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1. 브르타뉴의 성곽 도시들3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인 나를 신기해하며 말을 건네는 이들이 가끔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여기서 뭘 하냐? 등등. 브르타뉴를 여행 중이라고 대답할 때마다  ‘그럼, 생말로(Saint-Malo)는 가보았냐’는 질문을 들을 때가 많다.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하면, 그 사람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꼭 가봐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강조하곤 했다.
 
그래서 생말로는 다른 어느 곳보다 재빨리 달려가 보았다. 소문대로 그곳은 아름다운 도시가 분명했다. 그러나 생말로를 다녀올 때마다 생말로의 진정한 모습을 만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거둘 수 없었는데, 오랫동안 나는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생말로에 다녀왔다.
 
성곽 위를 걸으며 본 생말로의 진풍경
 
생말로는 랑스(Rance)강 하구에 자리잡은 도시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옛 시가지에 1년 내내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성곽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생-뱅상문(La porte Saint-Vincent, 1708년)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쉬워 보인다. 특히 버스나 기차를 타고 생말로를 간다면, 이 문 앞에 꼭 닿게 된다. 기차에서 내려 약 30분 동안 부둣가 도로를 통과해 걸어왔다면, 틀림없이 들었을 실망감을 이제 거둬들여도 될 것이다.

▲ ‘생-뱅상문’ 아래 박혀 있는 담비가 그려진 징.  이 담비가 우리를 명소로 안내한다고 한다.    © 정인진


나는 이 생-뱅상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이 문 입구에 있는 맨홀 뚜껑과 바닥에 박힌 금빛 징 때문이다. 생-뱅상 문 바로 밑바닥에는 뚜껑에 생말로 도시 문장이 새겨진 맨홀이 두 개 있다. 유명한 관광지에서나, 그것도 드물게 볼 수 있는 도시 문장의 맨홀 뚜껑을 생말로에서 보았을 때, 드디어 진정으로 세계적인 관광지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나는 그 이후 브르타뉴 어디에서도 이렇게 멋진 맨홀 뚜껑은 본 적이 없다.

 
사실, 맨홀 뚜껑보다 더 내 눈을 사로 잡은 건 그 바로 옆에 박혀있는 노란 징이다. 이 징에는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담비(hermine)가 ‘내리닫이 살문’(herse) 위를 걷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 모습이 하도 날쌔 보여 이 녀석을 따라가면 성 안을 잘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이 담비는 관광객을 명소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성내에는 이 담비가 그려진 징이 150개나 산재해있다고 한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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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9>

일 년에 한 번, 마을마다 벼룩시장이 열리다
 

▲ 벼룩시장이 열리던 날, 골목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정인진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자 벼룩시장이 열리는 동네가 늘기 시작했다. 겨우내 조용했던 마을의 골목마다 창고 안에 처박혀 있던 해묵은 물건들이 펼쳐지고, 주민들은 음료를 나누며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늦은 봄이나 바캉스가 지난 가을이면, 이곳 브르타뉴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다.
 
렌에서는 작은 단위의 마을마다 돌아가며 벼룩시장이 열린다. 벼룩시장은 한 해에 한 번, 마을잔치를 대신하는 것 같다. 일 년 중 한 차례 정도, 그것도 매년 비슷한 시기, 일요일에 날이 잡힌다는 건 여기서 일 년을 사니,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물론, 벼룩시장이 브르타뉴에서만 열리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많은 도시와 마을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지는 벼룩시장의 장소와 날짜를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http://vide-greniers.org)도 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지역과 날짜, 구체적인 장소를 지도와 함께 검색할 수 있다.
 
이런 벼룩시장이 몇 주 전, 우리 동네 클뢰네에서도 열렸다. 이 동네의 지역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에 다른 어떤 마을의 벼룩시장보다 관심이 갔다.
 
나는 우리 동네 벼룩시장은 만사 제치고 꼭 나가볼 생각이었다. 울타리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은 담장 너머, 늘 감탄하며 바라봤던 꽃들의 주인들이 누군지 볼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라벤더를 흐드러지게 키우는 집의 주인이 궁금했고, 봄마다 마당 가득 수선화가 피어있는 이웃에는 다 누가 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른 어떤 동네보다 설레며,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을 기다렸다. 마침,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벼룩시장이 펼쳐지는 거리는 활기로 넘쳤다.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브르타뉴에서 이 정도라면 충분히 벼룩시장 하기에 좋은 날이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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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8. 브르타뉴의 성곽 도시들2


디낭, 삶과 죽음의 여신의 언덕
북쪽 생말로(Saint-Malo)만으로 열린 넓고 긴 랑스(Rance)강은 강가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생말로에서 배를 타고 랑스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떡갈나무 숲과 새들이 있는 아름다운 강가 마을로 널리 알려진 ‘생쉴리악’의 풍경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그 강 깊숙한 곳에 디낭(Dinan)이 있다.
 

▲ 랑스강을 통해 배를 타고 디낭 항구에 닿을 때, 멀리 계곡사이를 잇는 고가다리가 보인다.     © 정인진


디낭(Dinan)이라는 단어는 켈트어의 ‘언덕’(Dunos)과 ‘삶과 죽음의 여신’(Ahan)이 결합된 단어로, ‘삶과 죽음의 여신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이름만큼, 강에서 배를 타고 항구로 들어갈 때나 시외버스로 언덕 위의 고가다리(viaduc)를 통해 들어갈 때나, 언제나 디낭으로 들어설 때는 늘 탄성이 먼저 나온다.
 
성곽 안으로 들어서면 도시는 더 아름답다. 계곡사이를 잇는 고가 다리가 없었을 때는 내륙에서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던 곳이 디낭이다. 게다가 높고 튼튼한 돌벽으로 둘러싸인 덕분에 외세로부터 침입이 적어, 오늘날도 여전히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한편, 디낭은 혁명기까지 직물산업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다. 오늘날 문화재로 존재하는 시계탑(15세기), 생말로성당(15~19세기), 생소베르성당의 장식들(17~18세기)은 모두 그때 이룬 부로, 상인들이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기계화된 대량생산에 밀려, 브르타뉴의 다른 도시들처럼 디낭의 직물산업도 실패하고 만다.
 
경제적으로 피폐해 있던 디낭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1852년, 계곡을 잇는 고가다리와 주변에 신도시들이 건설되면서부터다. 특히 1879년, 성벽 밖에 기차역이 건설되면서 브르타뉴의 발전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또 매년 5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도시가 되었으며, 2년마다 열리는 ‘성벽축제’(Fete des Remparts)는 매우 유명하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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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5>

브르타뉴의 집으로 가기 위해, 파리 샤를드골공항(Charles de Gaulle Airport)에서 렌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조금 가다보면 차창 밖으로 빨간 기와집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런 풍경이 달라지는 건 ‘르망’(Le Ment)을 지나면서다. 르망에 다다르면, 빨간 기와지붕과 아르두와즈(ardoise)라 불리는 검은색 돌판 지붕들이 뒤섞여 나타난다. 그러다 어느 새 온통 검은 돌판 지붕으로 마을 모습이 바뀌면, 브르타뉴 지방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 조금만 가면 집이다.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
아르두와즈' 지붕 

▲ 못을 이용해 엮은 아르두와즈 지붕. 지붕의 낡은 버팀목 때문에 돌편을 못으로 어떻게 고정시켰는지 알게 된 건 행운이다. (Vitre에서)     © 정인진

 
이 검은 돌판 지붕만큼 브르타뉴 지방을 잘 표현하는 것이 있을까? 빨간 벽돌집이 북부 프랑스를, 붉은 기와에 아이보리 색으로 벽을 칠한 집들이 남부 프랑스를 대표한다면,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건 아마도 이 아르두와즈 지붕일 것 같다.

 
아르두와즈는 열과 압력에 의해 형성된 돌로, 편암의 일종이다. 여느 편암처럼 얇게 쪼개지는데다가 육중하고 강한 성질 덕분에 오래 전부터 지붕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아르두와즈를 사각형이나 비늘 모양의 얇은 판으로 쪼개 지붕을 엮는다. 판의 두께는 3~9mm, 또는 20~40mm 로 다양하다. 색깔은 검정색, 회색, 청회색 등 검은 빛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짙은 붉은 색이나 초록색을 띄는 것도 있다고 한다.
 
지붕을 엮기 위해서는 옛날에는 못으로 고정했고, 19세기 말부터는 갈고리를 이용해 고정시켰다. 이러한 고정방법 때문에 아르두와즈 지붕을 고치기는 쉽지가 않다. 아르두와즈 지붕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돌판들을 지탱하고 있는 골조를 함께 바꿔야 한다. 게다가 값도 비싸서 현대에 와서는 옛날보다 덜 사용하는 편이지만, 브르타뉴에서만큼은 여전히 아르두와즈로 지붕을 엮는다. 

▲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아르두와즈 돌편을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 Copain de la Bretagne 중에서 Milan 2001.    

브르타뉴 외에 맨에루와르(Maine-et-Loire), 아르덴느(Ardennes)와 피레네 고산지역에서도 지붕재료로 아르두와즈를 사용한다. 이 지역들은 모두 아르두와즈가 생산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들을 포함해, 프랑스 전역에서 아르두와즈가 생산되는 곳은 약 10개 지역이 있는데, 이중 세 지역이 브르타뉴에 있다. 브르타뉴의 네 지역 중, 일에빌렌느를 제외한 모르비앙, 코트다모르, 피니스테르, 이 세 지역에서 모두 아르두와즈가 생산된다.
 
옛날에 아르두와즈 돌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리 사이에 돌을 끼고 정으로 돌판을 쪼갰다고 한다. 과거의 돌판 쪼개는 방법을 보여주는 그림은 브르타뉴를 소개하는 책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하도 불편해보여 볼 때마다 얼마나 힘들고 고된 작업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요즘은 생산과정이 기계화 되어, 과거 부자들의 대저택에나 사용되었던 아르두와즈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건축 재료가 되었다. 그러나 서민들까지 아르두와즈 지붕을 갖게 된 건 오래된 일은 아니다. 메밀대나 늪지의 갈대 같은 건초로 엮었던 서민들 가옥의 지붕이 아르두와즈로 대치되기 시작한 건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오늘날, 브르타뉴에서는 큰 공공건물이나 소규모 개인주택 가릴 것 없이 이 돌판으로 기와를 잇는다. 창고나 우체통 위까지 아르두와즈로 지붕을 얹은 경우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르두와즈는 건축 재료만이 아니라 손 칠판으로도 폭넓게 사용되어 왔다. 한편 요즘은 접시로도 인기가 많다. 슈퍼마켓에서는 아르두와즈로 만든 접시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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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3. 브르타뉴의 성곽 도시들1

날은 흐렸지만, 오랜만에 비가 그쳤다. 며칠 째 계속되던 비가 그치자, 어디든 훌쩍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고 간단하게 가방을 챙겼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마음이 일 때 나설 수 있을 만큼, 렌 근처에는 볼만한 유적지들이 많다.
 
특히, 프랑스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동쪽, 일에빌렌느(Ille-et-vilaine)지역에는 옛날 프랑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졌던 요새형태의 성들이 많다. 그런 만큼 이곳들은 참혹한 전투의 현장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브르타뉴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현장이었던 ‘푸제흐’(Fougeres)성을 가볼 생각이다.
 
변방의 참혹한 전투현장, 푸제흐성
 

▲ 푸제흐 성은 복원된 탑들과 폐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정인진


렌에서 북서쪽으로, 시외버스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푸제흐라는 도시가 있다. 푸제흐는 맨느(Maine)와 노르망디(Normandie)지역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브르타뉴의 대표적인 변방지역 중 한 곳이다. 푸제흐가 속해 있는 곳은 예로부터 ‘막슈 드 브르타뉴’(les Marches de Bretagne: 브르타뉴의 변방들)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수세기 동안 프랑스와 브르타뉴의 국경이 계속 옮겨지면서 치열한 전투들이 벌어진 곳이다.
 
변방에 속하는 도시로는 푸제흐 외에도 비트레, 라 게흐슈-드-브르타뉴, 샤토브리앙, 앙스니, 클리쏭, 마슈쿨, 게랑드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푸제흐는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어, 과거 프랑스군은 물론 백년 전쟁 동안에는 영국군과도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흐린 날씨였지만, 길을 걷기는 상쾌했다. 도시 바로 입구에 그 유명한 푸제흐 성이 있고, 버스정류장도 성을 뜻하는 ‘샤또’(chateau)역이다. 나는 더 가지 않고 그 곳에서 내렸다. 지도에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푸제흐 성은 깎아지른 듯한 산들로 둘려쳐져 있는 ‘낭송’(Nancon)계곡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계곡과 같은 이름의 낭송강의 작은 물줄기가 계곡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성은 계곡 한가운데 불쑥 솟아있는 붉은 빛 화강암 바위 위에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성 문앞으로는 낭송강의 깊은 물길이 마치 폭포처럼 성 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흐르고 있었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높고 수려한 여러 채의 탑들과 무너진 건물들의 폐허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옛날에 무너진 걸 20세기에 복원시켰다는 성 안의 탑들도 감탄스러웠지만, 군데군데 다시 만들지 않고 허물어진 상태 그대로인 건축물들의 폐허는 더욱 인상적이다. 푸제흐성은 무너진 탑들 일부는 복원이 되었고 또 몇몇은 허물어진 채 존재하는데, 이런 모습도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뭐든 완벽하고 깔끔하게 예전 모습 그래도 만들어 놓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이런 폐허들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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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2>
▲ 차들의 진입이 금지된 렌 시청앞 광장 모습     © 정인진


변덕스러운 프랑스의 날씨, 배낭은 ‘필수품’

 
볕이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밖으로 나오니 제법 쌀쌀했다. 점퍼깃을 채우고, 혹시 나 하면서 챙긴 면스카프를 가방에서 꺼내 목에 둘둘 마니 훨씬 적당하다. 여전히 그늘을 지날 때는 좀 춥다는 느낌이다.
 
프랑스에서 오래 살아보았지만, 여전히 날씨에는 적응이 안된다. 브르타뉴도 예외는 아니어서 얇은 스웨터나 스카프 같은 걸 챙겨 다니며, 입다가 다시 벗기를 반복하며 산다. 그래서 여기서는 늘 배낭에 비옷이나 스카프, 스웨터 같은 것들을 챙겨 다닌다.
 
물론, 이 배낭은 뭔가 챙겨 나올 때만 쓰는 것은 아니다. 입고 나온 점퍼나 스카프 같은 걸 풀러 놓을 때도 꼭 필요하다. 아침에 쌀쌀했다고 해서 낮에도 같은 날씨는 아니다. 다시 볕이 나서 엄청 더워지기도 하고, 또 언제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릴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옷을 입었다 벗었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며 다녀야 한다.
 
이렇게 준비를 했다면, 걸어다니는 건 문제가 아니다. 오늘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렌 (Rennes)을 탐방할 계획이다. 렌에는 약 20km씩, 남북으로 나뉘어 도시를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이 마련되어 있다. 오늘은 그중 북쪽 둘레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평소에도 볼일을 보러 시내를 갈 때 주로 걷는 편이니, 이런 둘레길 걷는 걸 놓칠 수는 없다. 지난 달에는 남쪽 둘레길을 걸었고, 오늘은 그 북쪽에 있는 길을 걸어볼 생각이다. 이렇게 걷기 좋은 복장으로 차려입고 지도까지 들고 길을 나서니, 마치 관광객이 된 기분이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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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

▲ 브르타뉴 지도 * 출처: Chrystel Courtin 그림, pascal Coatarlem, Bretagne, cap sur le grand large (De la martiniere Jeunesse, 2001) 중에서     © Chrystel Courtin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반도, 브르타뉴

 
나는 작년부터 하던 일을 멈추고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건 순전히 재충전과 변화를 모색하기 위함인데, 프랑스를 선택한 것은 옛날 유학생활을 했던 곳이라 익숙한 점이 많아서였다.
 
또 프랑스 중에서도 브르타뉴 (Bretagne)지방을 선택한 것은 이곳이 프랑스의 어느 곳보다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프랑스에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곳에 살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특색 있는 점이 많다는 데 놀라고 있다.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브르타뉴지방은 대서양을 향해, 서쪽으로 길게 뻗은 반도 모양을 하고 있다. 바다가 삼면에 위치해 있어서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어업이 발달한 모습이 우리와 닮아 친숙한 모습이다. 
 
브르타뉴 지방의 맨 서쪽은 ‘피니스테르’(Finistere), 중앙의 위쪽은 ‘코트다르모르’(Cotes-d’Armor), 아래쪽은 ‘모르비앙’(Morbihan), 그리고 맨 동쪽은 ‘일에빌렌느’(Ille-et-Vilaine), 이렇게 네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옛날에는 루아르-아틀랑띠끄(Loire-Atlantique)지역까지 브르타뉴에 속해 있었으나, 1957년 루아르-아틀랑띠크가 브르타뉴지역에서 다른 행정지역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네 지역으로 형성되었다.
 
이렇게 네 지역으로 나눠진 브르타뉴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크게 동서로 구분 짓는데, 서쪽을 바스-브르타뉴(Basse-Bretagne), 동쪽을 오트-브르타뉴(Haute-Brertagne)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서쪽 지역의 바스-브르타뉴를 ‘남부(Sud) 브르타뉴’, 오트-브르타뉴를 ‘북부(Nord) 브르타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동서로 위치한 지역을 남과 북으로 부르는 건 참 신기하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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