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5>

브르타뉴의 집으로 가기 위해, 파리 샤를드골공항(Charles de Gaulle Airport)에서 렌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조금 가다보면 차창 밖으로 빨간 기와집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런 풍경이 달라지는 건 ‘르망’(Le Ment)을 지나면서다. 르망에 다다르면, 빨간 기와지붕과 아르두와즈(ardoise)라 불리는 검은색 돌판 지붕들이 뒤섞여 나타난다. 그러다 어느 새 온통 검은 돌판 지붕으로 마을 모습이 바뀌면, 브르타뉴 지방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 조금만 가면 집이다.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
아르두와즈' 지붕 

▲ 못을 이용해 엮은 아르두와즈 지붕. 지붕의 낡은 버팀목 때문에 돌편을 못으로 어떻게 고정시켰는지 알게 된 건 행운이다. (Vitre에서)     © 정인진

 
이 검은 돌판 지붕만큼 브르타뉴 지방을 잘 표현하는 것이 있을까? 빨간 벽돌집이 북부 프랑스를, 붉은 기와에 아이보리 색으로 벽을 칠한 집들이 남부 프랑스를 대표한다면,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건 아마도 이 아르두와즈 지붕일 것 같다.

 
아르두와즈는 열과 압력에 의해 형성된 돌로, 편암의 일종이다. 여느 편암처럼 얇게 쪼개지는데다가 육중하고 강한 성질 덕분에 오래 전부터 지붕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아르두와즈를 사각형이나 비늘 모양의 얇은 판으로 쪼개 지붕을 엮는다. 판의 두께는 3~9mm, 또는 20~40mm 로 다양하다. 색깔은 검정색, 회색, 청회색 등 검은 빛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짙은 붉은 색이나 초록색을 띄는 것도 있다고 한다.
 
지붕을 엮기 위해서는 옛날에는 못으로 고정했고, 19세기 말부터는 갈고리를 이용해 고정시켰다. 이러한 고정방법 때문에 아르두와즈 지붕을 고치기는 쉽지가 않다. 아르두와즈 지붕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돌판들을 지탱하고 있는 골조를 함께 바꿔야 한다. 게다가 값도 비싸서 현대에 와서는 옛날보다 덜 사용하는 편이지만, 브르타뉴에서만큼은 여전히 아르두와즈로 지붕을 엮는다. 

▲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아르두와즈 돌편을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 Copain de la Bretagne 중에서 Milan 2001.    

브르타뉴 외에 맨에루와르(Maine-et-Loire), 아르덴느(Ardennes)와 피레네 고산지역에서도 지붕재료로 아르두와즈를 사용한다. 이 지역들은 모두 아르두와즈가 생산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들을 포함해, 프랑스 전역에서 아르두와즈가 생산되는 곳은 약 10개 지역이 있는데, 이중 세 지역이 브르타뉴에 있다. 브르타뉴의 네 지역 중, 일에빌렌느를 제외한 모르비앙, 코트다모르, 피니스테르, 이 세 지역에서 모두 아르두와즈가 생산된다.
 
옛날에 아르두와즈 돌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리 사이에 돌을 끼고 정으로 돌판을 쪼갰다고 한다. 과거의 돌판 쪼개는 방법을 보여주는 그림은 브르타뉴를 소개하는 책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하도 불편해보여 볼 때마다 얼마나 힘들고 고된 작업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요즘은 생산과정이 기계화 되어, 과거 부자들의 대저택에나 사용되었던 아르두와즈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건축 재료가 되었다. 그러나 서민들까지 아르두와즈 지붕을 갖게 된 건 오래된 일은 아니다. 메밀대나 늪지의 갈대 같은 건초로 엮었던 서민들 가옥의 지붕이 아르두와즈로 대치되기 시작한 건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오늘날, 브르타뉴에서는 큰 공공건물이나 소규모 개인주택 가릴 것 없이 이 돌판으로 기와를 잇는다. 창고나 우체통 위까지 아르두와즈로 지붕을 얹은 경우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르두와즈는 건축 재료만이 아니라 손 칠판으로도 폭넓게 사용되어 왔다. 한편 요즘은 접시로도 인기가 많다. 슈퍼마켓에서는 아르두와즈로 만든 접시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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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2>
▲ 차들의 진입이 금지된 렌 시청앞 광장 모습     © 정인진


변덕스러운 프랑스의 날씨, 배낭은 ‘필수품’

 
볕이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밖으로 나오니 제법 쌀쌀했다. 점퍼깃을 채우고, 혹시 나 하면서 챙긴 면스카프를 가방에서 꺼내 목에 둘둘 마니 훨씬 적당하다. 여전히 그늘을 지날 때는 좀 춥다는 느낌이다.
 
프랑스에서 오래 살아보았지만, 여전히 날씨에는 적응이 안된다. 브르타뉴도 예외는 아니어서 얇은 스웨터나 스카프 같은 걸 챙겨 다니며, 입다가 다시 벗기를 반복하며 산다. 그래서 여기서는 늘 배낭에 비옷이나 스카프, 스웨터 같은 것들을 챙겨 다닌다.
 
물론, 이 배낭은 뭔가 챙겨 나올 때만 쓰는 것은 아니다. 입고 나온 점퍼나 스카프 같은 걸 풀러 놓을 때도 꼭 필요하다. 아침에 쌀쌀했다고 해서 낮에도 같은 날씨는 아니다. 다시 볕이 나서 엄청 더워지기도 하고, 또 언제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릴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옷을 입었다 벗었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며 다녀야 한다.
 
이렇게 준비를 했다면, 걸어다니는 건 문제가 아니다. 오늘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렌 (Rennes)을 탐방할 계획이다. 렌에는 약 20km씩, 남북으로 나뉘어 도시를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이 마련되어 있다. 오늘은 그중 북쪽 둘레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평소에도 볼일을 보러 시내를 갈 때 주로 걷는 편이니, 이런 둘레길 걷는 걸 놓칠 수는 없다. 지난 달에는 남쪽 둘레길을 걸었고, 오늘은 그 북쪽에 있는 길을 걸어볼 생각이다. 이렇게 걷기 좋은 복장으로 차려입고 지도까지 들고 길을 나서니, 마치 관광객이 된 기분이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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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

▲ 브르타뉴 지도 * 출처: Chrystel Courtin 그림, pascal Coatarlem, Bretagne, cap sur le grand large (De la martiniere Jeunesse, 2001) 중에서     © Chrystel Courtin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반도, 브르타뉴

 
나는 작년부터 하던 일을 멈추고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건 순전히 재충전과 변화를 모색하기 위함인데, 프랑스를 선택한 것은 옛날 유학생활을 했던 곳이라 익숙한 점이 많아서였다.
 
또 프랑스 중에서도 브르타뉴 (Bretagne)지방을 선택한 것은 이곳이 프랑스의 어느 곳보다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프랑스에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곳에 살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특색 있는 점이 많다는 데 놀라고 있다.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브르타뉴지방은 대서양을 향해, 서쪽으로 길게 뻗은 반도 모양을 하고 있다. 바다가 삼면에 위치해 있어서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어업이 발달한 모습이 우리와 닮아 친숙한 모습이다. 
 
브르타뉴 지방의 맨 서쪽은 ‘피니스테르’(Finistere), 중앙의 위쪽은 ‘코트다르모르’(Cotes-d’Armor), 아래쪽은 ‘모르비앙’(Morbihan), 그리고 맨 동쪽은 ‘일에빌렌느’(Ille-et-Vilaine), 이렇게 네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옛날에는 루아르-아틀랑띠끄(Loire-Atlantique)지역까지 브르타뉴에 속해 있었으나, 1957년 루아르-아틀랑띠크가 브르타뉴지역에서 다른 행정지역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네 지역으로 형성되었다.
 
이렇게 네 지역으로 나눠진 브르타뉴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크게 동서로 구분 짓는데, 서쪽을 바스-브르타뉴(Basse-Bretagne), 동쪽을 오트-브르타뉴(Haute-Brertagne)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서쪽 지역의 바스-브르타뉴를 ‘남부(Sud) 브르타뉴’, 오트-브르타뉴를 ‘북부(Nord) 브르타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동서로 위치한 지역을 남과 북으로 부르는 건 참 신기하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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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1



▲ 소소한 일상의 행복감으로 충만한 날의 오후, 난 친구와 함께 근처 묘지를 찾았다.     © 이경신

그릇을 싸게 사기 위해 엠마우스에 간 날이었다. 슈퍼의 싸구려 새 그릇보다도, 벼룩시장의 낡은 그릇보다도 더 싼 값에 필요한 식기를 구할 수 있어 소소한 일상의 행복감으로 충만한 날의 오후였다. 그 날 오후, 난 친구와 함께 근처 묘지를 찾았다. 

묘지는 대규모 상가들과 더불어 도시의 끄트머리에 있었다. 싸구려 물건이나 헌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나 기왕이면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상점들과 달리, 인적 드문 묘지는 비현실적으로 적막했다. 우리 말고는 살아 있는 인간을 찾아볼 수 없어 산 사람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곳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옛날 로마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죽음에 익숙해지도록, 우리가 언젠가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도록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묘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의 공동묘지도 도시 중심가에서 조금 비껴난 곳에 있긴 해도, 도시 한복판에서 버스를 타면 채 15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묘지를 잊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운 사람들이 묻혀 있지 않는 한, 묘지에 발걸음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죽지 않을 듯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묘지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전락해 있었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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