹은 쥐들이 하수도로 뛰어들은 것이다.
 
덕분에 하수도 청소담당이었던 우리들은 더러운 오물 속에 죽어 있는 쥐들을 뒤처리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퉁퉁 부풀어 오른 쥐의 사체를 건져 소각장에 버리는 일은 그 누구도 쉽게 떠맡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하수도 청소반장이었던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끔찍한 몰골의 쥐들을 애써 외면하면서 소각장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멀게 느껴졌던가.
 

그때만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죽은 쥐를 치우는 일을 해낼 수 있었지만, 그 이후 도로바닥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새들이나 작은 짐승들, 길에 나동그라져 있는 고양이 등 죽은 동물들은 마주할 일이 생기면 일단 고개부터 돌리면서 지나갔다. 내게 죽은 동물은 마주대하기 싫은 무엇일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어쩌다 부딪치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으로 여겨졌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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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2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무서운 가면을 쓰고 독특한 복장으로 변장한 채 무리지어 지나가는 프랑스 아이들과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할로윈(Halloween)’ 밤이다.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등지에서는 할로윈 때, 아이들이 유령, 마녀, 괴물 등으로 변장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초콜릿, 젤리, 과일, 약간의 돈 등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동네에서는 영미국가에서만큼 할로윈 축제로 들썩이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기괴한 가면, 옷, 도끼나 빗자루 등과 같은 할로윈 상품으로 한 몫 챙기려는 상술이 더 요란할 뿐이다. 그래서 할로윈으로 가장 떠들썩한 곳은 대형슈퍼마켓인 것 같다.
 
호박초롱, ‘등불을 든 잭’
 

▲ 할로윈의 상징 '등불을 든 잭'은 다양하게 변주된 이미지로 대중문화 곳곳에 등장한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주인공 또한 '잭'이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배제되거나 무시당한 죽음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예외적인 날이라는 점에서 ‘할로윈’은 흥미로운 날이기도 하다. 이 날에는 죽음처럼 두려운 것만 아니라 끔찍한 것, 징그러운 것, 기괴한 것, 신비로운 것도 함께 부각된다. 다시 말해서, 해골, 좀비, 유령, 괴물, 마녀, 박쥐, 검은 고양이, 거미, 지렁이 등 평소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게다가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공포영화의 등장인물들까지 가세한다.
 
무엇보다도, 할로윈하면, 속에 양초를 밝힌 주황색 호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호박초롱은 영어로 ‘Jack-o-lantern(잭 오 랜턴: 등불을 든 잭)’이라 불린다. ‘등불을 든 잭’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우리에게 들려주는 아일랜드의 옛 이야기가 재미나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잭은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주정뱅이이다. 어느 날 밤, 잭은 선술집에서 악마를 만난다. “잭, 네 영혼을 거두러 왔다.” “그럼, 지옥에 가기 전에 한 잔만 더 할 수 없을까?” 잭의 제안을 받아들인 악마는 6펜스 동전으로 변한다. 잭은 그 동전을 곧바로 지갑에 넣고서는 악마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십자가 자물쇠를 채운다. “잭, 1년 더 살게 해 줄 테니까 나를 풀어줘.” 악마는 잭을 1년 더 살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겨우 지갑에서 빠져나온다. 약속한 12달이 지난 후에도 잭은 악마가 두 번 다시 그를 뒤쫓지 못하도록 또 장난을 친다. 세월이 흐른 후, 잭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천국에서도, 지옥에서도 거절당하는 신세가 된다. 결국 잭은 최후의 심판 때까지 어둠 속을 방황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잭은 악마를 설득해 활활 타오르는 석탄 한 조각을 얻는다. 그리고 속을 판 무 속에 그 석탄을 넣어 어둠을 밝힐 초롱불을 만든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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