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에 해당되는 글 37건

  1. 2015.02.20 죽음연습 33회 부당한 죽음을 낳은 사형제도
  2. 2014.09.09 왜, 나와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요!
  3. 2014.09.06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시간들
  4. 2014.08.26 그림으로 그리면 쉬워요 (2)
  5. 2014.08.22 죽어가는 사람의 '외로움'
  6. 2014.08.22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
  7. 2014.08.22 내 인생의 다정한 브르타뉴 사람들
  8. 2014.08.22 5주나 되는 프랑스의 유급 여름휴가
  9. 2014.08.22 '어린이 카지노 게임기'를 아십니까?
  10. 2014.08.19 "바다의 도시, 생말로에 가봤어?"
  11. 2014.08.19 노년의 고통은 '힘'이 될 수 있을까
  12. 2014.08.19 1년 내내 문화예술 행사가 넘치는 렌
  13. 2014.08.19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14. 2014.08.19 결정은 내가 내려요!
  15. 2014.08.18 과연, 죽음을 예감할 수 있을까?
  16. 2014.08.18 활기 넘치는 브르타뉴 벼룩시장 나들이
  17. 2014.08.18 나는 다 컸어요!
  18. 2014.08.18 산책길에서 만난 혼잣말 하는 할머니
  19. 2014.08.18 아름다운 성곽도시 '디낭'을 찾아서
  20. 2014.08.17 어머니의 한복으로 만든 찻잔받침
  21. 2014.08.17 꼬리를 무는 생각
  22. 2014.08.17 프랑스 시민의 권리, 장애인도 예외 아니다.
  23. 2014.08.16 죽음을 미리 준비하라
  24. 2014.08.16 할머니는, 왜 화장을 원하셨을까?
  25. 2014.08.15 집 근처 '동네 도서관'을 누리는 행복
  26. 2014.08.15 브르타뉴의 전통가옥, 무엇이 있을까?
  27. 2014.08.13 남의 말만 듣고 판단해도 될까요?
  28. 2014.08.13 변화를 겪는 프랑스의 '시장' 이야기
  29. 2014.08.13 프랑스의 접경지대를 가다
  30. 2014.08.13 오래된 도시에서의 배회


부당한 죽음을 낳은 사형제도

죽음연습(33) 사형제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

 

 

지난 달 17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유인태 의원이 ‘사형제도 폐지와 그 대안’을 주제로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19대 국회는 과연 사형제도를 폐지시킬 수 있을까?

 

유 의원은 2004년에도 절반이 넘는 국회의원(175명)의 서명을 받아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 혜진.예슬 살해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법안이 휴지 조각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사형제도를 유지하길 원하는 여론

 

사실 사형제도 폐지 법안은 15대 국회 때부터 계속해서 상정되어 왔다. 종교단체, 시민단체, 법철학자 등은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에도 사형제도가 지금껏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까닭은 무얼까?

 

(아래 주소에서 계속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6909&section=sc1&section2=%C1%A4%C4%A1/%C1%A4%C3%A5

Posted by 고마리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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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교실>9. 함께 사는 세상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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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이 불편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오늘은 특히 노인에 초점을 맞췄다. 다음은 이 프로그램을 위한 예문이다.
 
<태훈이는 버스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즐겁게 스케이트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한 정류장에 다다랐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버스에 올랐고, 조금 시간이 걸리는가 싶더니 한 할머니께서 힘겹게 버스 계단을 올라오셨습니다. 이 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운전기사는 할머니에게 화를 내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 노인이 집에나 계시지 왜 나와서 이렇게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요!”

그러면서 운전기사는 버스를 거칠게 확 출발시켰습니다. 그 바람에 할머니는 휘청하다 간신히 손잡이를 잡고 쓰러질 뻔한 몸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버스에 타고 있던 어른들 그 누구도 운전기사를 꾸짖지 않았습니다. 태훈이는 운전기사 아저씨가 잘못했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속으로만 생각했을 뿐 겉으로는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몇 년 전 태훈이가 직접 경험한 사건을 가지고 만든 예문이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노인이나 장애인을 도와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도와주기는커녕,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집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수업을 통해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아이들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길 바란다. 오늘은 현준, 성원, 지훈이의 의견을 예로 소개할 것이다.
 
첫 문제로는 <운전기사 아저씨는 거동이 느린 할머니께 심한 말을 하고, 할머니께서 자칫 다치실 수도 있게 행동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과연 잘한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자세하게 써 보세요.> 하고 질문했다.
 
이 질문에 잘했다고 대답하는 어린이는 물론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자세히 밝혀 쓰는 것이다.
 
현준, 성원, 지훈이도 운전기사 아저씨가 잘못했다고 모두 입을 모았다. 현준이는 “할머니께 심한 말을 하면 할머니께서 화가 나고 거칠게 버스를 확 출발하면 할머니께서 다칠 수 있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성원이는 “할머니가 크게 다칠 수 있고, 할머니에게 예의 바르지 않은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예의 바르게 할머니가 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둘 다 자신의 의견에 대한 근거를 밝혀 참 잘 썼다.
 
그에 비해 지훈이는 “할머니는 나이가 많은데, 그렇게 심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대답했는데, 왜 나이 많은 할머니께 심한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를 위 아이들처럼 좀 더 자세하게 쓰면 좋겠다.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자. <운전기사 아저씨는 ‘노인은 집에만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밖에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좀더 적극적으로 배타적인 태도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게 하려고 만든 것이다.
 
지훈이는 노인들이 “밖에 다녀야 뼈도 튼튼해지고, 건강하게 된다.”고 했다. 현준이는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고 외로워서 노인은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서는 백화점에 가야” 한단다.
 
성원이도 “노인들도 산책을 해야 건강이 좋아지고, 외로워서 할머니 친구를 만나야 심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트를 가지 않으면 먹을 게 없고, 백화점에 가지 않으면 입을 옷이 없다”고 이유를 들었다.
 
그렇다면 운전기사의 이런 행동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잘못한 것이 없을까? 이제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자. 세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태훈이는 운전기사 아저씨가 잘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태훈이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 이유도 자세하게 써 보세요.>
 
이 질문에서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말로만 착한 아이인 것처럼 써서는 안 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가 아이들의 생각을 가치판단하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훌륭한 가치관을 형성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가치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한다. 그리고 그런 가치있는 생각들이 생각으로만 머물지 말고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도 늘 반복하는 말 중 하나다. 무엇보다 이런 점을 적절한 긴장을 가지고 느끼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항상 쉽지는 않다.
   
여기서 ‘용감하게 따질 거’라고 대답한 아이는 현준이 밖에 없었다. 현준이는 “아저씨, 할머니를 괴롭히지 마세요!”라고 씩씩하게 말하겠단다. “다른 사람들이 버스 기사 아저씨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할머니가 기분이 나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원이는 태훈이처럼 가만히 있을 거란다. “왜냐하면 어른들한테 말하면 꾸짖는 소리만 듣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스에서 아저씨가 나를 쫓아낼 수도 있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지훈이는 “아무 말도 안하고 버스를 (내린 후 다른 버스로) 다시 탄다. 그 버스를 타면, 계속 세게 달릴 수도 있어서 위험하다”고 대답했다.
 
앞에서 말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잘못을 지적해 주겠다는 아이나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고 대답한 아이들도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말해서 훌륭하다. 다만, 그들이 이런 자신에게 아무 부끄럼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 지금은 이렇게밖에 못하지만, 용기를 길러, 언젠가는 부정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다음 문제로 넘어가자. 우리는 시간에 쫓겨 빨리 운전해야 하는 아저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만약 버스에 계단이 없었다면, 이렇게 서로 곤란한 일이 생겼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계단이 없는 버스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런 버스라면 노인뿐만 아니라 어린이나 장애인,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어른들, 모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렇다면, 버스의 계단처럼 거동하기 불편한 사람을 힘들게 하는 시설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이제 네 번째 질문에 대답할 차례다. <노인과 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시설들이 우리 주변에는 참 많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다섯 개 이상 찾아보세요.>
 
아이들의 대답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지하철역에 계단이 많다. 
2) 아파트의 계단이 너무 길어 탈출하기 어렵다.
3) 지하철 문이 빨리 닫힌다. 

4) 횡단보도를 건널 시간이 짧다. 
5) 횡단보도에 장애인을 위한 버튼이 거의 없다. 
6) 지하철역에 스크린 도어가 많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이들이 대답한 것들은 원한다고 해서 바로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어린이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노인을 위해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이제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노인을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생각나는 대로 많이 써보세요.>
 
지훈 - 휠체어 밀어드리기, 부채질 해주기, 목발집어주기, 업어드리기
현준 - 할머니가 힘들 때 안내해 드린다. 무거운 짐을 들어드린다.
성원 - 버스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비켜드린다. 할머니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드린다. 할머니가 심하게 다치면 병원에 전화해드린다.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다. 아이들이 위에서 발표한 것들을 잊지 말고 꼭 실천했으면 좋겠다. 이런 착한 마음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거라고 믿는다. 
 
(※ ‘하늘을 나는 교실’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아래 <일다> 지면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368&section=&sect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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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14) 촛불과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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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의 성당에서
 
며칠 전 친구와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을 다녀왔다. 아무런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찾은 곳이라서 내겐 마을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여행 안내소를 찾아 무작정 걷다가 오래된 성당 앞에 이르렀다. 그곳에도 어김없이 마을 한 가운데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프랑스 땅을 여행하다 보면 도시나 마을의 중심에는 꼭 성당이 있다. 때로는 위풍당당한 모습에 압도되어, 때로는 건축술의 화려한 기교에 매료되어, 기독교인도 아니고 종교에 대단한 관심도 없지만, 나는 성당 문턱을 넘곤 한다. 그런데 강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이 작은 성당은 앞서 내가 봐왔던 성당들과는 달리, 겉모습이 그리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 수 백 년의 긴 세월을 잘 견뎌낸 석조 건축물이라는 점에 감동했을 따름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마주친 나이든 남자는 마침 성당지기였다. 열쇠꾸러미를 들고 있던 그는 성당 안도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성당 안도 밖만큼이나 세련되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부 벽면에는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성당에 관한 상세하고도 친절한 안내벽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는 다 된 셈인데 안타깝게도, 마을을 찾은 몇 안 되는 관광객들 가운데 우리 이외의 그 누구도 성당 안까지 발길을 주지는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이 날 이곳 성당이 맞이한 유일한 관광객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 앞에서부터 여러 성인들의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작은 성당 안이 어수선할 정도로 성물들로 가득했다. 나는 이것저것을 한참동안 둘러보다 잠시 의자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러자 성당지기가 조금 전 불을 밝혀 둔 성모상 앞의 양초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전 하나를 꺼내 헌금함에 넣고 하얗고 동그란 양초가 담긴 푸른 양초그릇을 집어 들었다. 파랑과 하양이 성모의 색깔이라고 했던가? 조심스럽게 양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은 채, ‘어머니께 평화가 함께 하시길...’이라는 기도를 마음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죽은 자를 위해 밝힌 촛불
 
▲ 작은 성당 안의 성모상 앞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며 촛불을 밝혔다.     © 이경신

이런 기도의 순간, 내가 특정 종교의 신앙인인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신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내가 신을 믿건 믿지 않건, 그런 것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죽은 자를 기억해내고 그 사람을 기리는 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내가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촛불을 밝히기 시작한 것은 제법 오래된 일이다. 일상에 파묻혀 살아가는 우리가 매순간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기도할 수 없으니까, 대신 촛불을 밝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촛불이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해주는 셈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이야기는 기숙사에서 만난 한 미국인 친구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위해 자기 집에 촛불을 켜두었다고 했었다. 그때 그 마음에 무척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촛불을 켜두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이후였던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 이 세상을 떠나간 사람들, 그 사람들을 추억하고 기리기 위함이라면,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껍데기만 남은 형식적인 제사의식에 매달리기보다는 촛불 하나를 밝히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아니,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데 꼭 제삿날을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죽은 사람이 떠오를 때면 언제든 집안 한 구석에 촛불을 켜둔다. 최근에는 마음이 끌리는 성당을 발견할 때마다 생전에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를 위해 양초에 불을 밝혀두곤 한다. 살아서 내내 앓느라 힘겨운 삶을 견뎌야 했던 어머니, 어머니의 영혼이 존재한다면, 죽어서나마 그 영혼이 편안히 쉴 수 있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렇게 여행지에서도 어머니를 떠올리는 짬을 낼 수 있어 좋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어머니와 나누는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내 눈물로 무거운 물통을 져 나르지 않고 솜털처럼 가볍게 춤출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들에게 영원한 휴식을 주소서’
 
나는 양초에 불을 밝히듯, 때로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레퀴엠(Requiem)’을 듣기도 한다. 레퀴엠을 듣고 있는 동안에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 드리는 마음을 갖게 된다. ‘레퀴엠’이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곡’이라서 그런가 보다.
 
‘레퀴엠’이란 용어는 원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종교의식인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로는 죽은 사람을 매장하기 직전의 장례의식이나 이 세상을 이미 떠나 버린 사람들을 추억하기 위한 종교의식이 있다.
 
이 망자를 위한 미사는 “Requiem oeternam dona ei [leis], et lux perpetua luceat ei [leis](주여, 그[그들]에게 영원한 휴식을 주소서, 그[그들]를 위해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라는 라틴어 구절로 시작된다. 그래서 그 첫 단어 ‘레퀴엠(휴식)’이 ‘죽은 자를 위한 미사’를 대신한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 사용되는 미사곡에도 ‘레퀴엠’이라는 이름이 함께 주어진 것이다.

 
레퀴엠의 가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신이 죽은 이들을 불쌍히 여겨 이들 영혼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지 않고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고 있다. 바로 죽은 사람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이 바치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레퀴엠을 듣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비록 죽은 뒤 영혼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죽음이 데려가 버린, 사랑했던 사람들을 위해 잠시 내 시간을 비워낼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죽은 사람을 떠올리는 그 순간, 아직은 살아 있는 내가 이미 죽은 사람과 이어지는 길이 열린다. 이 길을 조용히 거닐다 보면, 삶과 죽음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죽은 자를, 죽음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쉼 없이 달음박질쳐온 삶에 잠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양초에 불을 밝히건, 레퀴엠을 듣건, 뛰어가던 길에서 잠깐 멈춰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바라보길 꺼려하는 길,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우리도 언젠가 앞서 죽어간 사람들처럼 같은 길을 가야 한다. 쉬면서 숨을 고르다 보면, 그 길을 앞서 간 사람이 나를 뒤돌아보며 손짓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떠나간 길도, 또 내가 걸을 길도 모두 평화가 함께하기를…….


아래 <일다> 지면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6400&section=sc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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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연습> 2. 새로운 생각, 그림으로 표현하기


이번 시간에는 그림으로 상상력을 표현하는 걸 연습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적당한 단어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그걸 말이 아닌 그림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림으로 상상력을 표현하다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그리는 도중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아이들은 ‘그게 정말이냐’고 자주 묻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선생님 말이 맞는지 우리 한번 해볼까?” 라고 대답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생각, 그림으로 표현하기>에서는 아이들의 상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설명은 평소와 다르게 간단하게 쓰고 그림에 더 열중하라”고 한다. 또한 “그림은 못 그려도 되니까 부담 갖지 말고 마음대로 그리라”는 말도 꼭 하면서 수업을 시작한다.
 
이 수업에서는 기록한 것을 읽지 않고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식으로 발표하게 하는데, 발표 연습으로도 유용하다. 오늘 수업은 3학년인 민지, 상훈, 지영, 성원이의 의견을 사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그림이 중요한 만큼 문제마다 아이들의 그림을 함께 소개할 것이다.
 
첫 번 문제로는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새로운 책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어떻게 만들겠습니까?>를 물었다.
 
민지는 ‘무조건 터치터치 책상’이라고 이름 붙인 책상을 발명했다. 이 책상은 “스탠드의 기둥을 누르면 불이 바로 켜지고, 책상에 바퀴가 달려있어서 책상이 움직인다. 또 책상 위에 있는 리모컨 터치기를 누르면 공부할 것들이 바로 나온다. 게다가 책상 위의 버튼을 누르면 사고 싶은 게 바로 나오기까지 하는” 대단한 책상이다.

▲ 민지가 발명한 '무조건 터치터치 책상'    


상훈이는 책상 앞에 앉으면 공부할 것과 읽으면 좋을 책이 저절로 올라오는 책상을 발명했다.
 
둘째로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새로운 침대를 만들어 보세요.>로 했다.
 
상훈이는 “우주로 간 것 같아서 깊이 잠을 잘 수 있다. 침대 위에서 자장가가 나온다. 또 손이 나와 잠이 잘 들도록 토닥토닥 해 주는” 침대를 발명했다.

▲ 상훈이가 발명한 잠이 잘 오는 침대     


민지도 재미있는 침대를 발명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을 했다. 

침대가 자장자장 하면서 재워준다. 그래도 안자면, “네가 칭얼대! 없앨 거야!”하면서 작은 괴물들이 나온다. 그래도 안자면, 침대 밑에서 왕괴물이 “내가 간다!”한다. 또 서랍 속 괴물들과 공룡이 “내가 간다!” 해서 잠을 안 잘 수가 없다.” 정말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 침대다.
 
이쯤해서 아이들에게 묻는다. <어때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그림을 그리는 중에 정말 튀어나오죠?>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이곤 한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아이디어들이 솟아날 거예요. 너무 잘 그리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요. 우리는 미술공부를 하는 건 아니거든요. 다만 여러분이 알아볼 수 있도록 표현하면 되요. 자신감을 가지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음껏 그려보세요.
 
또 한 가지! 여러분의 상상이 꼭 ‘말이 되는 상상’이어야 한다고 했나요? 그렇죠! 말이 안 되도 된다고 했죠! 게다가 우린 말이 안 되는 걸 좋아하기까지 해요! ‘그게 뭐야! 말도 안 돼!’라는 말을 들을까 걱정하지 말고, 여러분의 상상을 마음껏 발휘해 보세요.>
 
세 번째 문제로 가보자. <지금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보다 더 재미있고 멋진 컴퓨터를 발명해 보세요.>
 
성원이는 버튼을 누르면 키보드와 마우스가 나오고, 또 음식이 나와서 먹으면서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컴퓨터를 발명했다. 무엇보다 이 컴퓨터는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성원이가 발명한 컴퓨터    

 
지영이는 컴퓨터에 소리를 듣는 장치를 저장해서 마우스 대신 말로 하는 편리한 컴퓨터를 발명했다. 게다가 가벼워서 들고 다닐 수도 있고, 키보드는 젤리로 덮여 있어서 팔이 안 아프단다.
 
네 번째로는 <지금까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놀이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민지가 발명한 놀이터는 다음과 같다. “그네에 앉으면 저절로 그네를 밀어준다. 미끄럼틀의 버튼을 누르면 내려오는 것으로 올라가 거꾸로 탈 수 있다. 구름다리와 시소가 연결되어있어 왔다 갔다 하며 놀 수 있다.” 

▲ 민지가 발명한 새로운 놀이터    


성원이는 미끄럼틀이 높아서 내려갈 때 재미있고, 바닥은 스펀지로 되어 있어서 안전한 놀이터를 발명했다. 또 그 곳에 있는 한 놀이기구는 뱅뱅이보다 더 빨리 돌면서도 안전하단다.
 
이제 마지막 문제다. <기존의 학교와는 다른 ‘움직이는 학교’를 만들려고 합니다.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지영이는 자동차 모양의 학교를 발명했는데, 검은 버튼을 누르면 우주여행을 가고 빨간 버튼을 누르면, 땅속에 갈 수 있단다.

▲ 지영이가 발명한 '움직이는 학교'    


성원이는 우주로 갈 수 있는 학교를 발명했다. 투명막이 쳐져서 공기가 밖으로 안 나가고 연료가 닳으면 지구에서 연료가 올라온단다.
 
이렇게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고, 발표하고, 친구들의 아이디어에 깔깔거리며 웃다보면 어느새 수업이 끝날 시간이 다가온다. 아이들 속에는 하늘을 날거나 우주여행을 하거나 또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척척 되는 것들로 넘쳐난다. 난 아이들의 이런 순진함이 좋다.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바로 이런 걸 척도로 어른과 아이를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아이들과 공부할 때마다 하게 된다.
 
이 수업을 마칠 때쯤이면 아이들은 자신의 창의력에 자신감이 부쩍 늘어, 더 웃고 더 즐거워한다. 그리고 다음에 또 하자고 조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 그림으로 표현하기>는 한 차례 더 하고 있다. 아래에 제시된 건 여기에 소개되지 않은 추가 문제들이다. 더 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다면, 이 문제들을 가지고 좀 더 연습을 시켜도 좋겠다.
 

[새로운 생각, 그림으로 표현하기 추가문제]
* 식사하기에 매우 편한, 새로운 식탁을 만들어 보세요.
* 새로운 휴대폰을 발명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상상력을 발휘해 재미있는 휴대폰을 만들어 봅시다.
* 자동차의 내부를 새롭게 디자인해 봅시다.
* 여러분들은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많이 타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탔던 놀이기구들 말고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만들어 보세요.
* 현재 여러분이 공부하고 있는 교실은 네모난 공간에 책상과 의자들이 있을 뿐입니다. 마음에 들게 교실의 모양과 내부를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 재미있게 꾸며봅시다.

 
(※ ‘하늘을 나는 교실’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아래 <일다> 지면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359&section=&sect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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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13. 죽음의 과정 직면하기


‘갑작스런 죽음’을 바라는 사람들
오래 전, 대학 후배와 어떤 죽음을 맞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후배는 사고를 당해 갑자기 죽기보다는 ‘병에 걸려 죽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병에 걸려서 죽으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인 심장전문의 버나드 라운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다수의 사람들은 그 후배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고통을 받으며 천천히 죽기보다 불현듯 죽기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사람일수록 갑작스러운 죽음을 더 갈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오늘날, 다들 죽음이 불시에 덮쳐 오길 바라는 것일까? 어쩌면 중년이 된 그 후배도 지금쯤은 20대 때의 생각을 바꿨을지도 모르겠다.
 
왜 사람들은 그토록 갑자기 죽기를 바라는 것일까? 조금이라도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이때 문제가 되는 고통은 비단 육체적 고통만은 아닐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정서적 고통, 심리적 고통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병원에 입원해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살펴보면, 죽어가는 사람이 더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 자존심과 품위를 지킬 수 없다는 것에서 그 고통이 비롯된다.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며 자신의 삶을 순전히 타인들에게 내맡겨야 하니, 얼마나 모욕적이고 절망스러울까? 만약 숨 쉬고 먹는 것조차 기계에 의존해야 한다면, 죽어가는 환자의 남은 삶은 아무리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삶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의학의 연구대상으로 전락해 더는 사람 취급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그 분노는 더할 것이다. 어떤 환자의 표현을 빌자면 ‘지옥에 떨어지는 느낌’에 시달리며 죽음의 문턱을 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비인간적인 상황에 화를 내고 괴로워할 의식이 없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해야 할까? 병원에서 죽어가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겨울지 지금은 감히 상상하고 싶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의학적 사형선고를 받는다면?
 
하지만 병원에 자신을 완전히 내던지기에 앞서, 더는 치료할 수 없는 죽을병에 걸렸다는 의학적 사형선고를 받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충격은 적지 않을 것이다.
      
프랑수와 사강의 단편소설 <길모퉁이의 카페>를 보면,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직시함으로써 느끼는 심정을 ‘살갗이 일그러지는 느낌’으로 표현한다.

 
‘살갗이 일그러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작가가 죽어가는 자의 적지 않은 정서적 고통, 크나큰 불안과 공포심을 묘사하려 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내면 저 깊은 곳은 감당하기 어려운, 지독한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소설에서 죽음을 선고받은 마르크란 인물은 병원을 나오자마자 길모퉁이 카페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경마에 당첨되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카페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한턱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다.
 
나는 이 역설적인 마지막 대목을 잊을 수가 없다. 경마당첨이라는 행운으로 가장해 사람들과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오히려 죽어가는 사람, 죽음을 가까이 둔 사람의 고독이 더 깊이, 더 처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죽음을 선고받은 당사자는 그 순간 세상에 홀로 내버려진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삶 밖으로 튕겨 나와 홀로 죽음의 수렁 속으로 가라앉는 구나!’ 하고.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더 외로워질 것이 분명하다.
 
죽는 순간도 홀로 맞을 수밖에 없지만, 죽어가는 과정도 외로운 여정이긴 마찬가지다. 죽음으로의 이 고독한 여행의 첫 걸음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선고받는 바로 그 순간, 내면 저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우리가 탄생하는 순간 죽음을 향한 여행을 이미 시작한 것이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처럼 죽음을 직면하고 자각하는 사람만이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고독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죽음은 고스란히 나 자신의 몫이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죽음의 순간, 우리의 의식이 향하는 곳은…

 
그런데 죽음 직전까지 -의식이 있는 한- 우리는 홀로 죽어가는 사실 때문에 심각한 외로움에 시달린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죽는다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네덜란드 의사 베르트 케이제르는 그의 저서 <죽음과 함께 춤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죽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태어날 때처럼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 그 누구도 자신이 태어난다는 것을 안 사람은 없다. 우리가 죽는 것도 그와 닮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의사는 죽음의 문턱을 넘기 위해 죽음과 격렬하게 투쟁하며 죽는 사람도 매우 드물다고 말한다. “죽음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불편을 주는 이불 주름이나 복도에서 새나오는 성가신 불빛과 씨름하다가 죽는다. 사람은 깨닫지 못하면서 죽어갈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눈부신 태양의 빛을 끝까지 바라볼 수 없는 것처럼 죽음도 그 문턱을 넘는 바로 그 순간까지 의식을 잃지 않고 직시해낼 수 없는 것일까? 우리의 의식이 죽음의 순간에 도달하기에 앞서 죽음의 문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죽음의 순간을 외면해서일까? 아니면 죽는 순간에 앞서 의식이 미리 닫히는 것일까?
 
죽어버린 사람에게 질문을 던질 수 없는 마당이니, 죽어가다가 마침내 죽음을 만나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삶과 죽음 사이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탄생과 죽음은 절대로 대칭이 아니다. 그래서 탄생과 비유해서 죽음을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죽는 순간은 태어나는 순간과 같지 않고, 삶의 양끝에 죽음이 펼쳐져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음 앞의 고독보다 두려운 것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건, 알아차리지 못하건, 죽어가는 동안 의식이 있는 한, 참으로 외로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외로울 수 있다는 까닭은 적어도 아직 죽지 않았고,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의식하는 삶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어쩌면, 죽음에 직면한 외로움은 삶이 마지막으로 안겨주는 강렬한 체험일지도 모른다.
 
비록 죽어가는 동안 겪게 될 고독이 두렵지만, 나는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 외로움을 피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맞는 고독을 갈망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난 그저, 삶을 불시에 훌쩍 떠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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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12. 세포의 자살과 뇌사


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외면일기(현대문학, 2003)>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내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저 내 속에 죽음이 들어 앉아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죽음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이 작가처럼 내 속의 죽음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건강할 때조차 우리 몸의 일부는 지속적으로 죽어간다. 이 사실을 주목한다면, 우리 속에 죽음이 들어앉아 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세포의 자살’
 
우리 몸의 일부가 죽는다는 표현은 좀 더 엄밀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세포 가운데 일부가 사라진다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다.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우리 인간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세포들을 지속적으로 잃으면서 새로운 세포들을 계속해서 얻어 나간다. 개별생명체인 우리를 형성하는 이 세포들은 단 한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세포들로 이루어진 우리 몸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물과 닮았다. 우리가 ‘한강’이라 부르는 강도 알고 보면 단 한 번도 같은 강이었던 적은 없다. 강물은 쉴 새 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나라는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같은 나였던 적은 없다.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끊임없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세포의 일부는 계속해서 죽어간다. 대신, 새로운 세포가 지속적으로 다시 생겨난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 우리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세포는 제때 스스로 죽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랑스의 생물학자 장-끌로드 아마이센(Jean-Claude Ameisen)은 이 ‘세포의 자살’이 우리 몸을 만들어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우리의 두뇌, 팔과 다리 같은 몸의 부분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세포들은 제 목숨을 끊어야 한다.
 
세포의 자살을 통해서만이 우리 몸의 안과 밖이 형성될 수 있다. 세포가 필요한 순간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위 정상적인 몸을 가질 수 없다. 게다가 암세포처럼 죽음을 거부하고 증식을 계속하려 한다면, 그래서 영원히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세포가 계속 죽어버린다면, 역시 개별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세포들이 주변 환경에 맞추어 죽음을 조절한다. 때로는 죽음을 억제하고 때로는 죽음을 유발시킨다. 뿐만 아니라 일부의 세포들이 죽어가는 동안 새로운 세포들이 생겨나 그 자리를 메운다.
 
그렇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는 똑같은 내가 아니다. 나를, 내 몸을 항상 변함없는 정해진 존재로 여기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고정불변의 영원히 정지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포의 탄생과 죽음이 지속적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을 때 우리의 삶도 계속될 수 있다.
 
세포의 자기 파괴와 재생산의 균형 없이는 우리 삶이 지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 삶은 죽음과 극적으로 대립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삶과 죽음의 대화’ 덕분에 우리 삶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 전 누군가가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에서조차 죽어간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개체의 차원에서는 탄생이 죽음과 정반대편에 있는 듯 보이지만, 세포의 차원에서 보면, 죽음은 우리가 탄생하는 순간에 이미 함께하고 있으니 말이다.


뇌사,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런데 삶 속에 죽음이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오늘날 현대인의 죽음 속에는 삶이 존재한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뇌사’를 한번 들여다보자. ‘한 생명체의 마지막 세포가 죽을 때 그 개체를 죽은 것’으로 간주하는 생물학적 죽음의 정의는 ‘뇌가 죽으면 심장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으로 보는 현대 의학의 죽음의 정의 앞에 무색해진다.
 
뇌사는 현대의료기술의 발달, 즉 심폐소생술과 장기이식술의 등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심폐소생술이 뇌사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뇌사를 인정함으로써 장기이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신체에 이식할 장기를 적출하기 위해서는 인간 개체에 대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 즉 뇌사의 승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제 소생술 전문의가 뇌파측정, 뇌혈류조영술과 같은 현대의학의 첨단기술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판정하는 자로 등장한다.
 
장기이식을 가능하게 하는 뇌사자의 몸은 (의학적으로) 죽었지만, (생물학적으로) 죽지 않은 신체이다. 이식에 필요한 장기는 죽어서는 안 되고, 그 장기를 소유한 개체는 죽어야 한다. 뇌가 죽었으니 개체는 죽은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의 심장, 혈액순환은 인공적으로 유지되어 이식에 필요한 부위의 세포들은 계속해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뇌사상태인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죽은 시체와 달리 죽은 존재로 머물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세포를 품고 있는 자다. 살아있으되 살아있지 않고, 죽었으되 죽지 않은 존재가 바로 뇌사자인 것이다.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연구 조사에 의하면, 상당수의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뇌사로 판정된 사람이 죽었다고 믿기가 어려운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완전히 죽지 않았으니까, 그 믿음이 완전히 그릇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뇌사자는 죽은 자이다. 아니, 오히려 죽음 속에 삶을 품고 있는 자이다.
 
죽음이 뇌사로 정의되는 순간, 죽음의 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무의미해졌다. 의학기술의 발달이 죽음의 순간 자체를 뒤흔들어 놓았으니까. 그래서 어떤 이들은 현대인의 죽음을 ‘순간’이 아니라 ‘과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소생술이라는 놀라운 의료기술이 인간의 몸을 삶과 죽음의 중간 지점에 머물게 하는 데 성공한 이래, 그 어느 때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삶의 종지부를 찍는 죽음의 순간, 절대적인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 삶을, 생명을 품은 죽음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대에 이미 들어섰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런 죽음이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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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3> 그리운 이름


남 프랑스의 몽쁠리에(Montpellier)라는 도시로 여행을 왔다. 몽쁠리에는 10여년 전 내가 어학연수를 했던 곳이다.
 
몽쁠리에로 가기 위해 이른 새벽 기차를 타고 오전 내내 프랑스 내륙을 달렸다. 브르타뉴의 목초지와 밀밭 풍경은 어느새 해바라기 밭으로 바뀌고, 햇살이 완연히 다르다고 느껴질 즈음에는 포도밭과 올리브밭이 차창 밖으로 펼쳐졌다. 창 밖이 온통 이런 풍경이라면 남부 깊숙이 접어든 것이다. 그러다가 기차에서 내려 역을 빠져 나와 햇빛에 후끈 달아오른 남부의 공기에 휘감기자, 남불에 도착했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몽쁠리에 주인집 할아버지, 무슈 꾸르꾸
 
오늘은 지중해변으로 해수욕을 하러 갔다. 여름 지중해를 보니, 몽쁠리에에 살던 때 해수욕을 하러 왔던 것이 기억났다. 나는 당시 방 한 칸을 세내어 살았던 주인집 할머니, 할아버지와 여름 방학 내내 바닷가에 왔었다.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잠시 빈둥거리고 있으면 방 밖에서 할머니가 소리쳤다.
 
“인진, 해변에 가자!”
“네~!”

 
큰 소리로 얼른 대답하고는 간단한 것을 주섬주섬 챙겨, 늘 우당탕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주인집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잊지 않고 해수욕을 갈 때마다 나를 챙기셨다. 그 해 여름, 그렇게 자주 해수욕장에 다닐 수 있었던 건 모두 집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덕분이다.
 

▲ 한 꼴롱바주 건물에 새겨진 브르타뉴의 부부 모습. (Vannes에서)  ©정인진

생각해보니, 그때 주인 할아버지는 브르타뉴 출신이었다. 젊은 시절 내내 브르타뉴에서 살다가 따뜻하고 햇볕이 좋은 남부 프랑스로 이사를 온 것이 10여년 전이라고 했다. 할머니도 무척 상냥한 분이었지만, 60대 중반의 꾸르꾸(Courcou)씨는 더욱 다정한 분이었다.
 
저녁식사 때마다 시원한 로제(rose)포도주를 한 잔씩 주셨기 때문에 그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한 잔 하겠냐고 내게 물을 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그러겠다고 늘 잔을 내밀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도 로제를 한잔 정도 마시는 건 참 좋았다. 할아버지는 포도주를 따를 때마다 우리나라 식으로 잔을 두 손으로 바쳐 들고 있는 나를 늘 재미있어 하였다.
 
몽쁠리에가 있는 랑그독-루시옹(Languedoc-Roussillon)지방은 적포도주나 백포도주가 아니라 ‘로제’라 불리는 분홍빛 포도주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로제’는 백포도주처럼 냉장고에 넣었다가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 특징인데, 꾸르꾸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지금도 포도주 중에서 ‘로제’를 가장 좋아한다.
 
할아버지는 가끔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하러 다니셨는데, 크게 소용될 것 같지도 않은 작은 포도나무 토막과 향이 좋은 향나무 토막을 잘라 내게 가져다 주기도 하셨다. 물론, 나는 이것들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한번도 이런 걸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씀 드린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고 나무토막을 주실 생각을 했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이미 가로수 가지치기를 하는 곳에서 잘려 뒹구는 은행나무 토막을 주워다 책꽂이 앞에 장식을 했던 애였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프랑스에서 첫 해, 1월에도 내내 들꽃들이 피어있는 남부 프랑스에서 ‘여기는 언제 겨울이 오나’ 생각하며 매섭게 추운 겨울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꾸르꾸 할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다.
 
“인진, 이제 겨울이 끝났다. 봄이 올 거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말도 안돼요, 겨울이 가다니! 매일 매일이 가을 같았는데…. 겨울이 가다니요! 나는 겨울이 필요해요! 아주 춥고 건조한 그런 겨울이요!”
“허허! 그럼, 내가 인진이를 위해 겨울을 주문하도록 하지.”

 
이렇듯 꾸르꾸 할아버지와 나는 장단이 잘 맞았다. 그러나 그 분의 고향이 구체적으로 브르타뉴 어디인지 나는 모른다. 그분의 고향 도시를 아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할까마는 꾸르꾸 할아버지의 고향을 여쭈어보지 않은 것을 요즘처럼 안타깝게 생각한 적이 없다.


릴의 기숙사에서 만난 상냥한 청년, 에띠엔느
 
브르타뉴 지역 출신과의 인연이 꾸르꾸 할아버지에서 끝난 것은 아니다. 북부 릴에서 유학을 할 때, 8개월 간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했던 상냥한 에띠엔느가 요즘 들어 부쩍 생각나는 건 그가 바로 브르타뉴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에띠엔느한테도 브르타뉴 어느 도시 출신인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그의 성조차 모른다.
 
당시 내가 살았던 기숙사는 10여 명이 지낼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시설이었는데, 외국인과 프랑스인, 학생과 직장인, 또 여성과 남성이 비교적 골고루 섞여 있었다. 에띠엔느는 직장 때문에 브르타뉴보다 산업이 발달한 북부로 이주한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주말에는 종종 브르타뉴에 살고 계신 부모님 댁을 방문하고 릴로 돌아오곤 했다. 브르타뉴에 갔다가 돌아올 때면, 에띠엔느는 부모님 농장에서 직접 짠 우유나 그가 좋아하는 곰팡이가 잔뜩 핀, 냄새조차 고약한 치즈들을 한아름 가져왔다.
 
에띠엔느의 방에는 커다란 브르타뉴 깃발이 걸려 있었고, 그는 브르타뉴 출신이라는 걸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브르타뉴 지방의 언어와 문자가 따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안 것도 그를 통해서였다. 에띠엔느는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워 그 언어를 조금 안다고 했다.
 
에띠엔느가 고향으로 가지 않는 주말에는 브르타뉴에 살고 있는 애인인 마리-앙드레가 가끔 놀러 오기도 했다. 기숙사에 사는 외국인이라야 네델란드나 벨기에처럼 근처 출신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조차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러 자기 나라로 떠나면, 주말에는 나 혼자 기숙사에 남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 마리-앙드레가 오면, 에띠엔느와 마리-앙드레는 내게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벨기에의 ‘브뤼쥬’와 ‘투르네’를 다녀온 건 바로 그들 덕분이었다.
 
그러면 나는 한국요리를 해서 그들을 식사에 초대하기도 했고, 마리-앙드레도 특별한 프랑스 요리를 해서 나를 초대하였다. 애인과 떨어져 1년을 살았던 에띠엔느는 릴에 집을 구했고, 마리-앙드레도 북부로 이주해 기숙사를 떠났다. 그 당시 상냥한 에띠엔느가 아니었다면, 기숙사 생활을 그만큼 즐겁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묻는 브르타뉴 시민들
 

▲ 우리 동네 빵집의 파티시에(patissier) 아저씨들.    © 정인진


그리고 다시 지금 이곳 렌에서 상냥한 브르타뉴 사람들을 만나면서 산다. 나는 프랑스의 다른 지역에서 살아보기도 하고 여행도 많이 해보았지만, 브르타뉴인들만큼 친절한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길을 잘 확인하기 위해 거리에서 지도를 펼쳐 들기라도 하면 “도움이 필요하세요?” 라고 물으며 어디선가 바로 사람들이 나타나 먼저 친절을 베푸는 것을 경험한 곳은 브르타뉴가 유일했다. 그래서 이곳에 도착한 초창기에는 지도를 꺼내기조차 눈치가 보였다.

 
또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잠시 멈추면, 지나가던 차들이 바로 멈추는 곳도 브르타뉴가 처음이다. 다른 지역의 운전자들도 길을 건너려는 사람 앞에서 차를 멈추는 일은 많았지만, 브르타뉴 사람들은 길 가장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차를 멈추고 건너라는 손짓을 할 때가 많다. 한 번은 빨간 신호등에서조차 건너가라며 차를 멈추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감동하는 건, 시 정책에서도 친절한 면모를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본 경험이 있는 도시인 몽쁠리에나 릴은 ‘꽁트롤레르’(controleur)라고 불리는 검사원들이 불시에 버스나 지하철에 들이닥쳐 차표를 검사할 때가 있다. 평소엔 자율적으로 차표를 기계에 찍게 되어 있어, 학생들 중에는 버스비를 내지 않고 타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버스검사관이 들이닥쳤을 때 차표가 없는 사람은 차비의 2백~3백배를 벌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그 자리에서 수표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찰서로 끌려 간다.
 
렌 지역이라고 해서 버스검사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렌은 불시에 차표를 검사하는 검사원은 없다.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이 가끔 버스나 지하철 입구에서 차표를 검사할 때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차비가 없는 사람은 차를 안 타면 되고, 또 차비를 내지 않으려고 생각했던 사람은 마음을 고쳐먹고 버스 운전사나 지하철 자판기에서 표를 사면 되니, 엄청난 벌금을 물을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나는 렌 시의 이런 교통정책에서조차 상냥한 브르타뉴의 모습을 읽는다.
 

▲  브르타뉴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작품. (브르타뉴 박물관)   © 정인진


세월이 지나서는 그리운 사람이 되어 있는 몽쁠리에의 꾸르꾸 할아버지와 릴의 에띠엔느처럼, 다시 한참 세월이 지나면 브르타뉴를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내게 마을 주민이기도 하고 이웃이기도 했던 브르타뉴 사람들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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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2. 바캉스 행렬에 끼어 

미리암의 별장에 초대받다 
북부 프랑스에 살고 있는 미리암이 바캉스 때 자기네 별장에 놀러 오라고 제안했다. 미리암은 옛날 유학 시절에 세 들어 살았던 집의 주인이다. 작년에도 그녀의 별장이 있는 앙블르퇴즈(Embleuteuse)에 초대받아 며칠 지내다 왔는데, 잊지 않고 올해도 바캉스를 즐기러 오라고 초대해준 것이다.
 
바캉스 이주 행렬에 합류해 앙블르퇴즈가 있는 프랑스 최북단 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곳 북부 해안에서는 영국의 흰 석회절벽이 멀리 어른거리며 보인다. 영국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 해안으로, 4km 너머가 영국이라고 한다.

▲ 여름 휴가 기간, 프랑스 최북단 해안에 있는 앙블르퇴즈의 마을 축제에서 만난 가장 행렬.   © 정인진


마침 내가 도착한 날은 마을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동네 음악, 무용 클럽 회원들이 그동안 쌓은 기량을 뽐내며 행진을 했다. 어린 꼬마부터 성인들까지 한 대열에 섞여 곤봉을 돌리거나 악기를 연주하면서 행진하는 모습이 정답게 느껴졌다. 젊은 남자들은 우스꽝스럽게 여장을 하고 색색의 양산을 높이 받쳐 들고 행렬을 뒤따랐다. 북부 프랑스 축제는 늘 이런 변장과 퍼레이드로 채워진다.
 
행렬에는 해안에서 보트를 운반할 때 쓰는 트랙터들도 동원되었다. 인형을 주렁주렁 매달기도 하고, 동물농장처럼 꾸미기도 한 트랙터들은 모두 어린이들을 실은 수레를 뒤에 매달고 털털거리며 행렬에 합류했다. ‘트랙터 마차’에 탄 아이들은 지나가면서 길가에 늘어선 관중들에게 물총을 쏘기도 하고, 종이로 만든 눈가루를 뿌리며 흥을 돋웠다.
 
여름이 온 것을 축하하는 북 프랑스의 이 유쾌한 마을 축제는 짜임새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툴고 허술한 광경에 더 웃음이 나왔다.
 

▲ 지난 해 여름에는 미리암의 외가친척들과 다과회를 가졌다.  © 정인진

작년에는 성모승천일(8월 15일)을 끼고 앙블르퇴즈에 왔었다. 이곳에 미리암의 부모님과 외가 식구들의 별장이 있는데, 그들은 여름마다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인 미리암의 친척들은 성모승천일 기념미사가 있던 날, 오후에 간단한 다과회를 가졌다. 나도 다과회에 초대를 받았는데, 상냥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어울려 정원에서 함께 차를 나눠 마셨다. 흥이 오른 할머니들은 옛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 방문 중에는 그분들을 뵙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찬바람 부는 해변에서 미리암 부부와 여름을 보내러 온 이웃들과 식사 전에 즐겨 먹는 짠 과자와 음료수를 나누며, 저녁마다 늦도록 수다를 떨었다. (‘아페리티프’라고 부르는 과자를 이들은 식욕을 돋우기 위해 먹는다고 하는데, 우리 입맛으로는 절로 밥맛을 잃게 하는 것 같다.)

 

가사도우미, 아르바이트생도 ‘유급 휴가’ 즐긴다
 
7월 14일은 프랑스 최대 경축일 중 하나인 ‘시민혁명’ 기념일이다. 이날 밤, 전국 각 도시마다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름 휴가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8월 한 달은 존재하지 않는 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7월말까지 모든 시설의 업무가 끝이 난다. 관공서와 회사의 일년 업무가 끝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학교 역시 7월이면 1년이 마무리되고, 9월에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프랑스에서는 7월과 8월 사이에 모든 시민에게 5주의 바캉스가 주어진다. 주당 35시간 노동제가 법제화된 이후부터, 노동 시간을 조정할 경우에 최고 9주까지 휴가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이 여름 휴가가 ‘유급’이라는 사실이다! 프랑스인들은 모두 8월 한달 동안 유급 휴가를 즐긴다. 기업체는 물론 개인이 고용한 사람에게도 휴가비를 주어야 한다.
 
유학 시절, 미리암 집에 살았던 3년 내내 나는 그녀의 세 아이들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개인이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조차 고용인은 여름 휴가와 휴가비를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7월말이 되자 미리암은 지난 11개월 동안 내가 받은 임금을 합해, 한달 평균 금액을 계산해서 휴가비로 주고 바캉스를 떠났다. 뜻밖의 소득에 놀라는 나를 보고, 그녀는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휴가비를 주는 것이 의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가사도우미나 집사 같은 이들도 그를 고용한 사람들로부터 모두 휴가와 함께 휴가비를 받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개인적으로 고용된 사람들조차 휴가비를 받아서 바캉스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바캉스를 지원하는 국가와 시민들
 
여기서는 여름이 되면, 그동안의 빡빡했던 생활을 벗어나 모두 한가로운 시골이나 관광지로 휴가를 떠난다. ‘여름집’이라고 부르는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고, 부모님 댁을 방문하기도 한다. 내가 1년간 살았던 남 프랑스의 노부부 가정의 경우, 여름마다 파리의 큰아들 가족과 런던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이 휴가를 보내러 왔다.
 
물론,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들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도움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 가정의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바캉스를 즐길 수 있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하거나, 가족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 휴가지를 제안해 준다. 정부는 각 가정에 직접 돈을 주기도 하고 바캉스 센터나 레저 센터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 등 다양한 정책을 편다.
▲ 여름이 되면 아삐네 호수는 야외 수영장으로 변한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물놀이와 일광욕을 즐긴다.   © 정인진

이런 지원이 국가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각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주민들이 바캉스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렌 시도 여름휴가 기간에는 여행과 레저 프로그램들이 펼쳐진다. 7월 17일부터 8월 21일까지는 매주 수요일마다 교통비 정도의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일일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해수욕을 할 수 있는 해안도시 두 곳과 내륙의 한 관광도시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여행할 수 있다.
 
7월이 되면 렌 외곽에 있는 ‘아삐네’(Apigne)호수는 야외 수영장으로 변한다. 멀리 휴가를 떠나지 못한 주민들은 이 호수로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물놀이를 즐긴다. 봄부터 날라온 모래 위에서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모래사장 앞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자동차가 없는 사람들도 쉽게 이곳에 올 수 있도록 여름에는 ‘아삐뷔스’(Apibus)라는 특별 버스까지 운행한다. 또 여름 내내 시청 앞 광장에는 일광욕을 위한 의자들이 가득 펼쳐진다.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뿐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 역시 눈 여겨 볼만하다. 텔레비전에서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가 알프스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자원봉사자 덕분에 그곳 가정에서 방학을 보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시민들이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여름방학에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돕는다. 이곳에서 여름 바캉스는 여유 있는 몇몇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건 분명 아닌 것 같다.
 
휴식과 여행을 권하는 나라
 
▲ 일광욕 의자를 놓은 렌 시청 앞 광장. 이 날은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는데, 흐린 날에도 렌 시민들은 의연하게 일광욕을 즐긴다.   ©정인진
프랑스의 유급 휴가는 1936년 6월 법으로 2주가 의무화된 것이 시작이다. 그것이 1956년에는 3주, 1968년에는 4주, 1982년에는 5주로 늘어났다. 이 유급 휴가 덕분에 여행, 스포츠, 레저 산업이 활성화되었고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났다고 한다. 또 전국민이 여름을 즐기게 되자, 철도요금과 바캉스를 보낼 수 있는 장소 이용료가 인하되었다.

 
국가 차원에서는 여행부(le ministere du Tourisme)가 신설되고, 대중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조직들도 만들어졌다.
 
프랑스도 우리 나라처럼 도시에 사람들이 집중되고 시골이나 섬은 점점 공동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긴 유급 휴가 덕분에 여름에는 시골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텅 빈 섬들도 적어도 여름 동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국민을 좀더 쉬게 해주기 위해 고안된 이런 정책이 결국 더 큰 경기 활성화를 이끌어내고, 주민들이 줄어가는 도서벽지에 새로운 방식으로 활기를 불어넣어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에게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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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교실>7. 어린이의 사행심을 부추기는 게임기
 
학교 앞 문구점이나 동네 마트에는 어린이를 위한 게임기들이 많다. 그 게임기들 가운데 ‘카지노 게임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오늘은 이 게임기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런 카지노 게임기가 아이들의 사행심을 키우지는 않는지 우려하는 마음에서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공부를 위해서는 6학년인 해빈, 찬이, 형진, 원석이의 사례를 소개할 것이다.
      
<여러분은 초등학교 주변 문구점에 설치되어 있는 ‘어린이 카지노 게임기’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이 게임기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기면 전광판이 돌아가다 멈추는데, 그때 멈춘 곳의 숫자만큼 기계에서는 돈이 나온다는군요! 처음에는 문구점에서 물건과 바꿀 수 있는 쿠폰이 나왔지만, 점점 호응이 줄어들자 돈을 나오게 했더니 어린이들도 좋아한다고 합니다.>

 
위 글은 오늘 공부의 텍스트이다. 이 텍스트는 몇 해 전 TV 뉴스의 한 보도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텍스트를 읽고, 첫 문제로는 <여러분도 이런 게임기를 보거나 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그 때 어떤 생각을 했나요?>를 물었다.
 
형진이는 “작년에 000마트에서 이런 것과 비슷한 게임을 해보았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했는데, 점점 재미가 있어져서 계속 하게 되었다.”고 자기 경험을 발표했다.
 
원석이는 해 본 적이 없지만, 이런 게임기가 있으면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유는 “만약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는데, 500원밖에 없다면 그걸 기계에 넣고 이겨서 돈을 많이 따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만약 못 따고 실패해서 돈을 잃는다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욕망에 계속하게 될 수도 있어, 이 게임기는 안 좋은 것 같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런 게임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자. <이 게임기가 어린이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나요?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써 보세요.>
 
이 질문에 찬이는 “그 게임을 하면 돈을 많이 잃고 중독이 되어서 나중에는 아주 큰돈을 낭비할 수도 있다. 게임을 하면 재미있고 돈이 나오니깐 중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해빈이도 “그 게임을 하게 된다면 자꾸 하고 싶어져서 중독이 되고, 도박을 하면서 나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건강도 안 좋아지면서 정신까지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또 많은 돈을 낭비하게 된다” 고 썼다.
 
아이들은 이런 카지노 게임기가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 또 돈을 딸 가능성보다 잃을 가능성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기 외에,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여러 가지 게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이번에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하는 게임들 가운데 그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되는 게임은 없는지 생각해 보게 할 것이다.
 
<주변에서 어린이를 위한 게임이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는 게임기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세 가지 이상 찾아보세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써 봅시다.>
 
아이들이 발표한 다양한 게임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M온라인 게임: 싸우는 것이 많이 나온다. 애들이 싸움을 배울 수 있다.
2) G온라인 게임: 사람을 때리고 아이템과 액서서리를 써서 죽이는 것이다. 피는 나오지 않지만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때릴 수 있다.
3) 여드름 짜기: 아이들이 여드름이 났을 때, 여드름을 짜게 해 얼굴에 상처를 남겨 흉터가 생길 수 있다.
4) 인형뽑기: 돈은 싸지만 인형을 뽑지 못하면 10번, 20번 계속 하게 된다.
5) 게임해서 이기면 땅콩초콜릿이 나오는 게임: 오래된 땅콩초콜릿을 넣어 아이들을 식중독에 걸리게 하고 땅콩을 얻기 위해 계속 하게 된다.

 
넷째로 <어른들이 어린이를 위한 게임기를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생각나는 대로 많이 써 보라고 했다.
 
해빈이는 ‘폭력적이지 않은지, 돈을 많이 낭비하지는 않는지, 나이에 맞는 게임인지, 더러운 장면이 있는지, 등을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찬이도 ‘폭력이 나오는가, 음란물인가, 도박성이 있는가, 중독성이 있는가’ 등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으로 꼽았다.
 
마지막 문제는 카지노 게임기에 대한 아이들의 입장을 정리해볼 수 있도록 간단한 논설문을 쓰게 한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각자의 입장을 자유롭게 발표하도록 해도 될 것 같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오늘 공부한 내용을 종합해서 ‘어린이 카지노 게임기’에 대한 여러분의 입장을 논설문으로 써 봅시다.>
 
형진이는 <어린이의 도박!>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그 앞에 ‘카지노 게임은’이라는 말을 붙여, <카지노 게임은 어린이의 도박!>이라고 썼으면 더 분명했겠다 싶다. 형진이의 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는 카지노 게임 같은 게임이 인기를 몰고 있다. 이 게임으로 여러 어린이들이 정신적으로 피해를 받기 때문에 이 글을 썼다.
  
첫 번째로 돈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 게임을 하면 중독성으로 돈을 아무렇게 날리고 계속 하기 때문에 (돈의) 가치를 아예 없앤다.


두 번째로 이 게임에 중독되어 공부를 할 때나 무엇을 할 때, 항상 이 게임만 생각할 수 있다. 이 게임은 본래 어른들도 중독되면 쉽게 나올 수 없는데, 어린이들은 더욱 더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 게 뻔하다.

 
그러므로 어른들이 게임을 만들려면 어린이들에게 이익이 가고 공부나 심적으로 안정을 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비교육적인 게임기들을 만드는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저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의 인격과 정서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게임기를 만드는 어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나는 이런 점을 아이들에게 인식시키며 다음의 말로 수업을 마무리 짓곤 한다.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들의 인격형성에 도움을 주는 건 무엇인지도 곰곰이 생각하면서 어른들이 어린이를 위한 게임을 만들어 주셨으면 참 좋겠네요. 무엇보다 여러분이 나쁜 게임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른들은 이런 게임을 만들지 않겠죠! 그러니 우리부터 마음을 바꿔보기로 해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 ‘하늘을 나는 교실’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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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1. 브르타뉴의 성곽 도시들3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인 나를 신기해하며 말을 건네는 이들이 가끔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여기서 뭘 하냐? 등등. 브르타뉴를 여행 중이라고 대답할 때마다  ‘그럼, 생말로(Saint-Malo)는 가보았냐’는 질문을 들을 때가 많다.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하면, 그 사람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꼭 가봐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강조하곤 했다.
 
그래서 생말로는 다른 어느 곳보다 재빨리 달려가 보았다. 소문대로 그곳은 아름다운 도시가 분명했다. 그러나 생말로를 다녀올 때마다 생말로의 진정한 모습을 만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거둘 수 없었는데, 오랫동안 나는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생말로에 다녀왔다.
 
성곽 위를 걸으며 본 생말로의 진풍경
 
생말로는 랑스(Rance)강 하구에 자리잡은 도시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옛 시가지에 1년 내내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성곽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생-뱅상문(La porte Saint-Vincent, 1708년)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쉬워 보인다. 특히 버스나 기차를 타고 생말로를 간다면, 이 문 앞에 꼭 닿게 된다. 기차에서 내려 약 30분 동안 부둣가 도로를 통과해 걸어왔다면, 틀림없이 들었을 실망감을 이제 거둬들여도 될 것이다.

▲ ‘생-뱅상문’ 아래 박혀 있는 담비가 그려진 징.  이 담비가 우리를 명소로 안내한다고 한다.    © 정인진


나는 이 생-뱅상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이 문 입구에 있는 맨홀 뚜껑과 바닥에 박힌 금빛 징 때문이다. 생-뱅상 문 바로 밑바닥에는 뚜껑에 생말로 도시 문장이 새겨진 맨홀이 두 개 있다. 유명한 관광지에서나, 그것도 드물게 볼 수 있는 도시 문장의 맨홀 뚜껑을 생말로에서 보았을 때, 드디어 진정으로 세계적인 관광지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나는 그 이후 브르타뉴 어디에서도 이렇게 멋진 맨홀 뚜껑은 본 적이 없다.

 
사실, 맨홀 뚜껑보다 더 내 눈을 사로 잡은 건 그 바로 옆에 박혀있는 노란 징이다. 이 징에는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담비(hermine)가 ‘내리닫이 살문’(herse) 위를 걷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 모습이 하도 날쌔 보여 이 녀석을 따라가면 성 안을 잘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이 담비는 관광객을 명소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성내에는 이 담비가 그려진 징이 150개나 산재해있다고 한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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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11. 나이듦을 바라보는 시선


나는, 늙고 있다 

“노년의 고통을 느껴야 하는 운명의 순간까지 질질 끌려온 것 같다. 나는 거울 속에서 쭈글쭈글한 할망구의 얼굴을 본다. 결국 이렇게 늙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짜증스러운 병, 고통,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 흉한 모습으로만 가득한 노년의 여정을 밟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다.” -미셸 스파이더 <죽음을 그리다>(아고라, 2006)
 
하루에 두 번 정도 거울을 볼까? 세수할 때나 잠깐 거울 앞에 서 있으니, 내 얼굴을 바라볼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안경을 벗으면 거울 앞에 서 본들, 도무지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다. 얼굴은 안개에 가린 듯 뿌옇게 흐려져 있다. 윗글을 쓴 여성처럼 노년의 고통을 체감할 정도로 늙지도 않았지만,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짬이 없어 그 고통이 더 적을 수도 있겠다.
 
어쩌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때면, 주름이 전보다 늘어난 것이 느껴진다. 주름만 많아진 것은 아니다. 잡티, 점, 주근깨, 기미도 얼굴 표면 여기저기에 거무스름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더 지쳐 보인다. 몇 년 전부터 가까운 사람들이 내게 기미와 잡티 좀 제거하라며 성화다. 내 눈에도 날로 얼룩덜룩해지는 얼굴이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부터는 바닥을 쓸 때마다 검은 머리카락들 틈에 흰 머리카락 한 두 가닥 정도가 눈에 띈다.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 진한 밤색이나 검정색으로 머리염색을 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좀 더 생기 있어 보이려면 머리카락에 검은 물도 들이고 점과 기미도 제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요즘은 불안이나 근심, 불쾌감에 사로잡힐 때가 더 많아졌다. 몸의 통증도 그 범위가 넓어지고 더 빈번해지고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건망증도 부쩍 잦아졌다. 나도 분명 늙고 있는 것이다.
 
늙음을 부정하는 우리들
 
늙음은 피하고 싶은 고통일까? 아니면 지혜를 퍼 올릴 수 있는 힘일까? 나도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노년은 내게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죽는 것만큼이나 나이 드는 것이 궁금했다. 노년은 하루 중 늦은 오후, 저녁을 거쳐 깊은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들뜬 대지가 서서히 식어서 서늘해지듯, 노년도 차분히 가라앉는 나이처럼 여겨졌다. 주변이 완전히 어둑해지기 전, 하늘은 붉은 빛으로 눈부시게 물이 든다. 늙음도 그처럼 황홀한 빛을 발하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늙음은 내 어린 시절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늙음은 끊임없이 부정된다. 나의 가족들, 친구들, 주변의 이웃은 조금이라도 덜 늙고 더 젊어 보이기 위해 애쓴다. 주름을 펴주고 피부의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화장품이나 마사지를 찾아 바쁘다. 젊어 보이는 외모를 위해서라면 점 등 잡티제거는 필수다. 몸매관리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성형을 해서라도 젊어 보일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택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누구도 늙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젊어 보이려는 노력에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겉보기에 젊어 보이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젊어 보이려는 욕망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있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끊임없이 젊음을 갈망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늙고 있는 나, 늙어버린 나는 이 사회의 부끄러움인 것만 같다.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늙음은 드러내서도 안 되고, 꽁꽁 감춰야 하는 무엇인 걸까?
 
앨리스 워커는 자신의 소설 <새로운 나여, 안녕>에서 케이트의 입을 빌어 말한다.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은 삶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반문한다. 젊어 보이려 한다는 것은 세월이 안겨준 것을 부정하는 것인 만큼 인생의 일부를 잃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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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0>

브르타뉴의 많은 도시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를 이용해 관광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다. 문화재는 성이나 성당 같은 기념비적인 건축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브르타뉴의 특색 있는 전통 문화를 보여주는 축제나 브르타뉴 특유의 종교 의식 등의 무형문화 유산들도 관광 수익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켈트 음악무용 축제와 ‘파르동’(Pardon: 용서)과 같은 종교 의식을 구경하러 온다.
 
그러나 내가 살고 렌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과거의 대단한 문화 유산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브르타뉴 지방에 비해 지역적 특성을 내보이는 문화 축제도 없는 렌은 관광도시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독특한 브르타뉴 지방의 수도 이야기
 
현재 브르타뉴 지방의 중심지는 렌이다. 그러나 항상 렌이 브르타뉴의 중심지였던 것은 아니다. 옛날부터 브르타뉴는 한 도시에 정치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수도를 만들지 않고 여러 도시들이 돌아가며 그 역할을 담당했다. 이 도시들은 공작령으로서 브르타뉴 남쪽이나 동쪽에 주로 위치해 있었다. 디낭, 낭트, 플로에르멜, 러동, 렌, 비트레, 반느, 게랑드 같은 도시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가운데서 행정과 사법은 봉건적 방식에 따라 반느-낭트-렌의 삼각구도 속에서 이루어졌고, 입법은 거의 모든 브르타뉴 도시에서 담당했다.
 
브르타뉴에 현대적인 의미의 진정한 행정 수도가 탄생한 것은 8세기에 이르러서였다. 1199년까지 브르타뉴의 대주교가 머물렀던 ‘돌’(Dol)이 브르타뉴의 수도 역할을 했다. 그 후 여러 도시가 돌아가며 행적적인 정부 역할을 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가장 많이 수도 역할을 담당한 도시는 ‘반느’(Vannes)였다.
 
15세기에 들어 브르타뉴 통치자인 공작이 낭트에 주거를 목적으로 성을 세우면서, 그가 거주한 ‘낭트’(Nantes)가 수도 역할을 하게 된다. 낭트에 대성당이 건립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지금도 낭트에는 그때 세워진 대성당과 공작이 생활했던 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16세기 브르타뉴가 프랑스에 병합된 이후, 낭트는 렌에게 정치적 우위를 내주게 된다. 그 이유는 렌이 낭트보다 파리에서 가깝기 때문이었다. 중앙 정부와 소통이 더 수월한 지리적인 위치가 오늘날 렌의 위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 뒤 1972년, 낭트가 속해 있는 ‘루와르-아틀랑티크’ 지역은 브르타뉴에서 다른 행정구역으로 분리된다. 하지만 낭트가 행정적으로 브르타뉴에서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브르타뉴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낭트는 브르타뉴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러 오는 관광객으로 넘친다. 이와 반대로 렌은 현재 브르타뉴의 수도라 하지만, 낭트에 비해 변변한 관광거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렌에는 낭트처럼 화려한 공작성은커녕, 조금만 요새성 하나 없고 대성당도 낭트에 있는 것에 비하면 초라할 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렌은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특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렌이 선택한 것은 문화예술의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매우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1년 내내 전개되고 있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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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10. 죽음에 대한 공포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것이 죽는 순간의 고통에 대한 것이건, 자기 존재의 소멸에 대한 것이건, 대개는 죽음을 떠올리면 감당하기 힘든 공포의 무게로 짓눌려지는 듯하다.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죽어가는 동안의 괴로움, 죽는 순간의 고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내 육신이나 영혼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오히려 무서움보다는 어떤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영원히 증발된다는 상상을 해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어지러움으로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 대한 상상
 

▲ 중세 유럽에서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 그림 "죽음의 무도". 작자 미상.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잠과 같은 휴식으로 여겨 환영하기도 한다. 피로하고 힘들었던 하루를 마감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 듯, 죽음은 힘든 인생 다음에 오는 잠과 같은 휴식, 무엇보다도 영원한 휴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 영국인 작가는 죽음을 ‘다정하지만 엄격한 유모’에 비유했다. 시간이 되면 잠자기 싫어하는 아이를 달래서 편안한 잠의 세계로 인도하는 유모처럼 죽음도 때가 되면 아무리 우리가 죽음을 거부한다고 해도 고달픈 삶에 지친 우리에게 진정으로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기다리고 바라던 것, 아니 진심으로 바라야 할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이 과연 잠과 같은 것일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여전히 반문해 볼 수 있다.
 
“죽음이란, 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상황이 아닐까. 그것은 어쩌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 같은 끝이 없고 깊은 깨어 있는 어둠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그런 암흑 속에서 영원히 각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무라카미 하루키의 <TV피플>(삼문,1996) 중에서)” 
 
<영혼의 부정>이라는 책에서 스캇 펙도 이와 유사한 상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텅 비어 있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며 존재한다는’ 이상한 환상이 그것이다.
 
그에 의하면, 죽음 이후에 대한 이러한 상상은 우주를 여행하던 우주인이 사고를 당해 우주선으로부터 분리되어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절대적으로 고독한 상태, 다시 말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영원히 그렇게 존재하도록 운명 지어진 상태에 대한 끔찍한 상상이다.
 
그는 죽음을 무서워하는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기 존재의 영원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 자의식의 영원한 각성상태에 대한 두려움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죽음이 영원히 잠드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분명 두려워할 만하다. 그러나 죽음이 영원히 평화롭게 잠든 상태인지, 죽음 이후에도 인간 개인의 자의식이 깨어 있는 것이지 확인할 길은 없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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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교실> 6. 중요한 결정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의 조언에 따라서 무언가를 결정하였다고 해도, 그 결정으로 인해 벌어질 결과는 자기의 몫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은 내가 내려요>라는 제목으로 중요한 결정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공부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심스 태백이 들려주는 지혜롭고 유쾌한 이야기>(베틀·북) 중, ‘이상한 간판’이라는 글을 텍스트로 다룬다.

 

▲ <심스 태백이 들려주는 지혜롭고 유쾌한 이야기> 중     

생선가게를 하는 모트케는 ‘이곳에는 날마다 신선한 생선을 팝니다’라고 간판을 써서 달았다. 그 간판을 보고 여러 참견쟁이들이 한 마디씩 한다. 모트케는 참견쟁이들의 말에 따라 간판의 글씨를 계속 고치다가 결국 간판을 없애고 만다. 그때 또 다른 참견쟁이가 나타나 모트케에게 말한다. “이런, 이 가게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네요. 간판을 하나 써서 다시지 그래요?”
 
오늘은 3학년인 태준이와 아영이의 의견을 사례로 소개할 것이다. 텍스트를 함께 읽은 후, 이렇게 질문했다. <위 이야기처럼 여러분이 뭔가를 하는데, 누군가 끼어들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참견한 적은 없나요?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결정을 내렸나요?>
 
아영: 미술 시간에 곰돌이를 그리고 있는데, 곰돌이 눈이 너무 작다고 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한 것이니, 눈을 내 마음대로 그렸다. 내가 보기에는 눈이 커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해서 내가 마음에 드는 쪽으로 갈 것이다.
 
태준: 친구랑 같이 ‘쎄쎄쎄(노래에 맞춰 둘이 마주보고 손동작을 하는 놀이)’를 하다가 어떤 친구가 “너희들은 ‘쎄쎄쎄’도 못하는데 왜 하냐?”라고 말했다. 나와 친구가 동시에 그 친구를 무시하면서 “상관하지마!”라고 말하고 계속했다.
 
모두 예를 잘 찾았다. 그렇다면 <위에서 내린 결정에 만족하나요? 그 이유도 자세하게 써보세요>하고 두 번째 질문을 했다. 
 
아영이와 태준이 모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아영이는 ‘내가 하는 것인데, 친구가 신경을 쓰면 더 어지럽기 때문이다. 또 내 생각에다가 남의 생각도 같이 쓰면 친구들과 비슷해져 점수를 못 얻을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태준이는 ‘꼭 내가 쎄쎄쎄를 못하더라도 난 그것을 즐기고 싶다. 그래서 그 친구의 말대로 하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한단다.
 
아영이의 의견 속에는 아무리 잘 해도 친구들과 비슷해서는 안 되고 자기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또 태준이는 잘 못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즐길 수 있다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엿볼 수 있어서 좋다.
 
세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자. <앞에서 소개한 이야기에서 참견쟁이들이 문제일까요? 그들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따른 모트케가 더 문제일까요?> 
 
아영이는 참견쟁이들이 더 잘못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유를 제시했다. “참견쟁이들이 참견만 하지 않았다면, 모트케도 힘들게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참견쟁이들이 자기 생각만 말하는 것도 잘못한 것 같다.”
 
태준이는 모트케가 더 잘못했다고 대답했다. 모트케는 참견쟁이의 말을 따라 생각없이 지우지만 말고, 다른 단어로 고쳤으면 더 나았겠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모트케는 개성이 없는 것 같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여기서 참견쟁이나 모트케 중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분명하게 가릴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참견쟁이들의 무수한 의견을 자신의 결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세 번째 질문이 끝나면 나는 잊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참견쟁이의 잘못이 더 크다고 해도, 세상에 참견쟁이들은 너무 많아요. 앞으로 살면서 여러분이 어떤 결정을 내리려고 할 때마다 ‘이렇게 하는 게 좋겠어, 저렇게 하는 게 좋겠어’하고 참견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거예요. 
 
그럴 때마다 참견쟁이들만 탓할 수는 없겠지요? 참견쟁이의 말을 무조건 따랐다고 해서 참견쟁이가 그 결정으로 인해 생기는 결과까지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결정의 책임은 항상 자신이 져야 합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해서 참견쟁이를 탓해본들 소용이 없어요. 
 
한편, 참견쟁이 말을 무조건 따르는 것도 문제지만, 생각도 해보지 않고 무시하는 것도 문제랍니다. 중요한 결정 앞에서 주변 사람들의 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요. 그러니 참견쟁이들의 말도 잘 들어보고, 자기 생각과 비교하고 고민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고 나서 <여러분이 모트케였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묻는다. 앞의 말을 듣고 이 질문에 참견쟁이 말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대답하는 어린이는 한명도 없었다.  여러분이라면 간판을 어떻게 쓰겠느냐는 물음도 추가했다. 아이들의 대답은 아래와 같다.
 
아영: 잘 생각해보고 더 좋은 쪽을 선택할 것이다. 즉, 내 생각대로 바꿀 것이다. (아영이가 쓴 간판: 내 사랑 생선, 행복을 나누어주는 생선, 냠냠 맛 좋은 생선)
 
태준: 끝까지 생각해보고 내가 결정한다. 간판을 읽어보고 틀렸다고 생각한 것은 일단 지우고 내가 생각하기에 더 좋은 낱말을 붙인다. (태준이가 쓴 간판: 국산 생선, 신선한 생선이기 때문에 걱정 無)
 
마지막으로 <중요한 결정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물었다. 아이들의 대답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생각을 하고, 더 좋은 쪽을 생각한다.
2) 나의 느낌을 생각한다.
3) 내가 생각해 보고 결정을 내린다.
4)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고 잘 고른다.
5) 최대한 이익이 되게 결정을 내린다.

 
앞으로 아이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결정의 순간을 수없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길 바란다. 물론, 잘못된 결정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는 아니다. 아이들이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주저앉지 말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잘못된 길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그 길을 거침없이 내디딜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 ‘하늘을 나는 교실’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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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9. 죽음의 전조, 죽음의 징후


죽음을 알리는 '앙꾸'(Ankou)의 수레바퀴 소리


예로부터 프랑스 서북부 해안지방의 사람들은 밤에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가 나면 집에 꼭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았다고 한다. 끔찍한 해골모습을 한 죽음의 일꾼, ‘앙꾸(Ankou)’가 수레를 타고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러 다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게 밤의 수레바퀴 소리는 다름 아닌 ‘죽음의 전조’였다.
 
수레바퀴는 마땅히 낮에 굴러야 하는데, 밤에 구르고 있으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처럼 평소 일어나지 않는 특별한 일, 드문 일은 죽음의 전조일 수 있다고 믿었다. 까치가 지붕에 앉아 있을 때도, 수탉이 밤에 울 때도 ‘앙꾸’가 찾아온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거나 코피가 터진다면, 한밤중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면, 바로 ‘앙꾸’가 일할 때다.
 
이해하기 어렵고 생소하며 낯선 현상, 불길하고 불안을 안겨주는 기운을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예고로 받아들이곤 했던 것은 비단 켈트문화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 문화 속에서 별똥별의 추락을 죽음과 연결시켜온 것을 떠올려 보자.
 
항상 죽음이 우리 곁을 맴돌지만 낯설기만 하고,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죽음은 언제나 두려움을 안겨준다. 그래서 낯설고 불길해 보이는 현상을 죽음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같은 ‘죽음의 전조’에 대한 믿음은 헛웃음을 웃게 할 만큼 황당하고 근거가 없어 보이지만, 일상 속에서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느낌만은 놓지 않도록 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한 예감
 
그렇지만, 믿기 어려운 ‘죽음의 전조’를 그냥 송두리째 포기해 버릴 수 없다. 적어도 부모나 형제, 자매,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은 미리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부모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전조를 체험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의 죽음을 미리 예감한 것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내가 정말로 죽음의 전조를 경험한 것인지 아직도 의심하고 있긴 하다.
 
병을 오랫동안 앓아온 어머니의 경우, 그 죽음이 갑작스러울 것도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은 불시에 다가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한 지 채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갖지 못했었다.
 
고향을 떠나와서 객지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나는 집에 자주 전화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 내가 문득 집에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부터 특별한 일로 봐야 할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전화를 걸기 직전에 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 할머니가 사고를 당한 그날도, 불현 듯 이유 없이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전화를 걸기 전에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었다. 불쾌감이란 표현은 적당하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변화가 있었고,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 아니라 무겁고 불편한 감정에 짓눌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주 연락하며 지냈던 것도 아니고 가까이서 함께 살지도 않았지만 부모님과 할머니의 죽음을 예감했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정말로 죽음의 전조를 경험한 것일까?
  
만약 내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예감한 것이라면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미리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죽음의 전조를 받아 죽음이 임박한 사람을 만나러 달려갈 수 있으면, 그래서 그 사람의 죽음의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분명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예감했다고 그냥 믿고 싶은 것이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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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9>

일 년에 한 번, 마을마다 벼룩시장이 열리다
 

▲ 벼룩시장이 열리던 날, 골목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정인진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자 벼룩시장이 열리는 동네가 늘기 시작했다. 겨우내 조용했던 마을의 골목마다 창고 안에 처박혀 있던 해묵은 물건들이 펼쳐지고, 주민들은 음료를 나누며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늦은 봄이나 바캉스가 지난 가을이면, 이곳 브르타뉴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다.
 
렌에서는 작은 단위의 마을마다 돌아가며 벼룩시장이 열린다. 벼룩시장은 한 해에 한 번, 마을잔치를 대신하는 것 같다. 일 년 중 한 차례 정도, 그것도 매년 비슷한 시기, 일요일에 날이 잡힌다는 건 여기서 일 년을 사니,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물론, 벼룩시장이 브르타뉴에서만 열리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많은 도시와 마을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지는 벼룩시장의 장소와 날짜를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http://vide-greniers.org)도 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지역과 날짜, 구체적인 장소를 지도와 함께 검색할 수 있다.
 
이런 벼룩시장이 몇 주 전, 우리 동네 클뢰네에서도 열렸다. 이 동네의 지역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에 다른 어떤 마을의 벼룩시장보다 관심이 갔다.
 
나는 우리 동네 벼룩시장은 만사 제치고 꼭 나가볼 생각이었다. 울타리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은 담장 너머, 늘 감탄하며 바라봤던 꽃들의 주인들이 누군지 볼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라벤더를 흐드러지게 키우는 집의 주인이 궁금했고, 봄마다 마당 가득 수선화가 피어있는 이웃에는 다 누가 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른 어떤 동네보다 설레며,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을 기다렸다. 마침,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벼룩시장이 펼쳐지는 거리는 활기로 넘쳤다.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브르타뉴에서 이 정도라면 충분히 벼룩시장 하기에 좋은 날이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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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교실> 5. 우리가 다 컸다는 걸 어른들께 보여드려요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은 초등 1, 2학년의 아주 어린 아이들과만 해왔다. 큰 아이들에게 이 공부는 유치하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번 한 학부모와 통화 중에, “우리 아이가 너무 자기 할 일을 스스로 못하고 부모에게 의지해서 안타까워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독립심>과 관련한 공부를 몇 차례 해보겠습니다. 그것이 아이가 생활을 개선해나갈 수 있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했다. 그리고 5학년인 세영, 형철, 광진, 지원이와 <나는 다 컸어요!>를 공부했다.
 
우선, 아이들에게 <스스로 못하고 엄마가 챙겨주어야만 하는 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했다.
 
아이들은 자기 방 정리, 교과 공부, 가방 챙기기, 숙제하기, 컴퓨터 시간조절, 시험기간에 공부하기 등을 발표했다. ‘자기 방 정리와 청소’를 네 아이 모두 고른 것이 눈에 띈다. 또 대부분 공부나 학교생활에 관련된 것을 스스로 못한다고 했다. 그건 꼭 아이들이 문제라기보다, 어른들이 공부와 관련해 아이들 스스로 챙기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한다.
 
이어서 <그것들 가운데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건 없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도 써 봅시다> 라고 질문했다.
 
이 물음에 세영이는 ‘교과 공부’를 골랐다. 그러면서 공부는 누가 머릿속에 지식을 저장해 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학습하여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하면 성적도 오르고 성취감도 생긴다고 이유를 제시했다.
 
형철이와 지원이는 ‘숙제하기’를 골랐다. 모두 자신이 스스로 해야 보람도 느끼고 재미도 더해가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엄마로부터 잔소리를 안 들어 스트레스가 덜 쌓인다고 덧붙였다.
 
광진이는 ‘시험기간에 공부하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유를 제시했다. “시험 기간에 공부하기는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시킬 때부터 공부를 시작하면 (너무 늦어) 공부를 별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판단해) 공부를 (시작)하면 더욱 더 많이 공부할 수 있다.
 
위의 밑줄 친 문장들은 광진이가 발표한 걸 그대로 적은 것이다. 괄호는 내가 보충한 것인데, 이런 단어가 보충되면 전달하려는 내용이 더욱 분명해진다. 의견을 쓰고 나서 아이들 스스로 검토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다시 읽으면서 전달하려는 내용이 잘 표현되었나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눈에 띄는 몇몇 단어만 수정, 또는 보충해도 의미가 더 분명해지는 걸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제, 세 번째로 넘어가자. <이런 것들을 스스로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원인을 찾아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결의 실마리도 찾아봅시다.>
 
세영이가 ‘교과 공부’를 스스로 못하는 것은, 자기가 방 정리를 하지 않아 문제집을 어디에 두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방 정리를 잘 못하는 원인으로는 끈기가 없어 방 정리를 마무리 짓지 못하는 걸 꼽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해결책을 내왔다. “모든 일을 할 땐 끈기 있게 한다. 일주일씩, 이주일씩, 한 달씩 이렇게 조금씩 기간을 늘려서 끈기를 키우며 방 정리를 열심히 한다.”
 
형철이는 너무 놀려고만 해서 숙제를 하기 싫어하는 거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에서 쉬는 시간 틈틈이 숙제를 하겠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지원이도 형철이처럼 ‘숙제하기’를 골랐는데, 숙제를 잘 못하는 이유를 다른 데서 찾았다. 그는 ‘게임에 정신이 팔려서’ 숙제를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게임을 할 수 있는 물건들을 방 밖에 두고 방에서 숙제를 다 할 때까지 (스스로를) 못나오게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광진이가 시험 기간에 공부를 스스로 못하는 것은 TV를 많이 보고 논 것이 원인이란다. 그는 “TV보는 시간을 줄이고 노는 시간보다는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또 공부할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놀지 않고 과목마다 시험지 5장식 풀어야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네 어린이 모두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들의 원인과 해결책을 잘 찾았다. 나는 이때 아이들에게 다음 말을 잊지 않고 해준다.
 
<지금 생각한 걸 공부로만 끝내지 말고, 여러분이 제시한 해결책에 맞춰 꼭 해보세요. 그렇게 해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잘 찾았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해결책을 잘못 제시했다고 포기해서는 안돼요. “어, 이게 아니었네!”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 다시 시도해 보는 거예요. 그러면 좋은 해결방법을 꼭 찾게 될 거예요.>
 
이제, 네 번째 문제다. <여러분은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님이나 어른들은 여러분을 아직도 작은 어린이로 취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과연 언제인가요?> 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아이들의 대답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TV에서 15세나 17세 표시가 나오면 보지 말라고 하실 때
2)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 ‘넌 들어가서 애들이랑 놀라’고 하실 때, 또는 내가 물어보면 ‘넌 몰라도 돼’ 하실 때
3) 아빠와 캐치볼이나 공놀이를 할 때, 어리다며 약한 수준으로 공을 주신다.
4) 엄마가 나 혼자 내 일을 할 수 있는데 ‘책가방 싸!’, ‘공부해!’ 하며 계속 챙기신다.
5) 옷은 혼자 입을 수 있는데, 계속 엄마가 챙겨주신다.
6) 혼자 시간을 지킬 수 있는데, 계속 말해 주신다.
7) 약속장소를 까먹지도 않았는데, 다시 전화해서 장소를 알려주신다.
8) 멀리 가셨거나 늦게 오실 때 알아서 잘 수 있는데, 전화하셔서 자라고 하신다.

 
아이들의 발표 속에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아이의 순진함이 느껴지는 의견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그렇다면, 그런 어른들에게 여러분이 다 컸다는 걸 어떻게 보여드리겠습니까? 위에서 제시한 것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예를 들어 자세하게 써 보세요.>
 
세영이는 ‘TV에서 15세나 17세 표시가 나오면 보지 말라고 하실 때’를 골랐다. 그리고 ‘방 정리, 숙제, 등을 내가 스스로 한다면 부모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다 컸구나 하고 느끼시면서 보게 해 주실 것’이라고 대답했다.
 
형철이는 ‘아빠와 캐치볼이나 공놀이를 할 때, 어리다며 약한 수준으로 공을 주신다’를 골랐다. 그런 아빠한테 형철이는 강력한 슛을 날려드려 자기가 다 컸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또 광진이는 ‘혼자 시간을 지킬 수 있는데, 계속 말해 주신다’를 선택했다. 시계를 가지고 다니면서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게 해 드린다고 대답했다.
 
지원이는 ‘약속장소를 까먹지도 않았는데, 다시 전화해서 장소를 알려 주신다’를 골랐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덧붙였다. “약속장소를 정한 뒤 다시 알려주지 말라고 한다. 까먹었을 때는 내가 전화해서 가르쳐 달라고 하겠다고 말씀드린다.”
 
고학년생들과 <나는 다 컸어요!>를 공부해 보니, 어린 꼬마들과는 또 다른 아이들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내게도 신선했다. 함께 공부한 아이들도 이런 걸 고민해 본 것이 도움이 되는 눈치다. 앞으로는 학년에 상관없이 모든 어린이들과 이 공부를 해야겠다.   
(※ ‘하늘을 나는 교실’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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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8. 노망에 대한 두려움


동네를 산책할 때면 여러 집 앞을 지나간다. 아담한 프랑스 집에는 저마다 자기 식으로 개성 있게 가꾼 정원이 있어, 이 정원들의 꽃, 나무, 풀을 곁눈질하며 걷는 것도 산책의 적지 않은 즐거움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낡고 허름해서 오히려 눈길을 끄는 집이 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여기저기가 녹슨, 대문조차 없어 참으로 초라한 집이다. 하루는 그 집 앞을 지나는데 한 할머니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계셨다.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그리고 여러 날이 흘렀다. 산책에서 돌아오던 길에 다시 그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는 대문 밖에 나와 앉아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할머니께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무표정하게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대신,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며 묻지도 않는 말을 꺼내며 횡설수설 말을 끝없이 이어갔다.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말을 그냥 무시하고, 그 곁을 서둘러 지나쳐 왔던 기억이 난다.


그날, 할머니와는 평범한 대화도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치매나 노망에 걸린 걸까? 정신 상태가 온전치 않아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할머니 혼자 낡고 허술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여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지나칠 때마다 그 집을 눈여겨보는 습관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 그날, 할머니와는 평범한 대화도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치매나 노망에 걸린 걸까? 할머니 혼자 낡고 허술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여 걱정스러웠다.     © 이경신


죽는 것보다 두려운 ‘노망’
 
나이가 들어 정신이 혼미해진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일이다. 죽음의 순간까지 또렷한 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 죽음의 공포에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을 더한다. 노인들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노망, 치매라고 말한다. 이처럼 노인들이 정신 줄을 놓을까 불안해하는 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작년,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통계를 보자. 전 세계에서 3천 5백 6십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치매로 고통 받는 사람들 가운데 70%는 ‘알츠하이머(Alzheimer)’ 환자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알츠하이머는 어떤 질병인가? 연구자들에 의하면, 알츠하이머는 두뇌퇴행질환인데, 노화 침착물과 신경구조 단백질의 변형으로 인한 뇌손상이 그 특징이다. 신경독성단백질이 쌓여서 두뇌신경 단백질을 변형시키고 두뇌를 퇴행시켜 죽음을 야기한다.
 
이 병은 대개 8년에서 10년 동안 진행되는 것으로 본다. 병이 진행되는 동안, 기억력이 약화되고 인지능력이 퇴행하고 행동장애를 가져온다. 따라서 자율성을 상실하고 노망에 이르며 결국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8년 반으로 본다. 증상이 처음 나타나서 알츠하이머로 진단이 내려지기까지 대개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여기서 알츠하이머로 고통 받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만 보더라도, 알츠하이머 환자의 74%는 80세 이상의 노인이고, 90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 환자의 40%에 해당된다. 알츠하이머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난 대가로 얻은 ‘노년의 병’이라고 요약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장수하면 할수록 노망으로 삶을 마감하게 될 가능성도 함께 높아지는 것 같다. 죽기 전 10여년의 세월동안 뇌기능을 점차적으로 잃어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오래 사는 것이 오히려 고통일 것이다. 잘 늙고 잘 죽어가는 것에 대한 소망이 노망의 위협 앞에서 무력해지는 느낌이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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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8. 브르타뉴의 성곽 도시들2


디낭, 삶과 죽음의 여신의 언덕
북쪽 생말로(Saint-Malo)만으로 열린 넓고 긴 랑스(Rance)강은 강가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생말로에서 배를 타고 랑스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떡갈나무 숲과 새들이 있는 아름다운 강가 마을로 널리 알려진 ‘생쉴리악’의 풍경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그 강 깊숙한 곳에 디낭(Dinan)이 있다.
 

▲ 랑스강을 통해 배를 타고 디낭 항구에 닿을 때, 멀리 계곡사이를 잇는 고가다리가 보인다.     © 정인진


디낭(Dinan)이라는 단어는 켈트어의 ‘언덕’(Dunos)과 ‘삶과 죽음의 여신’(Ahan)이 결합된 단어로, ‘삶과 죽음의 여신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이름만큼, 강에서 배를 타고 항구로 들어갈 때나 시외버스로 언덕 위의 고가다리(viaduc)를 통해 들어갈 때나, 언제나 디낭으로 들어설 때는 늘 탄성이 먼저 나온다.
 
성곽 안으로 들어서면 도시는 더 아름답다. 계곡사이를 잇는 고가 다리가 없었을 때는 내륙에서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던 곳이 디낭이다. 게다가 높고 튼튼한 돌벽으로 둘러싸인 덕분에 외세로부터 침입이 적어, 오늘날도 여전히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한편, 디낭은 혁명기까지 직물산업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다. 오늘날 문화재로 존재하는 시계탑(15세기), 생말로성당(15~19세기), 생소베르성당의 장식들(17~18세기)은 모두 그때 이룬 부로, 상인들이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기계화된 대량생산에 밀려, 브르타뉴의 다른 도시들처럼 디낭의 직물산업도 실패하고 만다.
 
경제적으로 피폐해 있던 디낭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1852년, 계곡을 잇는 고가다리와 주변에 신도시들이 건설되면서부터다. 특히 1879년, 성벽 밖에 기차역이 건설되면서 브르타뉴의 발전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또 매년 5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도시가 되었으며, 2년마다 열리는 ‘성벽축제’(Fete des Remparts)는 매우 유명하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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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7.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덜어내는 법


연말에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대학후배가 보내온 것이었다. 편지에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그 고통을 함께 지켜보는 사람의 힘겨움이 담겨 있었다. 죽음이 우리 곁에서 소중한 사람을 데려갈 때, 감정의 동요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겪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분명한 것은 죽음이 우리에게 안겨준 상실의 깊은 수렁을 서둘러 빠져 나오기는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간의 힘을 빌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수용할 힘과 지혜를 얻는다. 그렇다면 다들 어떻게 그 슬픔을 견뎌냈을까? 죽은 사람의 공간을 한동안 보존하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회고하며 글을 써 보기도 하고…. 방법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죽은 이들이 남긴 물건들, 반지 칼 옷장…
 
지금껏 나도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여럿 잃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슬픔을 어떻게 삭혀냈었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선 유품에 기댔던 것 같다. 죽은 자가 남긴 물건으로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한 시간을 벌었다. 난 할머니와 부모님이 내 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몇 가지 유품들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반지, 휴대용 칼, 옷장이 그렇다.
 
할머니의 반지와 어머니의 반지는 책상 서랍 깊숙이 감춰놓았다. 할머니의 반지도, 어머니 반지도 대단히 값나가는 것들은 아니지만, 두 분이 생전에 즐겨 끼면서 소중히 여겼던 터라, 내게는 그 반지들이 두 사람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또 휴대용 맥가이버 칼은 아버지가 동료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왔을 때 사가지고 온 칼이다. 아버지께는 첫 유럽여행 기념품인 셈이다.
 
사실, 아버지가 이 칼을 즐겨 사용하셨던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서랍 한 귀퉁이에서 이 칼을 발견하고, 나는 동생들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그냥 가졌다. 그때부터 이 휴대용 다용도 칼은 내 필수품이 되었다. 이 칼은 평소에도 요긴하지만, 집을 떠나 길을 나설 때도 유용하다. 풀밭에서 민들레를 자를 때나 기차 안에서 사과를 먹을 때만이 아니라, 불현듯 뭔가 만들고 싶을 때도 이 칼을 꺼내면 된다.
 

▲ 어머니의 한복을 보관해오다가 수년 전 조각보를 만드는 친구에게 건넸더니, 예쁜 찻잔 받침을 만들어 선물해주었다.   © 이경신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삼층장과 자개장 한쪽을 내 옷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란히 서 있지만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구식 옷장들은 내 평생의 옷장이 될 것이다. 삼층장은 어머니가 신혼살림으로 마련해 오신 것이다. 합판으로 만들어져 허술하고 사용하기에도 불편한 장이지만, 나는 내 나이보다 오래된 그 장이 항상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의 결혼생활을 신혼 때부터 줄곧 가까이서 지켜본 유일한 증인이 아닌가!
 
삼층장을 내게 물려달라고 졸랐을 때 어머니가 빙긋 미소 지었던 기억이 난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여기저기 흠집이 생겨 새색시 같았던 삼층장의 꼴이 참으로 초라해졌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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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교실 4>

창의성 연습 1: 연상을 이용해 새로운 생각하기
 
오늘은 <창의성 연습>이라고 이름붙인 ‘창의성 프로그램’을 공부해보자. 우리는 4주에 한 번씩 <창의성 연습>을 공부할 것이다.
 
수년 째 아이들과 공부를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모든 아이들이 상상력이 넘친다는 사실이다. 나는 항상 창의성은 우리들 속에 씨앗처럼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물을 잘 주고 햇볕을 잘 쬐어주면 싹이 트고 잎을 틔우기도 하지만,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 아예 썩어 없어지고 마는, 그런 씨앗 같은 것이 우리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교육자로서 난 그런 씨앗 상태로 존재하는 아이들의 창의성에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  한결이가 발명한 안경을 쓰면, 나비와 꽃이 나타난다.  
<창의성 연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상상’을 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상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이 공부의 핵심이다. 어른이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속에 떠오르는 것을 마음껏 표현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꼬리를 무는 생각’을 배워보기로 하자. 새로운 생각을 쉽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을 이용하는 것이다. 즉, 발명하고 싶은 것을 골라 그것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단어와 짝을 짓는다. 그리고 짝지은 단어에서 연상되는 생각을 나열해 보면, 어느 순간 “바로 이거야 !”하는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예를 들어 ‘비누와 경찰관’을 짝지어서 ‘경찰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해 보기로 하자. 이때 우리는 비누에서 출발한다. 어떤 학생은 ‘비누’하면 ‘깨끗함’이 생각나고, ‘깨끗함’하면 ‘봄꽃’이 생각나고, ‘봄꽃’하면 ‘꽃가루’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래서 경찰관의 총에 총알 대신 꽃가루를 넣는 총을 생각했다. 그 총을 범인에게 쏴서 재채기를 하는 틈에 잡는다면 사람이 다치지 않으니까 좋지 않을까?
 
이처럼 ‘꼬리를 무는 생각’은 정해져 있지 않다. 아무 뜻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이용하면 된다. 자, 이제 아이들 차례다.
 
이 공부를 위해서는 3학년인 한결이와 혜진이가 낸 아이디어를 예로 뽑았다. 첫 번째로 <‘전화기와 그림책’을 짝지어 그림책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해 보자>고 했다.
 
혜진이는 전화기하면 <소리>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래서 발명한 것은 소리가 나는 그림책으로, 그림책이 책을 읽어준다고 한다. 한결이는 전화기하면 <통화>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림책에 통화하는 기능을 달아서 전화가 올 때, 그림책에서 전화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단다.
 
두 번째로는 <‘개나리와 안경’을 짝지어서 안경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해보자>고 했다.
한결이는 개나리하면 <나비>가, 나비 하면 <꽃>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래서 안경을 쓰면 나비와 꽃이 나타나는 안경을 발명했다. 좋은 점은 나비와 꽃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고, 나쁜 점은 나비들이 괴롭힐 수 있다고 발명품을 소개했다. 장점과 단점을 덧붙여서 더욱 재미있는 설명이 되었다.
 
혜진이는 개나리하면 <향기>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래서 향기가 나는 안경을 발명했다. 안경의 향기가 코로 내려와 항상 꽃냄새를 맡으며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충분히 연습이 된 것 같다. 그럼, 이번에는 좀 다른 것을 연습해 보자. 우리는 탐정 이야기를 지어볼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탐정 수돌이와 아이스크림’을 짝지어 탐정 수돌이가 펼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혜진이는 아이스크림 하면 <여름>이 생각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었다.
 
<수돌이 탐정은 ‘금고털이’를 잡으려고 마구마구 뛰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리면 땀을 흘리고 싶지 않은 여름입니다. 수돌이 탐정을 겨우 금고털이를 잡고, 두 개의 의자가 있는 곳에 가서 금고털이를 자신의 옆에 앉힌 후, 얼음과자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수돌이 탐정은 금고털이를 감옥에 넣으려고 옆으로 손을 뻗어, 그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금고털이가 없어졌습니다. 수돌이 탐정이 얼음과자를 먹고 있는 동안 금고털이가 도망친 것입니다. 결국, 수돌이 탐정은 다 잡은 금고털이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  혜진이는 원피스와 자장가를 짝지어, 자장가를 들려주는 이불을 발명했다.
‘꼬리를 무는 생각’을 위해 짝지을 단어를 찾기 위해서는 주위에 있는 물건이나 책에서 눈에 띄는 단어들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그 단어들을 쪽지에 써 제비뽑기를 해도 좋다. 그래서 네 번째 문제는 아이들에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10개 이상 써보라>고 했다.

 
책상, 지우개, 사진, 가방, 소리(자장가), 수업, 원피스, 피아노, 전구, 의자, 칼, 스케치북, 수첩, 원두막, 사과, 악기, 인형, 벽지 등등, 항상 그렇듯이 아이들이 쏟아놓는 단어들은 정말 많다. 이제 그것들 가운데 <두 개를 짝지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봅시다> 했다.
 
한결이는 수업과 책상을 짝지어, 책상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했다. 그는 수업하면 <선생님>이 생각난다고 하면서, 발명한 책상은 다음과 같다: ‘책상에 선생님만큼 똑똑한 기능이 달려있어, 공부를 할 때 모르는 점이 있으면 가르쳐 준다. 좋은 점: 공부할 때 가르쳐 준다. 나쁜 점: 잔소리가 많다.’
 
혜진이는 원피스와 소리(자장가)를 짝지어, 원피스에서 연상되는 것을 가지고 재미있는 걸 만들었다. 혜진이는 원피스 하면, <이불>이 생각난다고 하면서 자장가가 나오는 이불을 발명했다. ‘이 이불은 소리 조종기가 있어서 알맞게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 또 너무 크게 틀면 귀가 터질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발명품을 설명했다.
 
상상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아이가 자신감을 갖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교사가 할 일은 칭찬과 격려밖에 없는 것 같다. 엉뚱하고 어처구니없는 아이의 상상을 같은 눈높이로 바라봐준다면, 아이들 속에 존재하는 창의력의 씨앗이 아주 큰 나무로 자라는 걸 보게 될 것이다.


(※ ‘하늘을 나는 교실’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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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7>

프랑스에서 ‘시민의 권리와 기회균등’의 정신은 장애인도 시민으로서 사회참여를 할 수 있도록 해주고, 더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나 사회가 장애인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사회기반 시설을 마련하는 건, 시혜적인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누릴 당연한 권리로 모두 인식하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하기 위한 ‘장애수당’
 
프랑스 정부는 장애인들이 장애로 인해 삶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책으로 ‘장애수당’(AAH)을 주고 있다. 장애인은 장애정도에 따라 장애수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 장애수당은 적어도 장애가 50%에 달할 때 신청할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매달 최고 1인당 759.98유로(한화 약 111만원)를 장애수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 금액은 직업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금액이며, 수입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이 수당 외에 장애 정도가 80%이상이거나, 50~79% 사이라도 직업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 때는 ‘추가수당’(CDAPH)이 지급된다. 장애인이 노인이 되었을 때, 일하다가 사고를 당했을 때, 또 시설에서 살지 않고 독립적인 주거공간에서 살 때도 추가수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장애어린이를 교육시키고 보살피기 위해 필요한 비용도 보상해준다. ‘장애 어린이 교육보조금’(AEEH)이라는 이름의 이 수당은 장애아의 부모에게, 2013년 3월 현재 매달 127.68유로(한화 약 18만원)가 지급된다. 또 상황에 따라서는 ‘보충적인 보조금’(CDAPH)도 제공되고 있다. 그것은 장애어린이의 장애정도와 관련한 비용의 총액에 따라, 부모 중 한 사람이 직업 활동이 줄거나 중단되었을 때, 1~6단계로 나눠서 매달 최하 95.76유로에서 최고 1,060.17유로(한화 약 14만원~156만원)가 추가로 지급된다. (이하 생략)

▲ 프랑스 모든 시내버스 안에 마련된 휠체어전용 공간. 휠체어가 오르내릴 때는 문앞에 발판이 더 나온다.     © 정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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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6. 서양 철학자와 동양 승려가 전하는 지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문학사상사, 1996)를 읽다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찬장 속에는 과연 질레트 레몬 라임 향 면도용 크림과 쉬크 면도기가 들어있었다. 면도용 크림은 절반 정도 남아 있었고, 뚜껑 부근에 하얀 거품이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죽음이란 그렇게 면도용 크림 절반 정도를 남기고 가는 것이다.”
 
그렇다. 이 소설 속의 도서관 직원 남편처럼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을 쓰다 말고 남겨둔 채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리가 맞게 될 죽음이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는 생전에 어머니가 듣던 가요 카세트테이프들이 떠올랐다. 상자에서 오래된 가요테이프를 하나 꺼내서 틀어보았다. 세월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테이프리코더에서 흘러나오는 가요는 시간의 간격을 훌쩍 뛰어넘는 듯 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소장하던 물건을 남김없이 써버리거나 빈틈없이 정리해두고 죽음을 맞지는 못한다. 죽음이 우리를 데려가는 것은 미처 예상치 못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면 죽음을 따라 서둘러 길을 떠날 수밖에 없다. 죽음은 집안을 정리하고 짐을 꾸릴 시간마저 주지 않을 만큼 냉혹하기도 하다. 죽음이 나를 부르면 미처 읽지 못한 책도 그 자리에 두고, 쓰고 싶은 글이 있어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모두 다 해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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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5. 죽은 몸을 처리하는 방식

오즈 야스지로 일본 감독의 61년도 영화 <고하야가와가의 가을>(小早川家の秋: Autumn For The Kohayagawa Family)를 보면, 화장터의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하는 게 오래전부터의  관례였을까? 2011년 통계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시신의 99.92%를 화장한다고 한다. 매장할 땅이 부족한 데서 비롯한 결과라고 하는데, 놀라운 수치다.
 
매장이냐, 화장이냐
 

▲ 파리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Le cimetiere du Pere Lachaise) 납골당. 파리에서 가장 넓고 유명한 묘지이다. 2004년으로 지은지 200년 되었는데, 오스카 와일드, 짐모리슨, 몰리에르, 에디뜨 피아프, 모딜리아니, 쇼팽 등 유명인이 묻혀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이경신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죽으면 내 육신을 화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땅 속에 묻혀 제법 긴 시간 동안 벌레들의 먹잇감이 되어 천천히 썩어가는 것보다 짧은 시간 소각되는 것이 깔끔할 것 같아서였던 것도 같다.

 
죽은 자의 육신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당장 떠오르는 것이 매장이나 화장이다. 시신을 조각내서 맹금류에게 던져주는 풍장도 존재하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매장이나 화장, 두 가지 방식만을 시신처리방식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라에 따라서 매장과 화장의 비율은 다양하다. 스위스, 영국, 스웨덴, 덴마크에서는 화장 비율이 70%이상으로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장중심의 장묘문화였으나 최근 20년 새 화장을 하는 비율이 17.8%에서 71.1%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반면,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처럼 다수가 매장을 선호해 화장비율이 10% 정도에 그치는 곳도 있다.
 
특히 로마 가톨릭의 영향 아래 있는 나라들이 화장을 기피하고 매장을 선호한다고 한다. 매장을 지지해온 로마 가톨릭 측에서는 1886년 화장을 금지시키고 화장하는 이는 파문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1963년에 와서야 화장 금지를 철회한다.
 
다수의 국민이 가톨릭교도인 프랑스를 살펴보면, 1980년대 초에는 화장비율이 불과 1%정도였지만 오늘날에는 화장비율이 32%에 이른다. 또 70년대에 불과 9개이던 화장터가 현재 150개가 넘는다고 한다. 게다가 2010년도 통계에 의하면, 프랑스인 53%가 죽으면 화장을 원한다고 대답했다. 도대체 왜 프랑스인들이 점차적으로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게 된 것일까?(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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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6>

‘클뢰네 시립도서관’을 소개합니다 
 
교사를 동반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교사가 큰 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틈에서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깔깔거리기도 하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지자, 도서관은 다시 평소의 평안함을 되찾았다.
‘휴!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의 거리에 클뢰네 시립도서관이 있다. 이 도서관에서는 어린이와 어른들을 위한 도서와 신문, 잡지들을 볼 수 있으며 영화 DVD나 음악 CD까지 구비되어 있다. 내가 집에서 영화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건 바로 이 도서관 덕분이다. 이 도서관에서는 자녀들을 데리고 와 동화책을 빌려가는 부모들도 볼 수 있지만, 잠시 들려 잡지나 신문을 읽는 노인들도 자주 만날 수 있다.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거나 맑거나 상관없이 내가 이곳을 자주 찾을 수 있는 건, 집에서 아주 가깝기 때문이다.
 

▲ 클뢰네 시립 도서관 1층, 청소년들의 모습     © 정인진


옛날부터 나는 도서관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지루하면 도서관에 있는 책이나 잡지를 뒤적이기도 하고, 그것도 싫증이 나면 시청각실에서 무료로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센터에서 동양화를 배우기도 했다. 시립 도서관 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그저 파 몇 잎과 고춧가루만 들어간 우동이 그 때는 왜 그리 맛있었는지……. 그것을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당시, 이런 시립도서관이 동네 곳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시립 도서관을 가기 위해서는 십 여분 버스를 타고, 버스에서 내린 뒤에도 몇 십분은 걸어야 했다. 도서관은 가볍게 나설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도서관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늘 바랐는데, 그 꿈이 이루어진 건 한국의 지금 집에 살면서부터다.
 
한국의 우리 집 가까이에도 이렇게 시립 도서관이 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옛날에 비해 마을마다 도서관이 좀 더 잘 갖추어져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이렇게 도서관 가까이 살 수 있는 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도서관 근처에 살게 된 걸 내 몇 안 되는 행운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곳 브르타뉴에서도 그 꿈이 이루어졌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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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5>

브르타뉴의 집으로 가기 위해, 파리 샤를드골공항(Charles de Gaulle Airport)에서 렌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조금 가다보면 차창 밖으로 빨간 기와집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런 풍경이 달라지는 건 ‘르망’(Le Ment)을 지나면서다. 르망에 다다르면, 빨간 기와지붕과 아르두와즈(ardoise)라 불리는 검은색 돌판 지붕들이 뒤섞여 나타난다. 그러다 어느 새 온통 검은 돌판 지붕으로 마을 모습이 바뀌면, 브르타뉴 지방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 조금만 가면 집이다.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
아르두와즈' 지붕 

▲ 못을 이용해 엮은 아르두와즈 지붕. 지붕의 낡은 버팀목 때문에 돌편을 못으로 어떻게 고정시켰는지 알게 된 건 행운이다. (Vitre에서)     © 정인진

 
이 검은 돌판 지붕만큼 브르타뉴 지방을 잘 표현하는 것이 있을까? 빨간 벽돌집이 북부 프랑스를, 붉은 기와에 아이보리 색으로 벽을 칠한 집들이 남부 프랑스를 대표한다면,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건 아마도 이 아르두와즈 지붕일 것 같다.

 
아르두와즈는 열과 압력에 의해 형성된 돌로, 편암의 일종이다. 여느 편암처럼 얇게 쪼개지는데다가 육중하고 강한 성질 덕분에 오래 전부터 지붕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아르두와즈를 사각형이나 비늘 모양의 얇은 판으로 쪼개 지붕을 엮는다. 판의 두께는 3~9mm, 또는 20~40mm 로 다양하다. 색깔은 검정색, 회색, 청회색 등 검은 빛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짙은 붉은 색이나 초록색을 띄는 것도 있다고 한다.
 
지붕을 엮기 위해서는 옛날에는 못으로 고정했고, 19세기 말부터는 갈고리를 이용해 고정시켰다. 이러한 고정방법 때문에 아르두와즈 지붕을 고치기는 쉽지가 않다. 아르두와즈 지붕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돌판들을 지탱하고 있는 골조를 함께 바꿔야 한다. 게다가 값도 비싸서 현대에 와서는 옛날보다 덜 사용하는 편이지만, 브르타뉴에서만큼은 여전히 아르두와즈로 지붕을 엮는다. 

▲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아르두와즈 돌편을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 Copain de la Bretagne 중에서 Milan 2001.    

브르타뉴 외에 맨에루와르(Maine-et-Loire), 아르덴느(Ardennes)와 피레네 고산지역에서도 지붕재료로 아르두와즈를 사용한다. 이 지역들은 모두 아르두와즈가 생산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들을 포함해, 프랑스 전역에서 아르두와즈가 생산되는 곳은 약 10개 지역이 있는데, 이중 세 지역이 브르타뉴에 있다. 브르타뉴의 네 지역 중, 일에빌렌느를 제외한 모르비앙, 코트다모르, 피니스테르, 이 세 지역에서 모두 아르두와즈가 생산된다.
 
옛날에 아르두와즈 돌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리 사이에 돌을 끼고 정으로 돌판을 쪼갰다고 한다. 과거의 돌판 쪼개는 방법을 보여주는 그림은 브르타뉴를 소개하는 책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하도 불편해보여 볼 때마다 얼마나 힘들고 고된 작업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요즘은 생산과정이 기계화 되어, 과거 부자들의 대저택에나 사용되었던 아르두와즈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건축 재료가 되었다. 그러나 서민들까지 아르두와즈 지붕을 갖게 된 건 오래된 일은 아니다. 메밀대나 늪지의 갈대 같은 건초로 엮었던 서민들 가옥의 지붕이 아르두와즈로 대치되기 시작한 건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오늘날, 브르타뉴에서는 큰 공공건물이나 소규모 개인주택 가릴 것 없이 이 돌판으로 기와를 잇는다. 창고나 우체통 위까지 아르두와즈로 지붕을 얹은 경우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르두와즈는 건축 재료만이 아니라 손 칠판으로도 폭넓게 사용되어 왔다. 한편 요즘은 접시로도 인기가 많다. 슈퍼마켓에서는 아르두와즈로 만든 접시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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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교실> 3. <바바야가 할머니>를 중심으로
 
▲ 패트리샤 폴라코의 <바바야가 할머니>
오늘은 편견에 대해 생각해 보자. 편견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나쁘게 생각하거나, 또는 좋게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어른들 중에는 편견에 젖어 거짓된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어른들 틈에서 편견에 젖은 어른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그대로 내면화하는 어린이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편견에 물들지 않고,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을 가지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제로 아이들과 공부하고 있다.

 
나는 이 공부를 위해 패트리샤 폴라코의 <바바야가 할머니>(시공주니어)를 텍스트로 골랐다. 바바야가는 아기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상냥한 마녀다. 그러나 바바야가를 직접 본 적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는 아기들을 잡아먹는 사악한 마녀로 소문나 있었다.
 
6학년인 형진, 찬이, 해빈이의 의견을 예로 뽑았다. 특히,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들의 의견이 아주 좋아서, 될수록 발표한 원문을 그대로 싣고자 한다.
 
첫 번째 질문으로 <바바야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듣고 너무 괴로워했습니다. 여러분이 바바야가였다면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물었다.
 
물론, 기분 좋다고 대답하는 어린이는 없다. 이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형진이는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를 욕하는 건 너무 짜증날 것 같다고 했다. 해빈이 역시 바바야가 할머니처럼 괴롭고 억울했을 것이라면서, 자기 같으면 너무 억울해서 마을 사람들을 해칠 것 같다고 솔직한 심정을 표현했다.
 
이제,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다. <이 동화 속의 사람들처럼 누군가의 말만 듣고 판단을 내린 적은 없었나요?> 각자의 경험을 발표해보도록 했다.
 
*찬이: 우리 학교에 박지환이라는 애가 전학을 왔다. 내가 학원친구한테 물어보았더니, 박지환은 전 학교에서 왕따였고 성격도 더럽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사귀어보니 좋은 아이였다.
 
*형진: 쉬는 시간에 남자애들이 모여서 수군거렸다. 우리 반의 어떤 남자애가 장애인이고 그 아이는 정신이 10년 동안 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에게 소문을 많이 냈다. 다음날 쉬는 시간에 그 아이에게 가서 물어보았더니, 작년에 시험을 너무 잘 봤다고 했다. 갑자기 미안해졌다.
 
*해빈: 엄마가 어느 애하고 놀지 말라고 했는데, 막상 가서 말을 걸어보니 너무 순진하고 착해서 엄마 몰래 같이 놀았던 적이 있다.
 
해빈이 의견에서는 어머니가 왜 그 아이와 놀지 말라고 했는지 이유가 소개되어야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또, 몰래 노는 것에 머물지 않고 어머니께 그 아이가 어머니가 아는 것과는 다른 아이라는 것도 알려드린다면 더 좋겠다.
 
아이들의 의견처럼, 우리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편견이 존재한다. 분명하게 확인되지도 않은 말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것은 또래들 사이에도 존재하고, 어른들을 통해서도 주입된다는 걸 해빈이의 의견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음 문제는, 이렇게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편견을 직접 찾아보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 동화에서처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나쁘게, 또는 좋게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봅시다.>
 
이때 예를 간단하게 들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늘은 ‘엄마가 직장에 다니는 집의 아이들은 공부를 못해!’와, ‘부모가 교사인 집의 아이들은 가정교육을 잘 받아 예의가 바르다’를 예로 제시했다. 예문은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말해주면 된다. 몇 가지 예를 들어주면 아이들이 쉽게 자기 생각을 발표할 수 있다. 아이들의 발표를 종합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얼굴 잘생긴 애들은 잘난 척을 한다.
2) 막내는 누나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3) 집안일을 여자가 해야 한다.
4) 초등학생이라고 (혼자) 시내나 바깥을 나가지 못하게 한다.
5) 엄친아는 싸가지가 없다.

 
사실 4)번의 의견은 편견의 예로는 적당하지 않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편견의 예를 묻는 질문에 대해, 대답을 정확하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 가지 예를 생각해본다면, 살면서 편견인지 아닌지를 더 잘 구분해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 패트리샤 폴라코의 <바바야가 할머니>
한편, 이 동화에서 마을사람들은 결국 바바야가는 마음씨 좋은 마녀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한 할머니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정말 바보야! 마음으로 느껴야 해!”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이 네 번째 질문이다.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런 마음가짐은 중요한가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자세하게 발표해 봅시다.>

 
*찬이: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말고 속마음을 보고 판단해라. (이 생각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외모가 이상하다고 해도 속마음은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형진: 사람은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 등 더 자세히 보아야 한다. (중요한 생각이다. 사람을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면 중요한 인재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빈: 남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욕하는 것은 나쁘다. (중요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남을 잘 모르고서 욕을 하면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좀 창피하다.)
 
난 이 대목에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어른이라고 해서 항상 좋은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어른들이 하는 말 속에도 편견에 물든 생각을 많이 찾을 수 있어요. 그러니 부모님이나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무조건 옳다고 따르기보다, 그것이 좋은 생각인지 아닌지 여러분이 스스로 잘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섣불리 판단을 내렸다간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요.
 
특히, 직접 사귀어보지 않고 남의 말만 듣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겠어! 그랬다가는 좋은 사람을 잃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할 때 우리는 어떤 마음자세가 필요할까요?>
 
이것이 마지막 문제다. 아이들은 이 질문에도 대답을 척척 잘한다. 그들의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그 사람의 능력
2)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3) 예의가 있는가?
4) 봉사정신이 좋은가?
5) 속마음이 좋은가?
6) 어울리는 친구들
7) 선생님한테 많이 혼나는지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다. 남들이 하는 편견어린 말을 듣고 판단을 내리는 일은 없어야겠다. 스스로 보고 느끼는 것을 가지고 평가를 내리고,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걸 아이들이 배웠길 바란다. (※ ‘하늘을 나는 교실’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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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4>

렌의 도심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장이 선다. 프랑스의 어느 지역에서도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큰 규모의 장이 서는 것은 본 적이 없어서 정말 놀랐다. 프랑스에서 첫 번째로 큰 장이 어디서 열리는지는 모르지만, 렌의 관광안내 책자에 소개된 바로는 이 토요시장이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장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장의 규모와 크기가 엄청나기는 하니, 몇 번째로는 꼽힐 만하겠다.
 
맛있는 유기농음식들이 가득한 렌의 토요시장
 

▲ 렌 시내에서 열리는 토요시장 풍경     © 정인진

 
렌의 토요시장은 규모보다 농업과 목축으로 유명한 브르타뉴답게 먹음직스러운 신선한 채소와 과일, 유제품들이 한가득 쌓여 있다는 게 매력이다. 무엇보다 이 장에는 가까운 주변 마을에서 생산된 싱싱한 농산물로 가득하다. 근처 농장에서 생산된 치즈나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은 물론, 생선들조차 근해에서 잡아 온 것들이다. 또 사과로 유명한 지역답게 이름도 생소한 품종의 다양한 사과들이 광주리마다 매우 싼 값에 판매되고 있다. 또 농장에서 만든 사과주와 사과주스들도 가판대마다 가득 담겨 있다.

 
브르타뉴는 프랑스에서 농업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프랑스에서 품질 높다고 평가되는 고기와 우유, 야채들이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농업에 기반을 둔 지역인 만큼 옛날에는 가난을 면치 못하고 근근이 살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1960년대 농업혁명 이후, 농업 시스템을 근대화하면서 생산력의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다. 특히, 가금류와 돼지의 집중적인 사육은 브르타뉴를 프랑스에서 첫 번째 농업지역으로 만들어 놓았다. 돼지고기는 프랑스에서 55%가 생산되고 있고, 가금류의 45%, 우유의 25%가 이 지역에서 제공된다. 그러나 이런 집중적인 가축사육은 물을 심각하게 오염시켰고 화학비료의 지나친 사용으로 토양도 심하게 오염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브르타뉴에서는 몇 년 전부터 자연농업을 지향하는 농부들에 의해 유기농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이다. 옛날 방식으로 초원에서 가축을 사육하거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야채를 키우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유기농산물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늘면서 유기농업은 더욱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런 만큼, 렌의 토요시장에서는 유기농산물을 파는 상인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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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3. 브르타뉴의 성곽 도시들1

날은 흐렸지만, 오랜만에 비가 그쳤다. 며칠 째 계속되던 비가 그치자, 어디든 훌쩍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고 간단하게 가방을 챙겼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마음이 일 때 나설 수 있을 만큼, 렌 근처에는 볼만한 유적지들이 많다.
 
특히, 프랑스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동쪽, 일에빌렌느(Ille-et-vilaine)지역에는 옛날 프랑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졌던 요새형태의 성들이 많다. 그런 만큼 이곳들은 참혹한 전투의 현장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브르타뉴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현장이었던 ‘푸제흐’(Fougeres)성을 가볼 생각이다.
 
변방의 참혹한 전투현장, 푸제흐성
 

▲ 푸제흐 성은 복원된 탑들과 폐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정인진


렌에서 북서쪽으로, 시외버스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푸제흐라는 도시가 있다. 푸제흐는 맨느(Maine)와 노르망디(Normandie)지역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브르타뉴의 대표적인 변방지역 중 한 곳이다. 푸제흐가 속해 있는 곳은 예로부터 ‘막슈 드 브르타뉴’(les Marches de Bretagne: 브르타뉴의 변방들)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수세기 동안 프랑스와 브르타뉴의 국경이 계속 옮겨지면서 치열한 전투들이 벌어진 곳이다.
 
변방에 속하는 도시로는 푸제흐 외에도 비트레, 라 게흐슈-드-브르타뉴, 샤토브리앙, 앙스니, 클리쏭, 마슈쿨, 게랑드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푸제흐는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어, 과거 프랑스군은 물론 백년 전쟁 동안에는 영국군과도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흐린 날씨였지만, 길을 걷기는 상쾌했다. 도시 바로 입구에 그 유명한 푸제흐 성이 있고, 버스정류장도 성을 뜻하는 ‘샤또’(chateau)역이다. 나는 더 가지 않고 그 곳에서 내렸다. 지도에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푸제흐 성은 깎아지른 듯한 산들로 둘려쳐져 있는 ‘낭송’(Nancon)계곡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계곡과 같은 이름의 낭송강의 작은 물줄기가 계곡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성은 계곡 한가운데 불쑥 솟아있는 붉은 빛 화강암 바위 위에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성 문앞으로는 낭송강의 깊은 물길이 마치 폭포처럼 성 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흐르고 있었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높고 수려한 여러 채의 탑들과 무너진 건물들의 폐허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옛날에 무너진 걸 20세기에 복원시켰다는 성 안의 탑들도 감탄스러웠지만, 군데군데 다시 만들지 않고 허물어진 상태 그대로인 건축물들의 폐허는 더욱 인상적이다. 푸제흐성은 무너진 탑들 일부는 복원이 되었고 또 몇몇은 허물어진 채 존재하는데, 이런 모습도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뭐든 완벽하고 깔끔하게 예전 모습 그래도 만들어 놓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이런 폐허들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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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4. 놀이가 된 죽음

▲ 스코틀랜드의 에딘버그 성 풍경. 이 도시 곳곳에는 죽음의 역사가 깊이 배여 있었다.     © 이경신

잔뜩 찌푸린 하늘, 물기를 머금은 대기, 우산을 내치는 바람. 이른 아침, 온 몸을 비옷으로 감싸고 호텔을 나섰다.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일까? 긴 세월을 견뎌낸 건물들의 짙은 검은 빛과 벽 위 군데군데 자리 잡은 이끼의 선명한 녹색은 묘한 대조를 이루며 눈길을 끈다.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생생한 이미지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낯선 도시, 그 도시의 옛 중심가 거리는 어둡고 비좁은 골목길들로, 미끄러운 작은 계단들로 이어졌다.
  
우연한 기회에 도착한 스코틀랜드의 에딘버그, 이 도시를 배회하며 다닌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이끼 낀 낡은 건축물, 건물들 사이의 어둠침침한 골목길, 음산한 지하 감옥, 오래된 묘지 속의 쓰러진 비석들과 버려진 무덤, 무너져 내린 건물들의 잔해가 만든 폐허 등,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동안, 도시의 스산하고 음산한 아름다움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햇살이 났다 바람이 불었다 비를 뿌렸다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이런 독특한 도시 분위기를 더해 준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죽음의 옛 이야기로 가득한 도시
 
도시 곳곳에는 죽음의 역사가 깊이 배어 있었다. 도시가 우리에게 전하는 섬찟한 죽음의 이야기들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우리를 더 전율케 한다.
 
우리는 여름철 더위를 식히려고 공포를 찾기도 한다. 공포소설, 공포영화, 공포 테마 놀이동산에 등장하는 드라큘라, 유령, 좀비, 마녀 등 무섭고 기괴한 존재들은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체온을 내려준다. 이때 우리가 경험하는 두려움은 죽음과 관련한 우리의 상상이 낳은 공포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구시가를 걸으며 만나는 공포는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한다. 에딘버그의 성을 방문해 지하 감옥을 들여다보거나 우물가를 지날 때, 구시가의 골목길, 다리 밑을 걸을 때, 홀리루드 공원((Horyrood Park)의 폐허를 맞닥뜨릴 때, 박물관을 관람할 때조차,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음으로 내몰린 끔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힘없는 여성들을 겨냥한 마녀사냥, 잉글랜드의 국교도에 맞서 장로주의를 지지한 스코틀랜드 서약자들(covenanters)의 대학살, 공중보건이 미비한 도시의 비위생적인 삶이 퍼뜨린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의 창궐 등.
 
여성억압,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박해, 도시의 전염병처럼 과거사 속에 실재한 비극적인 집단적 죽음에 자살과 살인과 같은 개개인의 불행한 죽음이 더해져 도시에는 죽음의 옛 이야기들, 허구가 아닌 진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이 끔찍한 진짜 이야기들이 어두운 도시의 분위기를 더더욱 침울하고 음산하도록 만든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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